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고나서 감독이 궁금해 찾아 보니 전작이 <극락도 살인사건>이다. 전작이 섬이라는 갇힌 공간에서 벌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를 다루었던 것처럼 영화 <최종병기 활>(이하, 활)도 시종일관 '숲'이라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사람과 활이 움직이는데 나무와 돌, 풀숲이 전부인 공간적인 특성을 잘 살려 긴박감과 긴장을 놓치지 않는 속도감과 역동적인 장면들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사실 <활>을 보고 가장 좋았던 것은 제목, 소재, 주제가 수평을 이루며 딱 떨어지는 일관성이었다. '활'은 단지 제목에 머물지 않고 영화 속에서 제 몫을 십분 하는데 제3의 출연자라고 해도 전혀 부족하지 않다. 안 된 것은 여타 블록버스터급 영화들과 달리 소리소문 없이 촬영을 끝내고 조용히 개봉한 이 영화가 너무 가난하다고 해야 할까.
근접 공격이 안 되는 원거리 전용 무기인 활의 매력을 반만 보여준 것 같은 이 영화는 영화 전반에 걸쳐 여러모로 제작비를 아낀 티가 많이 난다. 피난 씬도 그렇고, 장소의 이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그래서 같은 장소에서 위치만 바꾼 게 아닐까 싶은 반복되는 배경 화면-숲 도 그렇고, 활만이 가지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찍은 프레임이 손에 꼽을 정도로 몇 안 되는 것도 그렇고.
이중 특히 아쉬운 건 말그대로 최종병기인 활을 카메라가 다루는 방식인데, 그러니까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로빈훗>이 개봉되었을 때 가장 큰 이슈가 됐던 건 화살에 소형카메라를 부착해 활이 날아가는 장면을 사실적으로 구현해낸 장면이었다. 그런데 아마 활과 화살이 단순한 무기 소품에서 벗어나 매력적인 소재로 탈바꿈한 최초의 장면을 보여준 영화일 <로빈훗>이 등장한지 20년이 지났지만 <활>에 등장하는 활은 로빈훗의 활이 보여주었던 장면조차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다.
그럼에도 <활>은 아주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함께 본 M의 평처럼 요약할 스토리가 없어도, 찍어낸 것처럼 비슷한 장면이 지나치게 반복되었어도, 활을 활용하는 기술적인 장면이 턱없이 부족했어도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까지 나는 영화가 무척 재미있었다. 한마디로 취향인 영화. '스토리가 없다'는 부분은, 개인 생각이지만 이야기의 화자를 인물이 아닌 활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또다른 이야기가 보이지 않을까 싶다. 별 평점은 ★★★★
특기사항: 이 영화를 보며 "우왕, 오빠!"를 부르짖다, 극장 밖 현실로 돌아오면 "우리 오빠는 절대 저럴 리가 없어!"가 된다는 점.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