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자크 피슈테르 『편집된 죽음』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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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4007 bytes / 조회: 3,643 / ????.10.28 00:15
[도서] 장 자크 피슈테르 『편집된 죽음』


몇 달 전에 B가 이 책 얘기를 하는데 그 얘기가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당장 사서 읽어봐야겠어, 했더니 고맙게도 B가 책을 보냈다. 하지만 막상 책이 책장에 꽂히니 당장 읽겠다! 했던 마음은 어느새 흐지부지 되고 몇 달이 지나고서야 꺼내 읽은 책.

 

읽다 보니 99년이던가, 밀란 쿤데라의 소설인 줄 알고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앞 페이지 몇장을 읽고는 시간이 없어 반납했던 소설『표절』의 재출간이라는 걸 알았다. 그때 읽었더라면 아마 또다른 감상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프랑스인 작가의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일본인 (현대)작가의 책을 기피하는 것과 이유가 같다. 언어학적으로 유사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두 나라 출신 작가들의 소설은 감정선이 유치하고 오글거리는 부분이 있어 소설을 읽을 때 집중력이 많이 떨어진다. 알제리 출신의 카뮈를 프랑스인 작가 범주에 넣어야 할지 여전히 진행 중인 쓸데 없는 고민.

 

하여간에, 오랜만에 읽은 소설은 재미있었다.

 

작가는 서스펜스라고 하고, 평자는 미스테리라고 한다는『편집된 죽음』은 한마디로 설명하면 복수극이다. 작가가 되고 싶었으나 편집자가 된 에드워드와 작가가 되길 원했고 작가로 성공한 니콜라는 구도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살리에르 증후군이 주요 모티브.

모든 것을 다 가진 니콜라를 향한 에드워드의 열등감, 열패감이 3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스스로를 니콜라의 그림자로 살게 하지만, 우연히 어린 날 비극으로 끝났던 사랑과 이별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과 마주치면서 에드워드는 지난 세월을 보상받기로 결심한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은 일견 복수극으로 볼 수도 있지만 에드워드의 다층적인 성격으로 인해 간단한 것 처럼 보이는 스토리가 한층 모호해진다.

특히 반전이랄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지는 화자인 에드워드의 기억과 달리 니콜라는 실제로 문학천재 혹은 최소한 뛰어난 작가이지 않았을까, 의심이 살짝 고개를 쳐든다. 혹시 이 모든 과정은 평생에 걸친 친구를 향한 자신의 악의를 합리화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늘어놓은 개인의 비뚤어진 질투는 아닐까, 라는.

 

결국은 자존감의 문제인 걸까.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기대는 건 거울 속의 자아를 훔쳐 보는 것과 같다. 
니콜라는 실제로 뛰어난 작가였을 수도 있고, 혹은 에드워드의 뛰어난 편집이 만들어낸 허수아비 작가였을 수도 있지만, 니콜라가 에드워드의 질투의 대상인 이상 어느 쪽이든 결말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평생을 니콜라의 등을 보며 서 있었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불안이 언제든 에드워드로 하여금 거울 밖으로 뛰쳐나오도록 충동질 했을 테니까. 그런 의미로 야스미나는 단지 에드워드에게 복수의 계기를 만들어 줄 핑곗거리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의심이 가는 대목.

 

재능있는 작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 한때 작가지망생이었던 범재에게 끼치는 영향력과 그로 인한 범재의 심리 묘사가 돋보인다.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 싶은 구성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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