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K의 관계의 가난에 마음이 쓰였다 (p.104)
→ 나는 K의 가난한 관계에 마음이 쓰였다
예시한 문장처럼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 제법 있는데 단순히 작가의 개성적인 문체라기 보다는 전반적으로 퇴고가 부족한 느낌이 든다. 작가의 이력을 생각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부분. 참고로 내 책장엔 이번 소설을 제외한 작가의 전작이 가지런히 꽂혀 있다.
모든 작가들이 그런 것은 아니겠으나 국내작가의 소설을 읽다 보면 우리나라 소설가는 동굴에 틀어박혀 마늘과 쑥으로 100일을 버틴 조상님들의 특정 유전자를 물려받았나 의심이 들 때가 있다. 도통 자기 내면 외에는 관심이 없을 뿐더러 외부 세계와 소통할 생각도 없어보인다. 내 얘길 좀 들어봐, 내 얘길 좀 들어줘....... 끊임없이 이어지는 도무지 소화할 수 없는, 소통불가한 타인의 혼잣말에 귀기울이는 것은 숫제 징벌 받는 기분까지 들게 한다. 맞고 사는 아내의 반복되는 넋두리도 한두 번이지. 자신의 얘기를 하는 건 괜찮다. 하지만 그런 넋두리라도 일기가 아닌 이상 뭔가 확장되는 세계의 찌끄러기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이번 단편집에 수록된 일곱 개 목차의 공통점이라면 '미숙한 인간이 미숙한 행동을 벌이는 이야기'라는 것인데 똑똑한 인물도, 똑똑치 못한 인물도 다들 하나 같이 삶의 바다를 건너는 것에 미숙하다. 하물며 그 바다에 부는 풍랑이 그닥 대단치 않아도 그에 반응하는 태도는 가히 허리케인급 태풍을 만난 듯 과장되고 호들갑스럽다. 더욱 불편한 점은 그럴 주제도 못 되면서 그들 스스로 뒤집어 쓴 위악의 껍질이다. 위악도 영리한 인간이 부려야지, 미숙한 인간의 위악은 범죄다. 이건 도무지 갱생의 여지가 없기 때문.
그럼에도 이 단편집엔 반짝반짝 빛나는 작은 보석이 하나 숨어 있는데, 바로 마지막 목차「프랑스식 세탁소」에 액자식으로 등장하는 요리사 르와조의 이야기다. 길지 않은 분량이고 그나마 액자식이라 띄엄띄엄 흩어져 있지만 이 부분만 똑 떼어내 간직하고 싶을 만큼 문장도 내용도 구성도 참 좋다. 배경과 인물이 서양으로 옮겨가면 이야기가 품고 있는 보편성도 달라지는 걸까, 궁금해지는 대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