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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五車書)
- 다섯 수레의 책
13269 bytes / 조회: 1,227 / ????.04.27 10:28
책읽는 즐거움



지난 주에 책을 주문했는데 일주일도 안돼서 또 책을 주문했다. 이유는 플스 잡지 때문. 이 잡지가 폐간된다는 소식에 잡지를 주문하면서 배송비때문에 리스트에 담아두었던 책도 같이 주문했다(이 참에 알라딘으로 한 번 갈아타볼까 진지하게 생각중). 하지만 책을 상자에서 꺼내들었을 때 너무 좋아서 책을 껴안고 말았다. 매번 읽고 싶은 리스트를 주문하는데도 이번 목록은 왠지 가슴 뛰게 하는 구석이 있었다. 사실 나는 '전작주의'는 아니다. 빈약하나마 전작 리스트가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읽고 싶은 대로, 끌리는 대로 읽는 편이다. 그런데 21세기에 들어와서 이 빈약한 '전작' 리스트에 새롭게 추가된 작가들이 있다. 다자이 오사무, 김훈이다.

김훈
김훈의 문장은 색채가 분명하고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만큼 개성이 강한 반면 계속 읽다보면 물리는 감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간을 기다리게 되고, 신간 소식을 들으면 읽고 싶다는 갈증을 느끼게 된다. 한 마디로 제목과 작가만 다를뿐 같은 주제, 플롯, 식상한 전개, 어디선가 이미 읽었던 것같은 내용임에도 줄기차게 읽는 '장르 소설'과 같은 중독성이 있다. 물론 이 중독성은 누구나 인정하는 그의 문체에서 기인한다. 산문집은 안 읽는 독서 습관탓에 다른 책을 주문할 때 한 권씩 끼워서 주문하던 김훈의 산문집. 산문집 때문에라도 이 작가는 전작으로 가기 어렵겠다 생각했는데 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최근 산문집을 읽기 시작하면서 전작이 가능해졌다.

다자이 오사무(太宰治)
일본 문학의 경우, 50년대 이후 출생한 작가의 소설은 내겐 말하자면 '읽히지 않는 소설'이다. 당연하지만 일본 작가중 가장 좋아하는, 또한 전작리스트에 있는 나쓰메 소세키, 다자이 오사무는 모두 20세기 전후에 태어났다. 이들중 다자이 오사무는 2년 전, 신기한 우연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친구 H와 부산의 B양이『인간실격』을 추천하면서 만났다. 하긴 이 소설이 워낙 강렬하긴 하다.
다자이 오사무는 그가 남기고 간 삶의 양태만 놓고 보면 인간적인 호감이 안 가는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에는 마음을 잡아끄는 강렬한 뭔가가 있다. 호감이 안 가는 그의 삶이 그의 글에 녹아들어 내 감정선의 어느 부분을 자극하는 것일지도 모를 텐데, 생각해보면 아이러니 하다. 참으로 우울한 그의 글은 처음 읽을 때보다 두 번째 읽을 때, 그리고 세 번째 읽을 때... 읽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감정선을 파고드는 힘이 있다.


신주쿠(新宿)의 인도 위에, 주먹만한 돌멩이가 느릿느릿 기어가는 걸 보았다. 돌이 기어가고 있군. 그저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러나 그 돌멩이는 그의 앞을 걸어가는 지저분한 아이가 실에 매달아 끌고 가는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아이에게 속임을 당한 것이 쓸쓸한 건 아니다.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태연히 받아들인 자신의 자포자기가 씁쓸했다. -『만년』中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 서점가에 불어닥친 일본소설 열풍을 보고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유는 다름아닌 일본어의 특징 때문이다.
조사나 접미사를 단어 뒤에 덧붙여서 뜻을 분명히 하는 교착어라는 공통점말고는 한글과 일본어는 분명 다른데 한글은 같은 표음문자라도 음절 단위와 동시에 음소 문자 체계를 가지고 있는 참으로 과학적인 언어이기 때문. 일본글은 절대 따라올 수 없는 이 차이점 덕분에, 한글은 각각의 음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새로운 음절단어를 만들어내고 이 음절단어는 또 다른 음소가 만나서 만들어낸 음절단어와 결합 새로운 음절단어를 만들어내고 거기다 시대의 변화에 맞춘 새로운 단어까지... 이처럼 거칠 것이 없는 자생적이고 무한한 생명력을 가진 참으로 자랑스러운 우리의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이렇듯 활용과 효용성, 구사력에 있어 세계 어느 언어와 견주어도 자랑스러운 한글에 비해, 독립적인 음소의 생명력이 없는 음절 체계의 완성형 언어인 일본글은 단어의 쓰임새나 그 활용성이 한글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당연히 언어의 표현과 묘사력에 있어서도 감히 한글과 견줄 수가 없다. 비유를 들자면 레고(Leog)와 완제품 장난감의 차이 정도?
역설적으로 우리 문학보다 일본 문학이 미국이나 유럽시장에서 맹위를 떨치는 것엔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물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설국』의 예에서 입증되었듯이 한 나라의 소설을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소개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번역자의 힘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일문학의 독특한 장르(?)인 사소설(=고백문학)을 열외시키더라도, 최근의 일본 문학이 유독 사유와 서사를 중시하는 본격문학보다는 스토리의 구성력으로 승부하는 추리소설, 연애소설같은 장르소설로 전성을 이루는 이유와도 물론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문학계가 요즘 위기론을 부르짖고 있듯이 혹시 이웃나라 일본도 그렇지 않을까?)
게다가 바로 그 장르소설이 우리나라 서점가의 베스트셀러까지 휩쓸고 있다니 재미있다. 번역의 힘일까? 일본어엔 없는 우리말에만 있는 감칠맛 나는 재기발랄한 문장으로 옮겨진 이들 장르소설이 단어부터가 근사하기 그지없는 'cool'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우리나라에서 전성시대를 펼치고 있다니 아이러니하다. 얼마 전에 서점에 갔다가 '좋은 자리'를 온통 일본 소설이 차지하고 있는 걸 보고 좀 많이 놀랐다. 오쿠다 히데오의『공중그네』같은 소설이 1년이 넘게 베스트셀러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던 것일까. 하지만 요즘 간간히 등장하는 국내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비하면 그런 것쯤 가볍게 웃어버릴 수도 있다. 아무리 '책'이 팔려는, 팔아야하는 '상품'이라지만 일본식 'cool'을 유행을 넘어 모방으로까지 가려고 하는 요즘같은 분위기는 아무래도 '이건 좀 심하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국내에선『상실의 시대』로 더 많이 알려진 하루키의『노르웨이의 숲』이 유명해진 것은 언제부터일까? 물론 내 친구처럼 10년도 더 전에 이미 팬을 자처하며 전작리스트에 올려놓고 좋아하는 독자들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하루키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그러니까 대중적인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것은 (아마 정동진으로 가는)열차안에서 풋풋한 두 청춘이 수줍게 조우하던 모 휴대폰 광고가 TV전파를 탄 이후였다.



심윤경
말랑말랑하다는 '로맨스 소설' 조차도 그 내용이 독하거나, 인물이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강하면 읽는 것이 힘들다. 글을 읽는 동안 인물들을 좇아 널뛰듯 하는 감정을 견뎌내는 것이 쉽지 않다. 하물며 30대 중반이라는 이 작가의 소설은 말 할 것도 없다. 종가(宗家)의 숨은 내력과 몰락을 다룬 『달의 제단』은 물론이고, 따뜻하고 정감이 넘치는 시선으로 채워진『나... 의 아름다운... 정원』마저도 읽는 내내 감정선을 훑는 서늘한 감각에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얇은 여름 감기를 앓은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예쁜 표현, 감각적 눈요기가 없어도 단단하고 꽉 찬 서술로 장편을 완성하는 힘을 지닌 심윤경같은 작가가 있어서 참 좋다.

인터뷰中 소설의 의미를 묻자,


나를 참 홀리게 하는 존재다. 나는 굉장히 소심한 안전제일주의자다. 과감한 행동보다는 한 발씩 조심스럽게. 그러나 소설과 함께라면 굉장히 과감해 진다. 평소의 나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하는 행동들을 하는 나를 보며 놀랄 때가 있다. 

는 이 작가. 소설이 아니어도 누구나 그런 것이 하나쯤 있지 않을까. 내 안의 다른 나를 밖으로 끌어내는 그 무엇. 그것은 책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고 봄에 잠깐 피었다가 지는 꽃 한송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굉장히 소심한 안전제일주의'에 웃으면서 "나도, 나도" 공감.

이윤기, 미셸 투르니에
여섯권 중에 산문집이 무려 네 권이다. 50%가 넘는다. 이것은 대단한 징조다. 왜냐하면 내가 여간해선 잘 안 읽는 종류가 에세이(산문집)이기 때문이다. 참, 그리고 국내작가의 판타지/무협 소설도 안 읽는다. '눈꽃다방'에서 한 때 유행어를 만들어냈던(?) "... 요오오오"의『SKT』가 아마 거의 유일하게 읽은 판타지일 것.
고등학생일때 꽤 친했던 한 친구는 늘 옆구리에 책을 끼고 다녔는데 궁금해서 들여다보면 십중팔구는 산문집이었다. 친한 친구의 취향은 그것이 아주 특이한 것이 아닌 이상 나에게도 옮겨오기 마련인데 그 친구의 산문집을 좋아하는 책 취향만큼은 별개였을 정도로 산문집과 나는 거리가 멀었다.
산문집에 발을 들여놓게 된 계기는 역시 신영복의『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본격적인 불이 붙은 것은 김훈의 세설이다. 일단 산문집을 읽기 시작하니 유독 나하고는 인연이 없다 생각했던 이윤기에게 그리고 '유럽의 두께있는 시선'이라는 미셸 투르니에로까지 이어졌다.

사진속 책중 제일 먼저 다 읽은 이윤기의『오늘 우리가 죽인 괴물』은 담백하고 진솔한 작가의 생각이 일상성으로 이어지는 따뜻한 글로 가득했다. 어려운 글이 좋은 글은 아니다. 쉬운 글을 쓴다는 건 그만큼 생각이 정돈되고 갈무리되었다는 내공의 반영일 터.

좋은 글은 아직 쓰지 못하고 있지만, 글을 부리는 삶, 말을 부리는 삶에 관한 한 나는 내 실존적 습관에 어긋나는 언어의 운용은 결단코 하지 못 한다. 잘못 그린 4분음표 하나가 협주곡 하나를 결단낼 수 있다던가? 나는, 잘못 쓴 단어 하나로도 추락할 수 있는 직업의 종사자다.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 中 

어느 때부터인가, 작가의 글과 작가의 인격을 동일시하지 않을 정도의 눈치는 생겼다. 글만큼 글쓴이의 인격까지 좋다면야 금상첨화겠지만 말그대로 (현실적으로)글쟁이에게 인격은 충분조건이지 필요조건은 아닌 것. 그럼에도『오늘 우리가 죽인 괴물』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따뜻한 기대가 생기는 걸 어쩔 수가 없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마치 로맨스 소설의 제목같은 이 말랑말랑한 제목의 책은 그러나 추리소설이다. 작년에 부산의 B양이 갑자기 전화해서는 이 책을 읽어봤느냐고 묻더니 안 읽었다는 내게 끝부분이 기가 막힌다고 꼭 읽어보라고 했다. 아마도『식스센스』혹은『파이이야기』급의 반전이 숨어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리스트에 담아놓은지 몇 달만에 내 손에 들어온 이 책은 지금 앞부분을 읽고있는 중. 뒷통수를 치는 게 아닌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반전을 좋아하고 추리소설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반전이 뭘까 머리를 굴리면서 책을 읽는 유형은 아니라 그냥 가볍게 읽고 있다. 일단 책의 첫인상은 '착하다'는 것. 왜냐. 무엇보다 두껍다. 물론 내용도 착한 것 같다. 아직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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