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힘은 세다 <타인의 삶>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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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5973 bytes / 조회: 6,995 / ????.03.27 17:38
[영상] 이야기의 힘은 세다 <타인의 삶>



*포스터 이미지 출처: 네이버영화



2006년 개봉작인 영화를 뒤늦게 찾아보게 된 계기는 브레히트의 '마리아의 추억'이 인용되었다는 얘길 듣고서였다. 브레히트의 시를 인용하는 영화라니 상상만 해도 가슴이 뛴다.

독일 영화.
1984년 동독. 감청과 도청이 절정에 달한 시기에 능력있는 비밀경찰 비즐러는 인기 극작가 드라이만을 감청/도청할 것을 명령받는다. 여느 때처럼 무감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비즐러가 간과한 게 있다면, 극작가 드라이만과 여배우 크리스타 부부의 삶을 엿듣는다는 건 베르히트의 시집을 읽고,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를 듣는 것이며, 예술가들의 열정 가득한 논쟁을 엿듣는 걸 의미한다는 거다.
비즐러가 드라이만의 서재에서 훔쳐온 브레히트의 시집을 읽는 장면은 영화 <이퀼리브리엄> 초반에 숀 빈이 예이츠를 읽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말미, 마지막 15분이 남기는 감동이 묵직하다. 뭉근하게 치밀어 오르지만 확 터지지 않고 가슴에 머문다. '울고 싶은 기분'이란 이런 거구나.

초반부와 말미에 드라이만의 작품을 공연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기분 탓인지 브레히트의 서사극을 연상케한다.
오랜만에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의 완결성이란 이런 거다- 라고 보여주는 영화.
구체적으로 세어보진 않았지만 이제껏 본 영화를 통틀어 다섯 손가락에 꼽는 영화가 될 것 같다.

* 마리아의 추억(혹은 마리A의 추억)은 브레히트의 몇 안 되는 서정시이지만 서정시도 실존주의 작가가 쓰면 이렇게 깊은 울림을 준다는 사실.

마리아의 추억

1
그 푸르렀던 9월의 어느 날
어린 자두나무아래서 말없이
그녀를, 그 조용하고 창백한 사랑을
나는 귀여운 꿈처럼 품에 안았었다.
우리의 머리 위로 아름다운 여름 하늘에
구름은 아주 하얗고 아득히 높아 
내가 올려다 보았을 때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

2
그 날 이후 수많은 달들, 숱한 세월이 소리없이 흘러 지나가 버렸다.
그 자두나무들은 아마 베어져 없어졌을 것이다
사랑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너는 나에게 묻는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나는 너에게 말하겠다.
하지만 네가 무슨 뜻을 품고 있는지 나는 이미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정말로 끝끝내 모르겠다.
내가 언젠가 그 얼굴에 키스를 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3.
그 키스도, 구름이 거기 떠있지 않았더라면
벌써 오래 전에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 구름을 나는 아직도 알고 앞으로도 항상 알고 있을 것이다.
구름은 아주 하얗고 위에서 내려 왔었다.
어쩌면 자두나무들은 아직도 변함없이 꽃피고
어쩌면 그 여자는 이제 일곱번째 아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구름은 잠깐동안 피어 올랐고
내가 올려다 보았을 때, 이미 바람에 실려 사라졌었다. (1920년)

*마리아 : 아우구스부르크 시절의 애인, 로자 마리 아만(Rosa Maire Aman) 

- 인용한 책은 한마당의『살아남의 자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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