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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4557 bytes / 조회: 4,929 / ????.12.12 03:59
[도서] 『책은 도끼다』by 박웅현


최근 몇 년 간 기억을 뒤져봐도 완독하는 데 시간이 가장 오래 걸린 책이 아닌가 싶다.
재미없다거나 지루하다거나 어렵다거나..등등의 문제가 아니라 순전히 책 한 권 읽는 데 온전히 내 시간을 성실하게 쓰지 않은 탓이다. 구체적으로 잠들기 전 조명을 켜두고 그 아래서 읽다가 졸리면 자는 패턴을 반복했더니 독서가 덩달아 띄엄띄엄- 됐다. 

'타인의 독서'를 읽는 것은 독서의 사전적 정의를 제외하고도 그것 고유의 즐거움이 있다.
'이 책을' 이 사람은 이렇게 읽었구나, 여기서 감동을 느꼈구나, 이런 영향을 받았구나 등등... 감상을 공유하는 재미인데 장점은 내가 읽은 책은 그것대로, 읽지 않은 책은 또 그것대로 나름의 '공감의 보람'이 있어 부담이 없다는 거다.

그 한 예로, 나는 알랭 드 보통을 내 서점 장바구니에서 떠나보낸 지 오래인데 박웅현의 '알랭 드 보통'을 읽고 몇 년 만에 이 관념적이고 현학적인 프랑스인 작가를 다시 볼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 접근 방식이 달라서 박웅현의 눈에는 보였던 것이 내 눈에는 안 보였을 수도 있으니까. 평소 '텍스트'를 싫어하는 M에게 늘 하는 말 - 길지도 않은 인생길에 문맹도 아닌데 좋은 글, 좋은 작가가 있는데도 그걸 읽지 않고 지나친다면 얼마나 아까운가,는 당연히 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얘기다.

작가와 작품에 따라 꼭지가 여러 개로 나누어지다 보니 그 중에는 요철처럼 튀는 꼭지도 있다. 내겐 6강 밀란 쿤데라의『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그랬다.
나 역시 박웅현처럼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프라하의 봄>도 봤고, 소설『참을 수 없는 존배의 가벼움』도 읽었다.
영화를 본 장소와 이유가 조금 특이한데, 학부 때 음대생 친구를 따라 음대 공연홀에서 교양수업으로 들었던 '서양음악사' 수업 중에 강의 대신 이 영화를 봤다. 그때도 지금도 이 영화가 서양음악이랑 무슨 상관인지 모르지만 좋아하는 배우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주연이고, 또 이 영화를 이미 봤다던 과 동기가 영화에 등장하는 '사비나'에 대해 극찬을 했기 때문에 꽤 기대를 가지고 봤던 기억이 난다. 참고로 '사비나'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던 친구는 남자다.
이런저런 이유로 영화를 보고 몇 년이 지나서야 밀란 쿤데라의 원작소설을 읽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박웅현이 텍스트 속에서 숱하게 찾아낸 기호와 상징을 나는 소설을 읽는 동안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소설 시작 부분에 나오는 니체의 '영원회귀'에 대해, 니체는『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이 개념을 설명할 때 한 예로 어린아이가 공놀이를 하는 것을 비유로 든다. 삶은 영원하지 않고 그 유한성 때문에 즐거움도 끝이 예정되어 있고 인간은 필연적으로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 순간을 즐겨라! 카르페디엠!- 하는 뭐 그런 심오하고 어려운 개념인데, 이 개념을 소설의 서두에 등장시킨 쿤데라의 의도는 너무나 완고하고 분명하다. 그리고 박웅현이 읽은 기호와 내가 읽은 기호는 여기, 시작에서부터 차이를 보인다.
어쨌든 박웅현의 해석도 신선했지만 결론은 이 소설을 오랜만에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내가 예전의 내가 아닌 것처럼, 다시 읽는 소설은 예전과 다른 소설일 수도 있으니...

타인의 독서기를 읽는 건 결국 이런 게 아닐까.
나와 감상의 포인트가 비슷하거나 일치하면 한 곳을 보며 나란히 걸어 가는 친구이고, 다르거나 차이를 보이면 마주 보며 토론하면서 걸어 가는 친구인...
어느 쪽이든 나쁘지 않다.

무려 1판 56쇄인 이 책이 시중 베스트셀러의 법칙에 해당되지 않는 베스트셀러여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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