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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5 bytes / 조회: 6,470 / ????.02.07 17:40
[영상] 따라올테면 따라와 봐!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은 탓인지 왠지 후속편이 있을 것 같은 추측과 기대를 하게 하는 영화 <조선명탐정>.

언제부터인가 극장에 갈 때 거의 대부분 정보 없이 가는데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래야 기껏해야 감독, 배우, 장르 정도.
그래서 이 영화도 시작하고 얼마쯤 지나 정조가 명탐정에게 '열녀문의 비리를 조사하러 적성에 가라'는 어명을 내리는 장면에서야 '아, 이거 혹시 김탁환의 소설이 원작인가' 싶었다.
『열녀문의 비밀』은 김탁환의 역사추리소설인 '백탑파 시리즈' 중 두 번째 이야기로 김 진과 소설의 화자인 의금부도사 이명방이 짝을 이루어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한다. 영화에선 이름을 밝히지 않는(하지만 아마도 김 진이 틀림없는) 명탐정과 개장수 서필이 짝을 이루어 동분서주 활약한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조선 제일 명탐정(김명민 역)의 이름은 끝내 안 나오는데 원작의 진중하고 사려깊은 김 진에 대한 감독의 나름대로 배려가 아닐까 혼자 짐작한다. 그만큼 영화에 등장하는 탐정은 끊임없이 좌충우돌하는 허당 중의 허당.

감독의 이름이 생소하여 뒤늦게 검색해 보니 <올드미스 다이어리>의 TV 연출자이자 극장판 감독이다. 과연, 했다. <조선명탐정>은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깨알같은 잔재미가 시종일관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데 200회가 넘는 긴 분량의 시트콤을 연출하면서 쌓은 내공의 도움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는 재미는 무엇보다 속도에 있다.

<조선명탐정>은 '속도'를 빼고는 얘기가 안 되는 영화다. 시작하는 장면에서부터 강아지를 안은 서필과 관군의 추격전을 보여주더니 영화 내내 화면, 이야기, 하물며 대사까지 쉴 새 없이 빠른 속도로 몰아부친다.
그런데 <조선명탐정>에서 속도는 장점이자 단점이다. 시종일관 지루할 틈 없이 속도감을 가지고 전개되는 빠른 이야기와 영상은 퓨전사극이 가진 경쟁력을 보여주지만 반면 '추리극'답게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고 추리할 틈을 주지 않는다. 중간 중간 "에?" 싶었던 장면은 내용이 전개되면서 "아하!" 로 바뀌지만, 막상 그 순간에 자신의 추리를 맞추는 쾌감이 없다는 게 문제다. 즉 퍼즐 조각은 내 앞에 있지만 퍼즐을 맞추는 즐거움은 누릴 수 없다. 깨알처럼 쏟아지는 잔재미에 웃다 보면 어느새 조각은 하나 둘 저 혼자 맞춰지고 있는 것.

빠른 속도에 오히려 경도된 것일까, 그래서 <조선명탐정>은 막상 중요한 내러티브에서 몇 가지 문제점을 드러낸다.
끊임없이 생동하는 화면이 보여주는 속도에 빠진 나는 영화를 꽤나 재미있게 본 탓에 거의 느끼지 못했는데 함께 영화를 본 M군이 이 부분을 지적했다.
극장에서 나오면서 M군에게 감상을 묻자 "깨알같은 재미는 있지만 스토리의 개연성이 부족하고 반전 때문인지 억지스런 장면들이 좀..." 라고 했다.
이 중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부분은,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이야기 자체가 허술해서라기 보다는 한정된 러닝타임에 너무 많은 소재를 집어 넣는 과정에서 큰 줄기만 보여주고 잔 줄기는 압축해서 건너뛰기를 하는 탓에 그렇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 싶다. '열녀문'에 집중했던 원작과 달리 열녀문, 공납비리, 종교 문제까지 유기적으로 얽고 거기에 명탐정, 서필, 한객주 중 어느 한 사람에게 치우치지 않는 세심한 역할 배분까지... 이 정도면 사실 이 영화가 내용면에서 마지막까지 이만큼의 집중도와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결론은, <조선명탐정>은 감각적이고 재미있는 영화다. 즉 퓨전코믹사극이라는 제 할 도리는 충분히 했다. 는 것이 이 영화를 본 내 감상. 아울러 나중에 DVD가 출시되면 한번 더 봐야지 했다. 이유는 두어 가지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이 영화를 본 후 배우의 연기에 대해 새삼 생각했다. 단순한 손 동작 하나, 평범한(어쩌면 계산된 것인지도 모르지만) 표정 근육 하나, 목소리에 강약이 한 번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관객을 웃기고,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연기를 펼치는 배우의 내공은 감탄을 넘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궁금하게 한다. (부디 오달수 씨의 연기를 좀 더 자주 볼 수 있기를)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는 일단 속도. 그리고 서필(오달수 역). 마지막으로 정조.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지금껏 영상물에 등장한 정조 중 가장 멋있는 정조가 등장한다.



* 이미지는 영화의 장점인 '속도'가 돋보이던 한 장면.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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