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노 연애조작단>, <무적자>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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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8452 bytes / 조회: 6,679 / ????.10.02 04:13
[영상] <시라노 연애조작단>, <무적자>


<시라노 연애조작단>(이하, '시라노')는 추석 연휴 때 부산에서, <무적자>는 어제(금요일) 저녁에 봤는데, 간단평을 하면 '시라노'는 오밀조밀 아기자기하고, <무적자>는 전체적으로 선이 굵고 거친 인상이 든다. <시라노>는 코믹 멜로이고, <무적자>는 액션 느와르이니 당연한 얘기인가 싶기도 하고.

<시라노>를 연출한 김현석 감독의 예전 작품은 <YMCA야구단>과 <스카우트>를 봤는데 이 감독은 연출보다는 각본 쪽에 더 재능이 있는 듯하다. 연출을 못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야기는 조밀하게 잘 쓰는데 영화를 보고 나면 늘 얼마쯤 부족하다 싶은 찜찜함이 남는다(개인적 감상).
시라노는 17세기 프랑스 작가 에드몽 로스탕의 5막 시극에 등장하는 인물로 박색의 외모 때문에 자신의 사랑을 숨기고 친구의 연애편지를 대필하는 인물. 이러한 플롯을 그대로 빌려온다는 점에서 영화는 이를테면 극속 극 형태를 취하는데, 연애에 서툰 사람들의 연애를 성사시켜주는 일을 업으로 하는 '시라노 에이전시'를 중심으로 이곳을 찾는 연애 초보들의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하지만 능동적으로 시라노 역할을 자처했던 에이전시 대표 병훈(엄태웅)은 어느 날 상용(최다니엘)이 이들을 찾아오면서 소설 속 시라노처럼 옛 애인 희중(이민정)과 고객 상용 사이에서 매파 처지가 되는 난감한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 영화는 뭐랄까, 요소 요소에서 톡톡 튀는 대사와 설정들은 웃음도 나고 재미도 있지만 막상 극장에서 나온 후에 영화를 기억할만한 인상적인 임팩트가 없다. 다만 영화에서 헤어진 옛 애인과 재회했을 때 병훈이 보여주는 몇 가지 행태들이 눈에 띄는데 러브스토리의 남자주인공이라면 으레 공식처럼 따라오기 마련인 정형을 탈피한 지극히 현실적인 반응/역반응이 꽤 신선하다. 어쩌면 시라노를 사랑 앞에서 웅크리게 만들었던 거대한 코가 병훈에겐 다른 형태의 약점으로 숨어 있다 그를 연애 앞에 웅크리게 한 것일까 싶기도 하고. (더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그만 총총...)

<무적자>는 리메이크 원작 <영웅본색>을 못 본 이유로 일단 비교는 불가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원작을 안 본 것이 득일까 실일까(갸우뚱 기우뚱) 했고, 덕분에 영화관에서 나올 때 제일 먼저 한 건 원작인 <영웅본색>을 봐야겠다는 결심이었다.
내용은 딱, 남자들 얘기다. 중간에 두 번 그리고 클라이막스 한 번 도합 총 세 번 눈물을 흘렸고, 또 두 번 웃었는데 두 번 모두 <영웅본색> 주제가 나올 때였다(영화는 안 봤지만 주제가는 안다).
송해성 감독의 영화는 이번이 처음인데 감독의 스타일을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 건, 그만큼 이 감독의 노선이 분명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아, 그리고 기억에 남는 송승헌 씨 연기. "은서야~" 할 때 고개를 비틀며 입가를 아래로 살짝 늘이는 버릇이 여전히 남아 있긴 한데 발성이 굉장히 묵직해졌달까, 배우 느낌이 물씬 나는 것이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듯 했다. 혹 앞으로의 행로를 TV보다는 스크린 쪽으로 잡은 게 아닐까 추측하면 오버인가?
여하튼 재미있는 건 나는 영화 속 남자들의 의리, 우정, 형제애 이런 것에 제법 유치한 감동을 느꼈는데 막상 이 영화를 본 (내 주위)남자들은 상당히 냉정하게 반응하더라는 것.
여담이지만, DVD가 출시되면 꼭 한번 세어보고 싶다. 태민이 끌고 온 부하들과 영춘의 총에 맞힌 태민의 부하들 중 과연 어느 쪽이 더 많은지.
영화 전반에 걸쳐 리얼리티는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줄거리를 말하는 게 아니라(이야기야 어차피 픽션이므로 감안하고 본다), 단적인 예로, 대한민국 현실에 어울리는 건 아무래도 총싸움보다는 칼싸움인지라 비록 등장인물들이 무기밀매업에 관계되어 있다고는 하나 (비디오 게임)'바이오 하자드'를 하는 듯 착각이 들 정도로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시도 때도 없이 해대는 총질은 아무래도 이건 좀 아니올시다 싶다. "마이 뭇다 아이가"가 달리 명대사이겠는가.
(그러고 보니, '고마해라'가 '마이 뭇다' 앞에 오냐, 뒤에 오냐로 친구랑 실랑이를 벌였던 기억이 난다)

<시라노>도 <무적자>도 원형을 과거의 작품에서 빌려오거나 가지고 왔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마침 요즘 읽고 있는『클래식 중독』(조선희 / 마음산책)은 저자의 옛 영화 다시 보기 기록으로, 영화 얘기에 덤으로 영화와 얽힌 내외적 수다로 가득하다.
내 경우 기자 혹은 기자 출신이 저자인 책은 사전 정보가 없어도 거의 고민 없이 장바구니에 담는데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대부분)서술간 사실 관계가 명확하고, 글이 의도하는 바가 뚜렷해서 가독성이 좋으며 무엇보다 기자 특유의 촌철살인의 어법을 읽는 것이 즐겁다는 것이 그들을 신뢰하는 이유다.
이 책은 작가가 기자 출신(연합통신 기자, '씨네21' 편집장 등)이라는 점 외에도 옛날 영화에 대한 호(好)가 나와 통했다는 점에서 꽤나 재미있게 읽고 있다.
사실 옛날 영화는 '옛'이 풍기는 어감 탓인지 왠지 촌스럽고, 고루하고, 밍숭맹숭 심심할 것 같지만 막상 영화를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일례로 내 경우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옛날 영화와 마주쳤을 때 거의 대부분 그 영화를 끝까지 보게 되는데, 반면 영화가 현대물인 경우 금방 다시 채널을 돌려 버리는 일이 많다.
참고로 내가 좋아하는(-라기 보다는 여러 의미로 깊은 인상을 받은) 옛날 영화는 국내 작품은 <최후의 증인>(최불암, 정윤희, 하명중 주연), 국외 작품은 <줄 앤 짐>(프랑소와 트뤼포 연출)이다. <최후의 증인>은 몇 년 전에 <흑수선>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되기도 했는데 원작은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이루었던 김성종의『최후의 증인』이다. 이 외에도『클래식 중독』에서도 언급되는 <어제 내린 비>도 무척 인상이 깊었던 영화로 기억에 남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혹시 원작 소설이 있을까 찾아다녔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각본은 (조선희 씨에 의하면)당대 최고 신문 연재 인기 작가였던 최인호이다.

시간이 관계하는 모든 사물은 저마다 고유한 역사를 가지는데 영화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그러므로 작품의 품질을 시간의 선/후로 가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로 보인다. 이번 연휴에 영화를 고를 때 확 끌리는 작품이 없어 고민을 많이 했는데 요즘 들어 옛날 영화가 여러모로 양적 질적으로 더 풍성했고 더 재미있었다는 아쉬움이 부쩍 든다.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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