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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38 bytes / 조회: 5,029 / ????.10.01 00:08
[도서] 레나타 살레츨『불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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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들ㅣ레나타 살레츨

 

 

오늘날의 불안은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바라건데 장기적으로는 없애야 할 것 ㅡ 요컨대 주체의 행복을 가로막는 궁극의 장애물 ㅡ 으로 인식된다. 반면 철학과 정신분석에서는 불안을 인간의 본질적 조건으로 논의했다는 것을 사람들은 거의 잊고 있다. 즉, 불안은 사람들을 마비시킬 수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데 매개가 되는 바로 그 조건이기도 하다. - p.40, 같은 책 서론

 

이를테면 불안과 두려움의 차이는 이런 거다.

전장 한가운데 선 군인은 외부의 적과 싸우는 동시에 내부의 적과도 싸운다. 여기서 외부의 적 '적군'은 두려움의 대상이고, 내부의 적 '심리'는 불안의 대상이다. 즉, 두려움이 보이는 적으로부터 느끼는 위협이라면 불안은 보이지 않는 적으로부터 느끼는 위협이다. 

 

레나타 살레츨의『불안들』은 프로이트와 라캉에게서 불안 개념의 기저를 빌려오는데 프로이트의 '불안'과 라캉의 '불안'은 물론 다르다. 알려진대로 프로이트는 애초에 내면에 잠재된 무의식이 불안을 품고 있다고 봤고, 라캉은 내면과 외부의 충돌로 인해 불안을 인지하는(ref. 거울이론) 것으로 봤다.

 

조금 더 들여다보면 프로이트의 불안은 거세 위협에 대한 주체의 (신경증)반응으로 결국 불안은 억압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에 있으며, 나아가 불안을 억누르는 특정 방식이 '공포증'이고, 공포의 대상을 피함으로써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 유명한 '성기 거세 공포'가 등장한다. 프로이트는 인간이 가지는 가장 큰 공포는 '성기 거세'라고 단언하는데 이는 불안을 대상 상실의 위험에 대한 반응으로 본 데서 연유한다.

 

이에 반해 라캉의 관심은 '불안' 자체보다는 언어와 문화가 어떻게 우리의 불안을 형성하는가 관찰하는 것에 있다. 라캉은 불안은 단순한 행동변화로는 정말 해결될 수 없는가 질문을 던지고 환상을 붕괴시키는 원인으로 현실인식을 지목하는데, 실제로 우리는 현실도피 수단으로 환상을 심어주는 방식이 활용되는 사례를 공공연히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이 대표적인 예로 전쟁에 나가는 군인으로, 살상을 앞둔 군인에겐 외상과 죄책감을 완화, 제거할 방법으로 심리적 훈련(=쇄뇌) 혹은 약물 주입이 행해진 것을 드는데 이런 방식이 인도적인가 비인도적인가 하는 논란은 현재에 이르러서는 '킬러로봇'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술적으로  비교불가하게 정밀하지만 인간성이 결여된 로봇의 공격은 공격자에겐 인도적이지만 방어자에겐 폭력적이라는 찬반논쟁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킬러로봇의 상용화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건 인도/비인도의 문제를 떠나 디지털의 옷을 갈아입고 있는 현대전(現代戰)의 특징이기 때문.

 

라캉은 주체가 자기소멸(=자살)을 택하는 까닭을 환상이 붕괴되었기 때문으로 해석하는데(=환상에서 뛰쳐나오는 것, p.47) 실제로 어떤 사람에겐 현실인식이 오히려 불안을 불러들이는 위협이 되기도 한다. 현실을 외면하고 환상을 선택하는 도피 심리는 영화의 단골소재이기도 한데, 예로 워쇼스키 남매의 <매트릭스 1>에는 요원 레이건이 모피어스를 넘기는 조건으로 파란약(환상)을 요구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자기소멸'에서 특기할 것은 때로 어떤 자살은 소멸 자체보다 메시지를 보내는 것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이다. 라캉에 의하면 자신의 고통을 인정받고자 ¹대타자를 도발하는 것인데, 특기할 점은 어떤 자살은 대타자로부터 반응을 끌어내려는 최후의 필사적 시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¹ 대타자(Big Other)

주체가 태어나는 사회적/상징적 관계망과 주체의 관계이며 사회를 조직화하는 제도, 의례, 주체를 말하는 언어로 특징짓는 언어와 관련있다.

  

'환상과 불안'은 주체가 대타자, 즉 상징적 질서와 자신을 특징짓는 결여를 다루는 두 가지 상이한 방식. 환상의 도움으로 주체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이 이야기를 통해 주체는 자신의 삶을 일관적이고 안정적이라고 인식하는 동시에 사회적 질서도 일관적이고 적대가 없다고 인식한다. 환상이 주체에게 어떤 편안함을 준다면 불안은 불편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하지만 불안에는 단순히 사람들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불안에는 주체를 준비 상태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고, 따라서 이는 주체가 자신의 환상을 완전히 산산조각 냄으로써 신경쇠약이나 트라우마를 유발할만한 사건을 맞닥뜨리는 경우 무기력해지거나 놀라는 정도를 줄여줄 수 있다. - pp.100-101(요약)

 

 

글머리에 군인의 두려움과 불안에 대해 언급했는데, 질문을 논외로 좀 더 확대해보자.

그렇다면 적군의 죽음과 아군의 죽음을 다루는 방식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인간은 사회화 과정에서 동일시(Identification)를 통해 적응과 반응이라는 두 가지 반응 형태를 습득하는데 이를 투사적 동일시와 내사적 동일시라고 부른다(ref. 클라인 학파 이론). 여기에서 라캉의 '환상'과 유사한 맥락이 투사적 동일시인데, 투사적 동일시에 의하면 전장에 선 군인에게 적군과 아군은 말하자면 환상을 통과해 접근하는 타자이다. 한 예로, 국내 애니메이션의 선구자 김청기 감독의 반공애니 시리즈 <똘이장군>을 보자. 이 애니에는 늑대 탈을 쓴 인민군과 괴수돼지 모습을 한 붉은수령이 나오는데, 괴수돼지가 최후를 맞을 때 모르긴 해도 아마 당시 극장에선 기립박수가 터지지 않았을까.

 

재미있는 것은 현대사회의 불안과 과거의 불안은 질적인 양상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살레츨은 특히 현대인의 불안이 물질자본주의에서 기인하는 새로운 불안정감으로 연결되는 것에 흥미를 보인다. 과유불급이라, 지나치게 '과다하게' 넘쳐나는 현대사회의 물질문명이 오히려 인류에게 보다 발전된 형태의 불안을 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요즘 '선택장애' 혹은 '결정장애'라는 표현을 공공연히 보고 들을 수 있는데, 이는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취하고 버릴 것을 골라내는 것이 정보취득만큼이나 중요한 문제가 된 현대사회의 단면으로 선택의 풍요는 ²'결정장애(뷔리탕스 Buiridantis)'라는 심리현상을 낳는다는 실례이다.

 

² 뷔리당의 당나귀(Buridan's ass): 양쪽에 먹이를 둔 당나귀가 어느 쪽을 먹을 것인가 결정 못하고 아사한다는 이야기

 

한편 저자는 현대인의 소유 개념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오스트리아 철학자 로버트 팔러의 '상호수동성'을 빌려 흥미로운 얘기를 한다. '상호수동성'이란 주체가 자신의 향락을 중개인에게 맡겨 즐긴다는 개념인데, 영화를 녹화하기만 하고 보지 않는 것은 중개인인 녹화기가 자신을 대신해 영화를 즐겼기 때문이며 이러한 중개인의 역할은 큐레이터, CNN종군기자에게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니까 대중은 일상에 영향을 받지 않는 범위에서 큐레이터, 종군기자를 통해 미술을 감상하고, TV와 신문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보고 듣는다는 것이다. 참고로 한나 아렌트는『사진에 관하여』에서 렌즈 너머에서 타인의 비극을 동정하는 시선의 비인간성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제레미 리프킨는 일찌기 ³『소유의 종말』을 통해 현대사회의 소유의 개념이 독점에서 접속으로 바뀔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실제로 세계의 많은 석학들은 '소유경제'였던 자본주의의 다음 단계는 '공유경제'가 차지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으며 '공유경제'가 미래의 화두가 될 것이라고 단언하는 인터뷰를 여러 매체의 지면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참고로 제레미 리프킨의 최신간『한계비용 제로 사회』역시 공유경제를 다루고 있다.

 

³ 하이퍼 자본주의, 더 정확히 말하면 '경험'경제에 기대는 '문화' 자본주의에 진입하고 있는데 거기서 개개인의 삶은 시장이 된다. 시장은 네트워크의 경로를 관리하고 있고, 소유(ownership)은 접속(access)로 대체되고 있다.

 

프로이트는 아동기의 불안을 죄책감과 연관된 것으로 보고 불안은 초자아와 중요한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역설적으로 불안을 낳는 것은 실패의 가능성이 아니라 성공의 가능성으로 봤는데, 라캉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이를 ①불안은 대상의 결여가 아니라 결여의 결여, 즉 결여의 자리에서 대상이 출현함으로써 유발되며, ②불안은 욕망과 주이상스(Jouissance)의 정중앙에 있다고 봤다. 

 

주이상스는 'guilty pleasure'의 개념으로 읽으면 한결 이해가 쉽다.

 

인간이 직면하는 다양한 '불안'과 '불안징후'에 대한 저자의 전개를 쫓아가다 보니 문득 이런 의문이 생긴다.

- 불안을 굳이 인위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제거해야할 위험분자로 봐야 히는가.

- 현실이 위협받거나 붕괴된다면 불안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닌가.

- 불안이 없는 현대사회는 과연 이상적인 낙원일 것인가.

 

한편으론 인간이 불안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환상'을 동원해 현실로부터 도망치거나 현실을 회피하려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본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우리는 '이건 꿈일 거야'라는 말을 흔하게 하고 듣는다. 불안은 그것이 심리적 기저에 의한 것이든 사회적 기저에 의한 것이든 결국 인간의 불완전함에서 기인하는 것이므로 인간은 불안을 동전의 양면처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자세도 필요하다. 결국 중요한 건 (대개의 문제가 그렇듯)'불안'의 정체성이 아니라 불안을 다루는 인간의 태도일 것이기 때문.

살레츨의『불안들』역시 '불안'이라는 대상을 보는 다양한 각도의 시각을 들려주고 문제제기를 할 뿐, 언제나처럼 해답은 스스로의 몫이다.

 

서문을 읽은 직후 메모패드를 꺼내 마지막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요약과 메모를 하면서 읽었다. 하지만 막상 리뷰를 하려고 메모패드를 보니 애초에 써야지 했던 내용의 절반도 기억 안 나는 건 함정.; 

300쪽이 채 안 되는 가벼운 판형과, '쉽고 재미있다'는 리뷰와, 높은 sales 포인트에 교양심리서 정도로 생각하고 집었다가 아이쿠- 했지만 이건 내 얘기이고 프로이트, 라캉과 친숙하다면 보다 독서가 순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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