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재미있는 스파이소설!『차일드44』by 톰 롭 스미스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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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28 bytes / 조회: 5,506 / ????.11.22 06:41
[도서] 이토록 재미있는 스파이소설!『차일드44』by 톰 롭 스미스




까만색 표지는 재출간본, 흰색표지는 초판본.
영미권에서 출간된 소설과 가까운 건 하얀색표지. 까만색표지는 홍보글이 너무 많아 번잡스러운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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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70년대 말-90년 대 초 옛소련에서 일어난 52명의 아동살해사건에서 이 소설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차일드44』를 구성하는 역사적 사건은 크게 두 개인데, 하나는 작가가 말하는 아동 연쇄살인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우크라이나 대기근(대학살)이다.

 

소설은 1933년 우크라이나 대기근 시절 우크라이나 한 지역에서 출발한다. 더 이상 먹을 것이 남지 않은 마을에 사는 소년은 우연히 발견한 고양이를 포획하러 동생을 데리고 숲속으로 들어가는데 그곳에서 소년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이후 소년은 고양이와 함께 실종되고 동생은 혼자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시간은 훌쩍 뛰어 넘어 1953년 모스크바로 이동한다.

 

전쟁영웅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는 레오는 유능한 MGB(KGB전신) 상급요원 조사관이다. 그러나 출세길이 보장되고 한창 잘 나가던 레오에게 어느날 시련이 닥친다. 아내 라이사가 스파이혐의로 수사 리스트에 오른 것. 아내에게 씌어진 혐의가 자신의 충성심을 확인하는 일종의 시험인 걸 알지만 레오는 아내를 선택하고 그 대가로 좌천당한다.

『차일드44』는 주인공이 아동연쇄살인을 조사하지만 추리물은 아니다. 한편 주인공이 냉전시대 권력의 아귀다툼 한복판에 있지만 정치물도 아니다. 이 소설은 뭐라고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데 이는 주인공 '레오'의 탓이 크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스릴러의 성격이 강한데 이 스릴러는 전적으로 순진할 정도로 원리원칙을 쫓는 레오의 성격에서 기인한다. 전제정치가 지배하는 공포사회에 최적화된 인물형인 레오는 당이 하는 일이므로 옳고, 당의 모든 결정은 대의라고 믿는다.

 

『태백산맥』때 쓴 적이 있는데 사회주의자 혹은 공산주의자에겐 어린아이 같은 순수성이 있다. 오로지 인민과 당이 선(善)의 모든 것이고, 대의가 모든 것에 앞선다고 믿는 그들은 스스로 가치 판단을 하지 않는다. 레오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 레오에게 최초 균열의 단초를 제공하는 이가 수의사 아나톨리다. 아나톨리가 등장하는 장면은 소설 초반 몇 페이지에 지나지 않지만 이 따뜻하고 긍정적인 인물은 잠깐 등장했다 사라진 후에도 그 잔영이 오래 남는다. 

아나톨리의 인간적인 본성이 레오의 '당의 대의'를 향한 신념에 최초의 균열을 일으켰다면, 그 균열에 힘을 가하는 인물은 레오의 아내 라이사다. 라이사는 이제 막 알을 깨고 바깥으로 나온 레오에게 그가 살던 바깥 세상으로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단순히 스파이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엔『차일드44』는 가지고 있는 미덕이 많다.
일견 조지 오웰의『1984』를 연상케 하는, 소설 전반을 지배하는 공포사회의 경직된 분위기는 피가 난무하는 잔인한 장면 없이도 억압되고 폐쇄적인 공포를 자아낸다.

소설을 읽던 중간에 M에게 소설 초반 레오에게 닥친 시련을 얘기해줬더니 영화 <이퀼리브리엄>이랑 비슷한 내용이냐고 물었다. 그러고 보면 두 작품 모두 전제정치가 지배하는 사회를 동일한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개인을 부정하고 개인의 인간성을 그들 시스템의 적으로 간주하고 억업하는 과정은 어쩌면 그렇게 공식적인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스티븐 킹은 소설은 첫째도 둘째도 재미가 있어야 된다고 했다.『차일드44』는 일단 재미있다. 무엇보다도 깔끔한 문장이 주는 몰입감은 최고다. 호흡이 짧고 건조한 느낌이 드는 단문은 그 속도감이 굉장해서 특히 추격 장면 등은 지면을 벗어나 한 편의 영상을 보는 현장감을 준다. 무엇보다 꽤 오래전에 흥미가 다했다고 생각했던 장르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동력! 덕분에 아마존에서 오랜만에 책을 검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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