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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8994 bytes / 조회: 5,283 / ????.05.31 23:36
[도서] 『고양이의 서재』by 장샤오위안


(전략)전에는 책을 고르는 데 망설이지 않고 금세 한 권을 뽑아 들었다. 책이 늘자, 특히 서점에서 직접 살펴보지 못한 책이 늘자 집을 나설 때나 화장실에 가기 전에 책을 찾으며 망설이게 되었다. 이 책은 서평을 써 주기로 했으니 먼저 봐야 하지 않나? 그런데 이 책은 내가 오래 찾던 책이고 이제 경우 도착한 건데 대체 얼마나 기다린 책이냐. 아, 이 책은 지금 보니 굉장히 재미있네? 왜 여태 먼저 읽지 않았지? 이런 식이다. 도대체 어떤 책을 골라야 한단 말인가? 어떨 대는 반나절을 망설이다 결국 아무거나 집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활자 중독증'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p.93

 나 자신의 서재에 대해 나 역시 몇 가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난 대체 이 책들로 뭘 하려는 것인가? 나는 이 책들이 나와 함께하길 바랄 뿐이다. 책 가운데 다수는 아마 읽지 못할 테지만 그래도 난 그 책들이 내 곁에 있기를, 내가 필요로 할 때 가까이 있기를 바란다. -p.192

 사상가 후스(胡適)는 장제스(蔣介石)의 전용기가 그를 태우고 타이완으로 가기 전날 밤 밤새도록 책을 정리했다고 말했다. 책은 왜 귀할까? 가장 중요한 점은 책이 돈으로 가늠할 수 없다는 데 있을 것이다. 어떤 책은 한번 사라지면 아무리 큰돈이 있더라도 사지 못한다. 책은 한 권 한 권 모두 서재의 주인이 고생해서 모은 것이고 그런 책의 뒤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숨어 있기도 한다.
온종일 핵심으로 달려가려고 몸 달아 할 것이 아니라 과정을 즐길 필요가 있다. 과정이 의미이며, 과정이 없으면 의미도 없다.
책으로 생긴 인연은 책을 만나는 과정에서 생긴다.

"도대체 어떤 책을 골라야 한단 말인가"는, 내가 책장을 볼 때마다 하는 고민.

오카자키 다케시의『장서의 괴로움』이 장서가의 고충을 토로한다면『고양이의 서재』는 책벌레의 즐거움을 얘기한다. 
저자 장샤오위안의 직업적 프로필의 가장 첫머리는 '과학사학자'이고 이어 천문학자, 성(性)학자, 저자, 번역가 등등이 이어지는데 그러니까 프로필을 통해 저자가 책을 엄청 좋아하는 과학자라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여느 '책을 좋아하는 비문학인이 쓴 에세이'와 다른 점은 저자가 미리 밝힌 것처럼 에세이라기보단 만담에 가깝다는 것에 있다. 한마디로 저자가 처음 '책'에 반한 유년 이래로 청소년기, 청년기를 지나 장년이 되도록 삶의 일부분이었던 책 수다로 가득하다. 이 수다는 책 읽는 취미를 가진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는 저자의 책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데, 그야말로 정말 책을 좋아하는 사람, 정말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의 애정이 행간마다 느껴진다. 


<고양이의 서재>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이며 흥미를 끄는 부분은 아무래도 책 소개에도 나와 있듯 중국 문화혁명 시기의 '책의 수난'이다. 진시황의 실정(失政)의 대표적인 악행으로 알려진 분서갱유는 마오쩌뚱에 이르러 비록 책을 불태우고 학자를 땅에 묻지는 않았으나 문화혁명이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당이 출판물을 일방적으로 독점하고 검열하는 현대판 분서갱유로 되살아난다. 역설적이지만 장샤오위안의 독서 이력이 빛을 발하는 건 바로 이 때문이다. 독서행위가 자칫 사상검열로 이어질 수도 있는 열악한 상황 때문에 오히려 책의 무한한 매력에 눈을 뜬 장샤오위안은 부모의 도움으로 또래에 비해 취미생활이 비교적 수월했던 것은 물론이고 책덕후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리고 이때의 경험은 지적 재산이 되어 이후 장샤오위안이 대학에 진학하고 평생의 직업을 결정하는 순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올바른 독서가 인간에게 미치는 좋은 예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락적인 관점에서 재미있었던 부분은 「과학소설의 세 겹 경계」에 등장하는 SF와 관련한 내용인데 그중 헐리우드 영화 <매트릭스>를 개봉에 앞서 해적판으로 봤다는 내용이 있다. 해적판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에 대한 언급은 없어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저작의 권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저자의 해적판 감상 수다가 인상적이다.
참고로 찾아 보니 <매트릭스>의 중국 개봉 제목은 <흑객제국(黑客帝國>이다. (이런 중국!)

저자는 영상물과 관련해선 스스로 '디스크파'라고 부르는데 그러니까 극장 관람보다 집에서 보고 싶을 때 언제나 볼 수 있다는 이유로 디스크를 소장하는 걸 선호한다. 서재에 3만 권에 달하는 책을 꽂아두는 저자의 수집욕을 볼 때 '디스크파'가 아니면 오히려 이상할 것 같지만. 디스크파인 저자와 달리 극장파인 친구는 어떤 영화는 극장에서 30번이나 봤는데 그 영화가 바로 '서유기 시리즈'라는 것이다. 고백하건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중화권 영화는 주성치의 '서유기 시리즈'이고, 다섯손가락에 꼽는 영화에 반드시 들어가는 작품도 '서유기 시리즈'다. <월광보합>과 <선리기연> 두 편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주성치의 천재성의 정점이다(라고 감히 나는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엔 '김용'으로 알려진 무협소설가 '진융' 얘기도 흥미를 끄는데 그의 지인이 준비한다는 진융 소설 열다섯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인보인 '진융소설인물인보'는 나도 꼭 보고 싶다. 1924년 생인 진융은 1972년 『녹정기』를 끝으로 절필했는데 그의 신작을 다시 보고 싶은 기다림은 여전하다. 중화권 최고의 영화가 '서유기시리즈'라면 중화권 최고의 작가는 '진융'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고백하건데 그의 열렬한 팬이다.

그런데 한참 재미있게 읽다 말고 응? 하는 대목이 있었으니, 장샤오위안이 진융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 중 결혼하고 싶은 타입이라고 꼽은 '강민'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단정순의 옛연인이며 부방주 마대원의 부인이라는 강민이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집에 오자마자 폭풍검색을 하니 『천룡팔부』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진융의 소설 중 가장 재미없게 읽은 책이라 아마 기억도 흐릿했던 모양.

:::진융 소설에 등장하는 미인들을 정리한 블로그 링크
http://★blog.daum.net/shanghaicrab/16155271 (주소창에서 ★을 삭제하고 연결하세요)

이 외에도 유년시절 셰익스피어를 암기할 정도로 좋아했던 다윈의 감성이 자서전을 쓰는 칠순이 되자 마른 모래처럼 버석하게 말랐다는(다윈 자서전 인용 by 저자) 얘기를 할 때는 노년에 들어선 저자의 나이 탓인지 그 어투가 사뭇 진중하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이렇듯 책 한 권으로도 이렇게나 수다를 떨게 하는 장샤오위안. 아마 그를 만난다면 십년지기처럼 밤새워 얘기를 나눌 것이 틀림없다. 그가 아니라 같은 취미를 가진 누구를 만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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