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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7826 bytes / 조회: 828 / 2022.03.24 02:41
페이크 뉴스


마니에르 드 부아르 6호는「페이크 소사이어티의 도래」를 표제로 뽑았다.

'가짜 뉴스'라는 용어는 이제 전혀 낯선 것이 아니게 되었지만 사실 이 용어는 그 자체로 굉장히 괴랄하다.

'뉴스'란 사실 전달이 생명이 아닌가. 그래서 '오보'는 뉴스 제공자에겐 치명적인 실수이고 망신이고 씻을 수 없는 과오인 거고. 그런데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사회라면 어울릴 수 없는, 어울리면 안 되는 두 단어가 결합을 이룬 것이다. 이 사회가 비상식적이며 비정상적인 사회라는 역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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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을 모는 운전자들

 

2016년 미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패배한 이후로 뉴욕과 런던, 파리의 주요사설들은 '미디어가 거짓을 말한다'라는 믿기 어려운 사실을 알아냈다. 물론 자신들 말고 다른 미디어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극우 성향의 미국 온라인뉴스와 마케도니아에서 만들어진 이름 없는 블로그부터 '트롤'들까지 온갖 '가짜 뉴스'를 만들어낸다.

 

사법부 장관이 노예제 옹호를 뜻하는 '남부연합기 문신을 모두 당장 제거'하라고 명령할 지도 모른다는 가짜 뉴스에서부터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할 수도 있다든지 힐러리 클린턴이 아동 성착취 조직을 이끌고 있으며 그 조직의 근거지가 워싱턴에 있는 피자 브랜드인 코맷 핑퐁 지하실에 있다는 등의 가짜 뉴스였다. 이 말도 안 되는 뉴스들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구글을 통해 퍼졌고 매일 같이 <뉴욕 타임스>를 읽는 유형이 아닌, 무지몽매한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본지 P.26


 

 

'페이크 뉴스'는 점점 진화하고 있다. 입을 타고 떠돌던 실체 없는 '카더라' 소문은 어느덧 6하 원칙을 갖추고 '뉴스'의 형태로 사람들에게 노출되고 있고, 언어가 된 말(소문)은 급기야 영상이 되어 스마트폰으로 배달된다. 이번 국내 대선도 예외 없이 페이크 뉴스가 유권자를 현혹했다. 페이크 뉴스의 영향력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선거가 끝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짜 뉴스'를 신앙처럼 떠든다. 부활한 예수를 만나 코앞에서 대화를 나눈 제자들조차 예수가 진짜인가 의심했는데 대중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가짜 뉴스에 휩쓸린다. 당연하다. 가짜 뉴스는 자극적이니까. 한마디로 끼리끼리 모여서 씹고 짛이기고 삼키기에 딱이다. 그리하여 기꺼이 속을 준비가 된 대중에게 '페이크'는 사라지고 '뉴스'만 남는다.

 

 

진실과 사실의 이름으로 벌어진 "가짜 뉴스"에 대항하는 세계적 싸움은 무엇보다도 정치적인 싸움이다. 볼리비아, 북미, 프랑스, 어느 곳에서든 이 싸움은 소위 "포풀리스트" 지도자들에 대한 중앙 기득권 세력의 공격을 대중 미디어 세계로 옮겨 놓은 것이다.

여기에는 교육을 받지 못하고, 속기 쉽고, 영향을 받기 쉬운 대중 계급에 대한 도시민, 대학원생, 전문가의 경멸이 내포되어 있다.

 

-본지 p.17

 

'가짜 뉴스' 양산자들이 속이는 대상은 누구인가. 영화 <내부자들> 속 메이저 언론사 주필 이강희는 그들을 '개돼지'라고 부른다.


사실 지금까지 '가짜 뉴스'에 관하여 내 비난과 비판의 대상은 오로지 '뉴스 제공자/양산자'였다. 하지만 이번 대선 과정과 결과를 지켜보며 생각이 바뀌었는데, 가짜 뉴스 수요자들의 태도가 생각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공통점이 있는데 애초에 그들에겐 진실,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팩트는 말야', '진실은 말야' 암만 떠들어도 공염불일 수밖에.

 

그러니 우리는 이제 인정해야 한다. 누군가는 빨간약을 삼키고 배고픔을 견디는 것보다 파란약을 삼키고 가짜 스테이크의 가짜 맛을 씹고 싶어할 수도 있음을.

 

조지 오웰 『동물농장』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인간이 버리고 내뺀 농장에서 권력을 잡은 돼지가 인간의 흉내를 내는 것이다. 인간의 침대에서 잠을 자고 인간의 식기를 쓰고 인간의 옷을 입더니 급기야 두 다리로 직립보행한다. 돼지가 나쁜가. 물론 나쁘지. 그러나 더 나쁜 건 돼지에게 순순히 권력을 안기고 권력의 노예가 되는 농장 동물들이다. 스스로를 구원할 의지가 없는 노예들에게 구원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

 

그런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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