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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20233 bytes / 조회: 4,601 / ????.08.07 16:51
[도서] 오스카 와일드『심연으로부터』


 

 오스카 와일드가 출소 후 죽기 직전까지 묵었던 호텔 방.

오스카는 방 두 개를 사용했는데 하나는 침실로, 하나는 글쓰는 작업실로 썼다.

하지만 이 책상에서 그는 한 자도 못 썼다고 한다.

 

 

 

 

 

오스카 와일드가 성추문으로 재판 받을 당시의 호외.

당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 이미지 출처.『심연으로부터』(문학동네, 2015)

 

 

 

 

 

 오스카 와일드의 글을 접하는 독자는 대개 두 종류의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오스카와 사랑에 빠지던가, 오스카 그게 뭐- 하던가.

 

『심연으로부터』는 오스카가 동성 스캔들로 2년 실형을 받고 감옥에서 복역 중에 연인 더글러스에게 쓴 서간문이다. 이 서간문의 첫 페이지를 열 때 내게 오스카 와일드는 <행복한 왕자>를 쓴 동화작가였으나 책을 절반쯤 읽을 무렵 이런 첫인상은 완전히 전복된다. 

이토록 예민하고 감성충만하며 나르시시즘 덩어리인 작가를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다만 이 '좋아'는 단서가 붙는다. '좋아서 미치겠어'가 아니라 연민, 동정, 호감, 비호감을 동반한 '좋아'라는.

 

 

 

육체적 죽음이든 사회적 매장이든 작가의 생명이 끝나는 순간은 언제나 비극적이다. 그 순간이야말로 작가의 재능이 스러지는 현장이기 때문.

 


문학은 언제나 삶을 앞지르지. 삶을 모방하는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삶을 빚는 거야. - p.9
 

 

책을 읽다 보면 유미주의자이며 자타공인 나르시시스트였던 오스카 와일드가 현실의 삶과 문학 속 삶을 혼동한 게 아닐까 의심하게 되는 지점이 있다. 불행한 일이지만, 오스카의 혼동은 펜 끝에서 머물지 않고 종이 밖으로 뛰쳐나가 오스카의 삶을 파탄낸다. 한마디로 현실의 삶이 가상의 세계에 매몰된 것이다. 재능에 대한 대가랄까. 혹은 피그말리온의 비극은 예술가들의 숙명인가 싶기도 하고. 여하튼 그런 관점으로 보면 오스카의 생애 마지막 5년은 그 자체로 문학적이다. 사랑과 배신과 용서와 우정으로 점철된 이 시기는 참으로 드라마틱해서 그러한 불행조차도 오스카가 제 인생을 던져 스스로 조탁한 문학의 한 방식이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

 

 

어느 날, 와일드의 어머니의 친구였던 애나 드 브레몽 백작 부인이 그에게 왜 더이상 글을 쓰지 않는지 묻자(그녀는 전날 그를 모른체 했던 것을 미안해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난 이미 글로 쓸 수 있는 것을 다 썼습니다. 나는 삶이 무너지는 의미를 모를 때 글을 썼지요. 이젠 그 의미를 알기 때문에 더이상 쓸 게 없습니다. 삶은 글로 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저 살아내는 것입니다. 나는 삶을 살아냈습니다." -p.032
 

 

이 책에서 가장 슬픈 일화인데 오스카 스스로 작가로서 자신의 생명이 끝났음을 인정하는 현장이기 때문.

 

자신의 작가적 정체성에 스스로 사망 선고를 내린 오스카. 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예술가인 자신이 예술가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포함한 지상의 모든 것 위에 존재했던 예술이 지상으로 내려와 지상의 것들과 섞이는 것을 체험으로 목도한 오스카는 이제 단 한 줄도 못 쓴다.

 

예술은 대중의 관심과 애정을 자양분으로 삼는다. 애초에 사랑을 못 받았으면 모를까 성공의 정점에서 추문과 함께 끌어내려진 오스카는 아마 실형을 받고 레딩 감옥에 입소할 때까지도 자신에게 닥친 불행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니 기소 전과 선고 직후 각각 해외로 달아날 두 번의 기회를 마다할 수 있었던 것이고.

 

아주 어려서부터 작가적인 시각으로, 문학적 틀 안에서, 문학적인 삶을 지향했던 오스카는 감옥에서 그 어떤 것보다 냉엄하고 엄혹한 현실과 직면했을 것이다. 그 경험은 오스카를 비로소 가상세계에서 현실세계에 발 딛게 했을 것이고. 그리고 현실이라는 지상에 발을 딛은 그는 더 이상 예술의 허구를 끌어안지 못하게 됐을 것이다. 원래 가짜가 진짜의 흉내를 더 잘 내는 법이다.

 

그리하여 2년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오스카는 작가 오스카가 아닌 인간 오스카가 되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오스카는 자신이 다시 작가로서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것 같다. 결국 레딩 교도소장의 예언보다 조금 더 살긴 했지만 오스카는 출소 후 불과 3년을 못 넘기고 사망한다. 그의 육체적 사망을 연장했던 것도, 앞당겼던 것도 아마 소설에 대한 열망이었을 것이다.

 

 

사실 우리 삶에서 사소한 일이나 큰일 같은 건 없어. 모든 게 다 똑같은 가치와 똑같은 크기로 이루어졌지. 모든 것에서 당신에게 굴복하는 내 습관ㅡ 처음에는 대부분 무관심에서 비롯된ㅡ은 서서히 진정한 내 본성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만 거야. 내가 그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러한 습관은 나의 기질을 영구적이고 치명적인 한 가지 성격으로 고착시키고 만 거라고. -p.56
 

 

'Dear Bosie'로 시작하는 옥중 서간『심연으로부터』가 더글러스에게 보내는 장렬한 구애이며, 로비(로버트 로스)를 통해 전달한 건 옛 연인의 질투심을 유발하기 위함이라는 장정일의 해석에 동의하기 힘든 것은, 오스카가 더글러스를 바라보는 시선의 위치 때문이다. 오스카는 언제나 더글러스를 내려다 봤다.

 

연민은, 츠바이크에 의하면 양날의 검이다. 오스카는 악덕, 위악, 경박, 천박, 즉물성으로 다져진 더글러스의 단점을 제법 객관적으로 파악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연민하고 때로 동정하며 한 가련한 인생을 자신이 구원할 수 있으리라 자신한다.

감히 자신이 한 인간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고 神의 흉내를 냈던 오스카 와일드는, 그가 거듭 말하는 것처럼 실제로 더글러스에 대해 더글러스 본인보다 더 잘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나, 자신이 신이 아니라는 사실은 몰랐던 것이 불운이었다. 이런 일련의 배경으로, 유미주의자였으나 무신론자였으나 레딩 시절 이후 신 앞에 초라해진 오스카의 통렬한 자기순애보적 고백 혹은 자기참회는 동성 스캔들로 인해 야기된 현실적인 좌절보다는 왜 삶은 문학을 모방할 수 없는가를 향한 통한과 비탄으로 읽힌다.

 

오스카는 무신론자였으나 형기를 마치고 나왔을 때 가톨릭 영세를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가톨릭은 그의 회심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안타깝게도 오스카의 바람이 이루어진 건 사후였다. 인생의 아이러니랄지 비극이랄지, 오스카의 육성을 통해 레딩 전후 그의 종교적인 태도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신들은 참 이상해. 우리를 벌줄 때 우리의 악덕을 그 도구로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우리 안의 선하고 다정하고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이용해 우리를 파멸로 이끄니 말이야. - p.80

 

난 이제 우리는 자신이 저지른 악행뿐 아니라 자신의 선행 때문에도 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해. 나는 그러는 것이 정당하다고 굳게 믿고 있어. -p145-146

 

 


 

이하, 본서 수록 앙드레 지드의「오스카 와일드를 기리며」에서 발췌.

  

 

"당신은 이야기를 눈으로 듣는군요. 그래서 당신한테 이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나르키소스가 죽자, 들판의 꽃들은 몹시 슬퍼하면서 강물에게 그를 애도하기 위한 물방울을 달라고 요구했어요. 그러자 강물은 이렇게 대답했죠. '그럴 수 없어요. 내 물방울들이 모두 눈물이 된다면 내가 나르키소스를 애도하는 데 필요한 물이 부족해질 거예요. 난 그를 사랑했어요.' 그러자 들판의 꽃들이 말했어요. '오! 어떻게 나르키소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렇게 아름다운 청년을 말이에요.' '그가 아름다웠나요?' 강물이 물었어요. '누가 그걸 당신보다 더 잘 알 수 있겠을까요? 그는 매일 당신의 기슭에서 몸을 숙여 당신 물속에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비춰보았는걸요…….'"

와일드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어 말했다.

"그러자 강물이 대답했어요. '내가 그를 사랑했던 것은, 그가 내 위로 몸을 숙일 때마다 그의 눈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와일드는 야릇한 웃음을 떠뜨리고는 거드름을 피우면서 덧붙였다.

"이 이야기의 제목은「제자」입니다."

 

-pp.251-252 

 

 

 

 

그의 더없이 기발한 우화들과 위협적인 풍자들은 두 종류의 도덕, 즉 세속적 자연주의와 기독교적 이상주의를 대결시켜, 모든 의미에서기독교적 이상주의를 뒤엎고자 했다. 그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시 나사렛으로 향한 예수는 너무도 변해버린 도시의 예전 모습을 알아볼 수 없었어요. 그가 예전에 살았던 나사렛은 한탄과 눈물로 가득한 곳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웃음소리와 노랫소리가 넘쳐났어요. 도시로 들어간 예수는 꽃을 잔뜩 든 노예들이 새하얀 대리석으로 된 저택의 대리석 계단을 향해 바삐 가는 것을 목격했어요. 집 안으로 들어간 예수는 벽옥으로 장식된 방 안쪽의 자줏빛 침상 위에 한 남자가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죠. 헝클어진 머리에는 붉은 장미화관을 쓰고, 입술은 포도주로 붉게 물든 채로. 예수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면서 물었어요. '넌 어찌하여 이렇게 사는 것이냐?' 뒤를 돌아본 남자가 예수를 알아보고는 대답했죠. '나는 나환자였는데 당신이 나를 치유해주었지요. 그런데 왜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 거죠?'

예수는 그 집을 나왔어요. 그리고 길에서 얼굴에 화장을 짙게 하고 요란한 옷차림에 진주로 만든 신발을 신은 한 여인과 마주쳤어요. 그녀의 뒤에는 한 남자가 따라가고 있었는데, 소박한 옷차림의 그는 두 눈이 욕정으로 이글거리고 있었죠. 예수는 그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어요. '넌 어째서 이 여인을 쫓아가며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느냐?' 뒤를 돌아본 남자가 그를 알아보고는 대답했죠. '나는 한때 눈이 멀었었는데 당신이 내 눈을 뜨게 해주었잖소. 그런데 이 눈으로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소?'

그러자 예수는 여인에게 다가가 물었어요. '네가 가고 있는 이 길은 죄악의 길이다. 그런데 왜 이 길을 가는 것이냐?' 그를 알아본 여인은 웃으며 대답했어요. '내가 가고있는 이 길은 쾌락의 길인걸요. 당신이 내 모든 죄를 사해주셨잖아요.'

그러자 예수는 한없는 슬픔을 느끼고는 마을을 떠나고자 했어요. 그런데 마을을 떠나려고할 때 마을의 도랑가에서 울고 있는 한 젊은 남자를 발견했어요. 예수는 그에게 다가가 그의 곱슬머리를 어루만지며 물었죠. '내 친구여, 왜 그렇게 슬피 울고 있느냐?' 그러자 청년이 고개를 들어 그를 알아보고는 대답했어요. '나는 이미 죽었었는데 당신이 나를 되살려놓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내가 달리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pp.25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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