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을 규정하는 건 역할인가 신념인가 <광해> (스포)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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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5619 bytes / 조회: 5,486 / ????.11.10 22:22
[영상] 정체성을 규정하는 건 역할인가 신념인가 <광해> (스포)


광해, 왕이 된 남자 Masquerade
감독: 추창민
출연: 이병헌, 류승룡, 한효주


<광해, 왕이 된 남자>의 영어제목은 'masquerade'다. 그러니까 다시 해석하면 <광해, 왕으로 가장한 남자>쯤 되겠다. 결국 주인공은 하선이라는 얘기인가.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충신이었던 두 남자 허균과 도부장, 중전이 자신의 왕으로 인정한 사람은 하선이니 일견 '왕이 된 남자'도 맞는 말이렷다. 무어, 이래봐도 저래봐도 주인공은 광해군이 아니라 하선이라는 말인데...

각설하고.

<신세계>도 <광해>도, 러닝타임이 2시간이 넘는데도 굉장히 짧은 느낌이 든다. 재미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특별히 지루한 장면 없이 그럭저럭 잘 봤는데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나면 묘하게 허전하다. 두 영화를 다 본 M에게 이 얘길 했더니 "내용이 없어서 그렇다"고...
실제로 두 영화의 내러티브는 굉장히 단순하다.
<신세계>는 조폭조직을 와해시키려고 경찰이 내부이간질을 시키는 내용이고, <광해>는 독(毒)에 당한 광해를 대신해 어쩌다 보름 동안 왕 노릇을 하게 된 만담꾼의 얘기인 것.

<광해>에서 돋보이는 건 '웃기는' 재미다. 이 '웃기는' 재미는 도승지 허균과 처음 대면한 하선이 머리에 면보를 뒤집어 쓰고 도부장 손에 끌려가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되는데, 놀랍게도 이 장면에서 하선이 들보에 연거푸 머리를 찧고 넘어지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여준다. 하물며 큰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하선을 돌아보는 허균의 느린 동작마저 웃음을 자아낸다. '광해'는 붕당정치에 희생당한 힘 없는 왕의 말로를 보여주는 전형이다.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후 연호를 받지 못하고 광해군으로 남은 역사적 사실에 더해 하물며 '광해'를 타이틀롤로 삼았으니만큼 영화 <광해>는 어둡고 심각하려니, 미루어 추측하게 하는데 실제로 영화가 시작하고 첫 몇 분은 이런 추측을 크게 빗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에 적응하기도 전에 뒤통수를 치듯 슬랩스틱 코미디가 등장한 것이다.
이후 하선을 둘러싼 세 인물 허균(류승룡), 상선 조내관(장광. 이 아저씨는 '신세계'에도 나온다), 도부장(김인권)이 돌아가며 '웃기는'재미를 선사한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코미디라는 건 아니다. 군왕이 가져야 할 당연한 덕목이 당연한 듯 부인당하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선의 답답한 심정은 그대로 보는 사람의 감정이입으로 이어져 같이 분통을 터뜨리게 한다. 그래서 도부장이 하선을 지키기 위해 칼을 뽑았을 땐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서 울었다. (사실 영화를 본 게 오랜만이라 감명의 기준으로 삼기는 좀 그렇지만...)

역사는 이상적인 국가를 위해 자신의 이상을 포기한 군주가 성공했음을 증거로 남기고 있다.
왕의 권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적어도 조선시대의 권력은 중국황실을 사대로 업은 신권이 공신에게 둘러싸인 왕권보다 우위에 있었음은 분명하다. 마키아벨리의『군주론』은 '지배는 협력이 아닌 독자적인 힘으로 이룰 것'을 강조한다. 그런 관점이라면, 그 자신이 호족 출신이고 호족의 세를 업고 조선개국을 열었던 이성계이니 공신 세력과 협력을 해야 했던 이씨 조선왕조는 태생적으로 절름발이 왕권일 수 밖에 없는 약점을 쥐고 있었던 셈이다.


-덧.
1. 영화말미, 뱃머리 장면. 배에 탄 것이 광해인가 하선인가 왈가왈부하는 사람들을 이해 못 하면 내가 이상한 건가. 미공개엔딩을 보고서 확인했다는 데에 이르면 이건 뭐 거의 유사멘붕... 그래도 덕분에 나도 봤다. 미공개엔딩. 그런데 이 영상은 왜 찍었을까. 계륵도 안 되는 것 같은데...
2. 타이틀롤인데다 1인 2역이다. 이제껏 이병헌이 연기 못 하는 배우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이번 '광해'는 여기저기 아쉬운 부분이 눈에 띈다.
3. <힐링캠프>에 출연했던 이승철 씨. 류승룡 씨와 친해지고 싶어 저녁식사에 초대했다던 얘기를 들으면서 진짜엄청 부러웠다. 나도 이 아저씨랑 친해지고 싶다고. 나 이 아저씨 진짜 좋아하는데...ㅠㅠ
4. 사실 광해군 하면 개시, 연산군 하면 녹수 아닌가. 광해군이 폭군으로만 묘사되던 시절엔 붕어똥처럼 따라다니던 개시가 광해군이 실리외교를 펼친 군주로 탈바꿈하니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아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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