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롤은 동성애자인가 <캐롤>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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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10725 bytes / 조회: 4,648 / ????.03.08 04:33
[영상] 캐롤은 동성애자인가 <캐롤>


CAROL 캐롤

감독: 토드 헤인즈 출연: 케이트 블란쳇(캐롤 에어드), 루니 마라(테레즈)

 

영화가 진행될수록 스토리가 영화적인 서술을 못 따라가는 느낌이 강하다.

한마디로 그림은 예쁜데 이야기는 부족한 로맨스 영화. 

장점은 영화 전반을 주무르는 주제가 일관되고 더 없이 선명하다는 거.

영화를 보면서 가장 감탄했던 건 연출.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흘러나오는 사운드트랙과 화면이 너무나 잘 어울려서 '오, 괜찮다' 가슴 두근거리면서 영화에 풍덩 빠질 만반의 준비를 갖췄는데 러닝타임이 줄어들수록 점점 당혹스럽다.

연기도 좋고, 연출도 좋고, 오랜만에 딱 맞는 옷을 갖춰입은 OST도 좋고. 그런데 뭐가 문제일까.

 

가장 큰 문제는 캐롤과 테레즈의 감정선을 쫓아가는 게 힘들다는 거. 사실 이것 빼고는 다 좋다.

영화가 불친절한 건 아닌데 오히려 무척 성실한데 그럼에도 징검다리를 뛰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데 꼭 특별한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개연성- 외모가 신화급이라던지(ex. 말레나), 성격이 매력적이라던지(ex. 미스터 다아시), 하다못해 장르 특유의 개연성 없는 개연성의 판타지라도 있어야 되는데 <캐롤>은 이런 설득력이 부족하다. 두 사람이 첫 눈에 보자마자 화학적인 반응을 느꼈고, 썸을 타고, 절정이 있고 결말이 있고... 무척 깔끔한 흐름이긴 한데 여기서 끝이다. 마치 단정한 미인(남)과 마주 앉아 내도록 차만 마시는 기분? 역시 소설을 읽어야 하나.

 

반면 연출은 무척 따뜻하고 섬세하다. 특히 감정의 무게추가 테레즈에게서 캐롤에게 넘어가는 과정이 마음에 든다. 특별한 계기나 과정이 없어도 보다 보면 아, 캐롤이 테레즈만큼 혹은 테레즈보다 더 좋아하는구나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지점이 있다. 보다 직접적으로 캐롤의 연애 감정이 드러나는 장면은 캐롤이 이혼 조정을 하러 가는 길에 택시 안에서 거리의 테레즈를 발견하는 장면. 딸과 관련된 일이 아니면 감정을 격렬하게 드러내는 일이 없는 캐롤이 테레즈를 보면서 감정을 터뜨리는데 여기서 캐롤이 딸이 아닌 테레즈를, 그러니까 가족이 아닌 연인을 선택하겠구나 짐작할 수 있다.

 

영화 <캐롤>은 유독 차창을 통해 상대를 보는 시선이 잦은데 특히 테레즈의 시선이 차창과 부딪치는 장면이 많다. 테레즈가 창안에 갇힌 것도 같고, 창이 테레즈로부터 세상을 유리시키는 것 같기도 한 이 장면들은 점심으로 뭘 먹을지조차 쉽게 결정하지 못하던 테레즈의 우유부단함 혹은 우울함 혹은 무기력함의 또다른 은유처럼 보이는데 상대적으로 캐롤과 있을 때는 차창 안이 따뜻하고 밝게 표현되어 테레즈의 감정을 엿보는 기분이 든다.

 

 

 

 

E.호퍼의 '나이트 혹스'를 패러디한 표지

 

 

 

소설을 번역한 역자 후기와 이동진의 영화평을 두고 워낙 소란스러워서 영화를 보기 전에, 책을 읽기도 전에 먼저 익숙해져버린 <캐롤>. 원래 원작이 있는 영화는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는 순서를 선호하지만 번역서와 원서를 두고 고민하다 영화부터 먼저 보게 됐다.

 

만약 원서를 읽을 생각이 생긴다면 <소금의 값 The price of salt>을 주문할 생각. 나는 원래 이런 문학적 수사에 약하다.

 

 

 

 

 

다음은 문제가 된 이동진의 영화평.

 

제가 느끼기엔, 테레즈한테는 동성애적인 사랑이 필요한 게 아니고 캐롤이 필요한 겁니다. 근데 하필이면 캐롤이 여자였을 뿐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어떤 동성애를 다루는 영화에서는 상대방이 여자라는 게 핵심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동성애적인 정체성에서 내가 여자를 사랑하는 사람이야라는 것이 그 사람을 말하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최근에 개봉을 앞두고 있는 대니쉬걸 같은 바로 그 영화가 그런 영화입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아닌 것 같아요.

 

특히 밑줄 부분.

이 부분이 왜 동성애를 부정하는 발언이라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관련 SNS를 읽으면서 과열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내용보다 '비평가'를 향한 날선 반응으로 느껴졌다면 경기도 오산인가.

 

 

 

딸의 X-mas 선물을 사려고 백화점에 온 캐롤과 테레즈가 처음 만나는 장면

 

첫 만남 때 지갑을 꺼내던 캐롤이 테레즈에게 딸의 사진을 보여주는데 이때 딸 사진과 결혼반지를 낀 캐롤의 손을 카메라가 두 번이나 노골적으로 클로즈업한다.

 

- 캐롤은 결혼 생활 10년 차로 이혼 소송 중이지만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는 남편과 어린 딸이 있다.

- 테레즈는 얼마전에 남자친구 리처드로부터 청혼을 받았고, 리처드의 친구 대니로부터 성적 유혹을 받지만 딱히 거부하거나 피하지 않는다.

 

질문.

캐롤과 테레즈의 성정체성은 동성애자인가, 아닌가.

 

- 애비는 캐롤의 소꿉친구이며, 5년 전에 일시적으로 성적인 의미였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시 절친한 친구다.

- 캐롤의 결혼이 파경에 이른 이유는 캐롤의 성정체성과 상관 없이 캐롤의 독립적인 자아가 결혼생활의 보수성을 견디지 못해서이다.

- 테레즈는 연말 모임에서 낯선 여자의 은근한 대시를 받지만 모른 척 한다. 테레즈가 성적 대상으로 인식하는 동성은 캐롤 뿐이다.

 

다시 질문.

캐롤과 테레즈는 동성애자인가?

 

동성애자가 아닌 두 사람의 사랑을 '동성애적 사랑'이 아니면 달리 뭐라고 부른단 말인가.

동성애자가 아닌 두 사람의 사랑을 '인간이 인간을 좋아하는 인류보편적 사랑'이라고 표현한 게 *동성애 불법을 주장하는 이들과 싸잡혀서 욕을 들어야 할 정도로 몰이해인가? 더군다나 이동진은 <대니쉬 걸>에 대해선 분명하게 동성애 영화라고 구분하고 있다.

장애우라고 부르는 배려가 오히려 폭력적으로 느껴진다던 어느 장애인의 말이 떠오른다.

동성애에 대한 몰이해는 정작 누가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볼 문제.

 

 

* 동성애 불법

지난주에 여야 대표급 인사들이 기독회관인지 기독연합인지 하여튼 그쪽 단체 대표를 만나서 '동성애는 불법이다'는 헛소리를 했던데, 이거 이해 못한 건 나뿐인가. 크게 양보해서 동성애차별법 찬성/반대는 이해한다만 동성애가 법에 어긋난다는 논리는 도대체 어느 나라 문법인지? 게다가 차별금지법을 금지하겠다는 건 도대체 무슨 논리인가? 차별을 금지하겠다는 건가, 차별을 차별하는 걸 금지하겠다는 건가?

요즘 어쩌다 보니 오스카 와일드에 이어 A.지드, E.M.포스터까지 연이어 동성애 파도를 넘고 있는데 여태껏 들은 것 중 최고의 코메디다. '동성애 불법'이라니, 어이구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소수자 인권의 앞날이 앞으로도 참 갈 길이 멀구나. 그렇게 미국 좋아하더니만 왜 이런 건 게걸음 흉내인지.

 

 

* 영화 이미지 출처 - 네이버영화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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