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와 뉴스라니,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만큼이나 형용모순이지만, 어쩌겠나 소식이 늦은 걸...ㅎ
<새의 선물>
6월에 은희경의 <새의 선물> 개정판이 나왔다. 작가 후기를 보니 표지 제작만 새로한 리커버가 아니라 시대의 변화를 고려하여 일부 퇴고를 새로 했다고 하니 말그대로 개정판이다. 작가에 의하면 개정판을 준비하며 책을 낸 지 27년 만에 책 전체를 다시 읽었다고 한다. 100쇄를 찍었다는 것도, 원래 제목이 '연애의 대위법'이었으나 출간 막바지에 프레베르의 시 '새의 선물'에서 제목을 가져왔다는 것도 이번에 새롭게 알게된 사실.
참고로 나는 은희경을 '위악의 작가'로 부른다. 내가 읽은 바운더리 내에서 은희경만큼 인물들의 위악을 신랄하게 표현하는 작가를 아직 보지 못했다.
(자크 프레베르의 시 '새의 선물' 가운데)'어떤 앵무새가 해에게 해바라기 씨앗을 가져다줬는데 해는 그것을 거절하고 어린 시절 감옥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런 구절이 있는데, 어린 시절 감옥이라는 것? 자기가 원하는 것일 텐데도 그것을 거부하는 삶의 태도? 이런 것들이 주인공 소녀를 담아내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해서 '새의 선물' 이라고 붙였어요.
관련하여 다른 인터뷰를 하나 더 보자.(https://www.yna.co.kr/view/AKR20220530103100005?input=1179m)
작가의 답변을 읽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물론 작가의 선택이고 판단이지만 작가의 이런 태도에 어쩔 수 없이 의문이 생긴다. 이를테면, '저런 표현을 뺀다고(쓰지 않는다고) 소설의 배경이 된 시대가 저런 표현을 안 썼던 시대가 되는 것인가?' 라는 원론적인 의문이다. 나아가 작가가 이런 식으로 시대순응 혹은 시대타협으로 간다면 '세태소설'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싶은 거다. 다다음 세대는 혹 그렇게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소설 속 배경인 6,70년 대와 작가가 소설을 쓴 90년 대는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는 단어가 없는 시대였다고.
브레히트 효과
신형철의 신간을 계기로 간만에 서점에서 브레히트를 검색하다 민음사 세계시인선까지 흘러갔다. 오, 선집에 브레히트도 있었구나. 그럼 사야지. 이런 의식 흐름으로 분명 브레히트만 장바구니에 담을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이것저것 마구 담고 있더라는..., 그러다 내처 그냥 전집을 사야겠다는 결론에 이른다. 사실 별로 놀랍지도 않다. 이거야말로 늘 '하던대로 패턴'이라. 바로 오늘 낮에 책 그만 사야겠다 했는데...... 흡연자가 금연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책 안 사기.
브레히트를 검색하다 보니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가 튀어 나온다.
장정일이 에르노를 언급하고, 에르노가 브레히트를 언급하고... 그러한 지점 어디에서 나랑 접선이 된 거다.
아니 에르노의 소설을 몇 권 가지고 있고 딱히 에르노를 더 읽어야겠다는 관심도 없어 수상 소식에도 '소 닭보듯' 딱 이런 심정이었는데, 결국 에르노 앞에 대령한 건 아무려나 그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기 때문이려니. 이래서 '뭐시기 특수'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렸다.
무튼, 그러니 이 책은 당장 사야겠다. 무려 장정일과 브레히트가 인도한 책이니.
게다가 한때 절판이었던 모양이다. 노벨상 수상 계기로 복간된 건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구매 버튼이 있을 때 냉큼 주문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