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만 루슈디『조지프 앤턴』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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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12358 bytes / 조회: 4,855 / ????.10.05 15:21
[도서] 살만 루슈디『조지프 앤턴』


 

* 엑티브.exe만 아니었으면 저 책들 사이에 자리잡았을『조지프 앤턴』. 나는 작가 살만 루슈디에게 '호'임을 미리 밝히고 쓴다. 국내출간작 중 책장에 없는 책은 '피렌체의 여마법사', '이스트, 웨스트'(최신간). 아동/청소년 분류 제외.

 

꼽아보니 내게 루시디였다가 루슈디가 된 시간은 살만 루슈디와 파트와의 시간, 딱 그만큼이다. 루슈디의 자서전이라니 왠지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얄미운 인간에게 휘두르면 딱이겠다 싶은 총 824쪽의, 중간중간 북마크를 꽂고 메모를 하는 수 초도 아까워하면서 키득키득 읽어내려갔던 이 두꺼운 양장본은 완독하는대로 논문에 준하는 장문의 리뷰를 써주겠어- 했던 다짐이 무색하게 읽은 직후 부산에 다녀오는 공백을 거치면서 내 머리 속도 공백이 되었다. 그나마 내 머리 속의 지우개를 의심하며 독서 틈틈이 건성건성 메모한 것마저 없었으면 이 재미있는 책에 대해 내가 할 말은 '재미있었음' 이 한 줄이 전부가 될 뻔 했다.

 

* 이하, '조지프 앤턴' 메모...

  

- 루슈디는 메리앤과 도대체 언제 이혼하는가. 삶은고구마 100개 쯤 먹은 답답함. CIA가 안가를 뒤졌다고 거짓 정보를 흘리고, 남편의 지인들에게 남편을 비겁한 겁쟁이로 매도하고, 시시때때로 거짓말은 일상다반사, 와중에 남편의 친구와 바람도 피는 나쁜년 메리엔. '사랑과 전쟁' 수준의 막장에 준하는 루슈디와 메리엔의 일화. 욕하면서 읽는 재미.

- 모든 삶은 정치적 선택의 연속. 하물며 저녁 테이블 위에 올라온 한 끼도 정치적 산물이다.

- 국가간 정치적 이해관계가 종교적 위협으로부터 작가를 어떻게 방치하는가.

- 소설적 재미가 필립 로스의 소설을 읽을 때와 유사하다. 확인하니 역자가 같다. 내친김에 책장을 뒤져보니 같은 역자의 책을 다수 발견. 기쁨.

- 긍정과 낙관이야말로 삶을 견디는 원동력.

- 살만 루슈디의 1989년

역사적 사건: 톈안먼 사태, 베를린 장벽 붕괴

개인적 사건: 파트와(전 세계 무슬림에게 살인면허를 쥐어주는 일종의 사형선고)

- 10년이 넘게 지속된 파트와, 무슬림의 협박과 죽음의 공포. 루슈디 경호를 예산낭비라고 비난하며 경호 철회를 주장하는 내부의 '적'들.

- 파트와 공표 이후 몇 개월이 지날 무렵 가명 '조지프 앤턴' 탄생. 이는 즉 그의 도피와 은둔 생활이 장기화된다는 의미.

- 궁금했던 제목 '조지프 앤턴'의 정체는 조지프 콘래드와 안톤.C.체홉에서 딴 것.

- 힌두교 80.5%, 이슬람 13.4%인 인도가 무슬림의 표적인 루슈디 고립에 그토록 앞장선 이유는?, G7과 서유럽으로 구성된 서방세계를 상대로 그토록 오랫동안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이란의 지정학적, 정치적 입지 혹은 배경은 무엇?

- 영국내 무슬림의 질적양적 영향력, 파급력.

- 88년 이란의 시아파 수장 호메이니가 파트와 공표, 89년 호메이니 사망 후 공식적으로 파트와 철회. 그러나 실제로는 1주기가 돌아올 때마다 파트와 재천명.

- 파트와 해결에 햇수로 13년(1989-2002)이나 걸린 건 루슈디가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고려 대상이었던가 아니면 그닥 '별볼일없는' 기회비용이었던가.

- 죽을 때까지는 살아야 하니까.

- 삶을 지배하는 건 운명이 아닌 우연.

 

메모의 마지막 핑크색 두 줄에 부연하면...,

첫 번째는 루슈디가 절망하려는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고,

두 번째는 엘리자베스를 처음 만났을 때 한 말인데,

그의 상황과 별개로도 울림과 공감이 크다. 참고로 은둔 생활 중에 만나 애틋했던 엘리자베스와는 이후 볼썽사나운 싸움 끝에 이혼했다. 루슈디의 *'우울함, 호전성, 현명함, 자기연민, 조심스러움, 나약함, 이기주의, 강인함, 쩨째함, 단호함'과 관련된 일면들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 바로 그의 여성편력인데, 일단 책에 등장하는 두 번의 결혼은 모두 모양새가 전혀 아름답지 못한 이별이 되었다. 이는 루슈디가 여자를 '몹시' 좋아하는 남자였기 때문에 당연하게 따라오는 여난인데, 순수한 호기심으로 파트와 철회 이후를 검색해보니 그의 여성편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모양. 인도인 남성하면 흔히 떠올리는 정체성이랄까, 민족성이랄까...를 생각하면 루슈디 입장에선 한때는 사랑이었던 그녀들의 비난이 억울할 수도 있겠으나, 그래도 이제 정신 좀 차렸으면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작가로서의 재능을 아끼기 때문이다. 재능있으면 일부일처, 일부종사해야 하는가? 묻는다면, 못할 건 뭔가? 반문하고 싶다.

 

* 그들은 루슈디의 온갖 모습을 - 우울함, 호전성, 현명함, 자기연민, 조심스러움, 나약함, 이기주의, 강인함, 쩨째함, 단호함 등을 - 두루 목격하면서도 끝까지 그를 도와주었다. -p.262

 

자서전으로는 독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이 직접 3인칭 시점으로 쓴 이 책은 유년, 청소년기가 잠깐 등장하고 작가로 등단했던 시절을 짧게 거쳐 호메이니의 파트와 공표와 함께 바로 본문으로 들어간다. 

 

죽음이 발뒤꿈치를 끊임없이 쫓아오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하물며 그 시간이 언제 끝날 지도 알 수 없다면.

그 시간이 11년이 될 것임을 미리 알았더라면 견디기가 더 쉬웠을까. 삶과 죽음을 대상으로 하는 가정은 의미 없겠으나 분명한 건 그 지난한 시간 동안 루슈디를 지탱해준 건 낙천과 긍정이었다는 거다. 이후 자서전의 영양분이 되었던 은둔 기간의 메모가 그것을 증명한다. 루슈디가 가진 최고의 재산은 책 한 권을 쓰는 지성이 아니라 삶을 향한 낙관적 애착이었던 것.

 

이 책을 읽기 전, 하필 모커뮤니티에서 인도인에 대한 생생한 불평, 불만, 비난, 비판을 읽은 터라 어쩔 수 없이 특정 민족을 향한 약간의 편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는데, 가령 루슈디가 가디언 지면을 통해 존 르 카레, 크리스토퍼 히친스와 펜으로 싸웠을 때, 루슈디의 편을 들기 보다는 그들에게 그럴만한 이유나 사정이 있었겠지- 라는 가능성을 열어둔다던지 하는. 밝히건데 나는 카레옹과 히친스의 열렬팬이다.

실제로 루슈디는 **르카레의 인터뷰를 잊지 않고 지면에 첨언한다. 본인도 인정하듯 쩨쩨할지는 모르나(11년이 지났는데도 잊지 않는 쪼잔함을 보라) 한편 그의 기본적인 성향은 낙천성이라는 짐작을 갖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지만 별개로 인도계 문학인들 모임에서 만난 줌파 라히리를 말그대로 '까는' 일화를 읽을 때는, 아니 이 나쁜냔!, 동조의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인정한다. 난 여자의 적이다. 참고로, 글쓴이가 작가이다 보니 동시대의 많은 작가들이 직,간접으로 찬조출연하는 재미는 덤.

 

**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08년, 존 르카레가 인터뷰에서 오래전의 그 사소한 언쟁에 대해 언급한 글을 읽었다. "어쩌면 내가 틀렸는지도 모릅니다. 틀렸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pp.683-689) 

 

이 책은 죽음의 공포로부터 도망쳐야 했던 인간의 11년의 기록이다. 그런데도 유쾌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건 그 끝이 결국은 해피엔딩이기 때문이다. 그는 살아남았고, 죽음의 그림자를 따돌리고 승리했다. 파트와와 함께 한 살만 루슈디의 11년을 한 줄로 정리하면 '이성으로는 비관해도 의지로는 낙관하라'가 그야말로 제격이다.

 

"밥 경위님, 이건 좀 과하지 않습니까? 차량 아홉 대에, 모터사이클에, 사이렌, 경광등, 게다가 경찰관도 너무 많고. 차라리 낡은 뷰익을 타고 조용히 뒷길로 지나가는 편이 더 안전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묻자 밥 경위는 대책 없는 바보나 미치광이를 보는 듯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선생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밥 경위님, 저 말고 또 어떤 사람들이 이렇게 거창한 대우를 받습니까?"

"아라파트 정도는 돼야겠죠."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과 동등한 예우라니 좀 놀라웠다.

"밥 경위님, 만약 제가 대통령이라면 지금보다 뭘 더 하는 겁니까?"

"선생님이 미국 대통령이라면 이 길 전체를 봉쇄하고 건물 지붕마다 저격수를 배치했겠죠. 오늘은 그렇게까지 소란을 피울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하여 조금도 소란스럽지 않은 이 행렬은 맨해튼을 향해 달려갔다. 남의 이목을 끌지 않으려고 차량 아홉 대가 한 줄로 늘어서고 모터사이클을 울려대고 경광등은 마구 번쩍거렸다.-p.407

 

행운이 한번 더 찾아왔다. 마침 인근에 밀턴 울라둘라 병원이라는 작은 의료 시설이 있어 구급차가 빨리 올 수 있었다.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달려오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멈춰 섰다. "실례지만, 혹시 살만 루슈디 씨 아니세요?" 그 순간만큼은 아니고 싶었다. 그냥 치료를 받고 있는 익명의 사람이고 싶었다. 하지만 그랬다. 그는 루슈디였다. "정말요? 지금 이런 부탁을 드리면 힘드시겠지만 사인 한 장만 해 주실 수 있을까요?" 그는 생각했다. 사인 한 장 해줘. 구급차와 함께 온 사람이야.

(…중략)

트럭 컨테이너에는 신선한 거름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는 다소 흥분해서 자파르와 엘리자베스에게 말했다. "그 말은 우리가 똥을 실은 트럭에 깔려 죽을 뻔했다는 거야? 산더미 같은 분뇨에 깔려 죽을 뻔한 거야?" 그랬다, 사실이었다. 7년 가까이 암살 전문가들을 잘도 피해 다녔건만, 그와 그의 사랑하는 가족은 거대한 똥사태에 파묻혀 종말을 고할 뻔했다. -pp.618-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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