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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14605 bytes / 조회: 5,476 / ????.12.18 10:26
[영상] 제이슨 본 / 트레이닝 데이


 

 

 

제이슨 본(JASON BOURNE, 2016)

감독: 폴 그린그래스| 출연: 맷 데이먼, 알리시아 비칸데르, 뱅상 카셀

 

아마 본이 머리에 꽃을 꽂고 분홍원피스를 입고 스트립쇼를 한대도 나는 재미있다고 박수를 쳤을 것이다. 나는 제이슨 본 '빠'이므로. 하지만 빠심을 제외하더라도 9년 만에('본 레거시' 제외) 돌아온 본의 정체성 찾기는 여전히 긴장감 쩔고, 제이슨 본이라는 캐릭터 고유의 매력도 여전하고. 여전했다. 이 시리즈가 네버엔딩이면 좋겠음요.

 

시리즈를 시작하는 첫 편의 제목 '아이덴티티'는 이제 시리즈 전체를 끌고가는 주제가 되었다. 본은 끊임없이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헤맨다. 그리고 본이 매번 마주 서는 장벽은 '정부 기관' 나아가 '국가'다.

 

<제이슨 본>에서 눈길을 끌었던 이야기는 정부기관이 시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과정에서 '무단 수집한 개인정보를 사유화'하려는 음모다. 제작진은 국가와 체제를 수호한다는 명목으로 정부기관이 개인정보를 독점하고 그 위에 쌓아올린 감시와 통제 시스템을 자유민주주의 시민이 어디까지 긍정할 수 있는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정부기관의 시스템이 투명하게 오픈되고, 언제든 공론화 가능하며, 시민이 독립적으로 감시할 수 있다면야 문제가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역사를 통해 증명된 권력의 속성에 의하면 국가와 시민 간 상호 감시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어느 기관(혹은 개인)이든 제왕적인 권력의 맛을 보게 되면 필연적으로 시스템의 사유 - 독점 - 독재 수순을 밟기 때문. 

 

헤더 리(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얼굴마담인가 싶었던 처음 예상과 다르게 본 못지 않은 존재감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분량을 떠나 헤더의 역할이 흥미롭다.

영화 중반까지 기관에 속했지만 기관의 속성에 불응하는 인물인 듯 보였으나 막상 기회가 왔을 때 헤더는 기관 순응자로 자신의 역할과 위치를 옮기는 데 놀라울 정도로 능동적이고 적극적이다. 얼핏 그런 태도 변화가 반전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녀의 동선을 눈여겨 보았다면 헤더 역시 권력의 변두리에서 기회를 노리는 대다수 중 한 명일 뿐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이를테면 자신의 직급 상사인 국장을, 국장의 직급 상사인 장관 바로 앞에서 엿먹이는 장면이 그러하다. 자신의 존재와 유능함을 상급자에게 어필하는 이런 식의 노골적이고 저급한 방식은 '쿨하게 인텔리전트'한 헤더의 관료적인 태도가 순전히 자기애적인 것임을 고자질한다. 

 

헤더가 특히 돋보이는 이유는 그녀의 영리함(=smart)에 있다. 똑똑한데다 예쁘기까지 한 헤더 리의 영리함이 빛나는 지점은 정치적인 것에 있지 않고 순수하게 기능적인 것에 있는데, 헤더는 주커버그+구글창업자를 떠올리게 하는 *Deep Dream의 창업자와 동창으로 학생 때 라이벌이었을 정도로 IT를 다루는 데 뛰어난 인물이다. 이렇듯 본을 상대로 피지컬이 아닌 머리로 위협적인 능력을 보여준 헤더였던 탓에 그녀가 전형적인 관료의 속성을 드러냈을 때 따라오는 배신감은 덤이다. 관객 입장에서야 이러한 전개 덕에 마지막 만남에서 "너는 애국자"라고 위로하며 회유하는 헤더에게 본이 날리는 일격이 더욱 통쾌하게 느껴졌지만.

결론은, 본은 또다시 부모 없는 고아처럼 떠돌겠구나...

 

*Deep Dream 

알파고 대전으로 국내에 유명해진 딥마인드와 페이스북의 짬뽕으로 보이는 이 IT업체는 그들의 SNS를 통해 수집한 개인정보를 정부기관에 제공하고 그 대가로 정부지원을 받아 업계의 총아가 된다. <제이슨 본>은 이 부분을 본격적으로 다루진 않았지만 애플이 美법원의 잠금장치 해제 요구를 거부한 것이나 러시안 프로그래머가 독일에 터를 잡고 운용하는 메신저 텔레그램의 부상 등 일례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듯 지금은 IT 망을 이용해 무차별적으로 수집되고 공유되는 개인정보가 개인을 위협하는 시대다. 나아가 딥마인드의 활약으로 A.I. 시대가 바로 목전에 도래했음을 광고하지만 국가, 업계 누구도 개인정보(Privacy) 보호와 보안에 대한 신뢰할만한 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매번 신기에 가까운 뛰어난 요원 능력을 뽐내는 제이슨 본. 그러나 그는 여전히 불안정하다. 아마 자신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단단한 토양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계속 그럴 것이다. 한편 이런 제이슨 본의 모습은 냉전을 거치면서 세계지도를 내려다보는 거대한 공룡으로 부상했으나 새로운 세기에 접어들면서 자기 덩치를 이기지 못해 한쪽 발을 절름거리는 우상의 속살을 드러내는 오늘날 미국의 은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 슈프리머시에서 마리가 그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리지 않았더라면 본은 비록 악몽에 시달릴지언정 과거와 단절하고 마리랑 그런대로 잘 살지 않았을까.

- 트레드스톤에 본을 대적할 혹은 능가할 숨은 능력자는 정녕 없단 말인가. 

- 다음 편도 나오겠지? 만약 나온다면 헤더와의 2차전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트레이닝 데이(Training DAy, 2001)

감독: 안톤 후쿠아|덴젤 워싱텅, 에단 호크

 

영화를 보는 내내 신경쇠약에 걸린 중년에게 시달리는 기분이었는데 내용이 진행되면서 그 기분의 내막을 이해했다. 실상 알론조는 러시안 거물을 잘못 건드린 대가로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인물이다. 

이야기의 큰 얼개는 한국영화 <투캅스>와 유사하다. 닳고 닳은 베테랑 속물 형사와 보이스카웃 신참 형사가 하루를 같이 보내는 내용인데, <투캅스>가 코믹이 아닌 느와르로 갔으면 이랬을까 싶다.

 

교통단속반에 있던 제이크는 마약단속반 팀장 알론조와 면접을 보기 위해 식당으로 간다. 아마 알론조는 제이크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와 자신의 맞은 편에 앉을 때부터 제이크를 관찰했을 것이다. 그날 하루 자신의 계획을 완벽하게 완성하는데 그가 적합한지를. 그렇다. 제이크는 단순히 본격적인 팀 합류에 앞선 '견습'정도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주 '고단한 하루'가 그를 기다리고 있다.

 

살짝 버디 무비 느낌이 드는 알론조와 제이크 투 샷이 러닝타임의 대부분을 채우는데 그 공간은 주로 좁은 차 안이다.

처음 식당에서 만난 순간부터 알론조가 제이크에게 하는 얘기는 대부분 거짓말이지만 '너는 옛날의 나와 닮았다(=나도 너 같던 시절이 있었다)'는 말은 아마 진실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알론조의 친구가 말하듯 알론조에게도 '더러운 세상을 구하는' 신념이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알론조는 "양을 잡으려면 늑대가 되어야 한다"고 제이크를 설득하는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속물이 되었다. 알론조에 의하면 목적을 위한 수단은 그것이 불의일지라도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런 알론조에게 제이크는 목적도 수단도 모두 정당해야 된다고 (팀에 합류해야 되므로 소심하게)반박한다. 제이크는 악을 악으로 응징하는 것이 선이라고 주장하는 알론조에게 동조할 수 없다. 제이크는 선의의 가치를 믿는 유형의 인간이었던 것이다. 아마, 알론조가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계획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이 지점이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알론조는 제이크를 잘못 본 것이다. 아니면 제이크가 믿는 '선의의 가치'를 지나치게 가볍게 여겼던가.

 

다시 '너는 옛날의 나를 닮았다'는 알론조의 말에서 추론하자면, 신참일 때 알론조 역시 경찰이라는 공권력의 선의를 자랑스럽게 여겼을 것이다. 그러다 범죄와 공권력의 어두운 이면(내부 비리)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악의와 타협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스스로가 악의 또다른 축이 되었을 것이고 그리하여 괴물의 심연을 너무 오래 들여다보다 스스로 괴물을 닮아버린 또 한 명의 니체의 양자가 탄생한 것이다.

 

조직은 명령을 하는 자와 명령을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 알론조에게 동조하지 않지만 상관인 알론조에게 종일 시달리는 제이크. 그리하여 제이크가 알론조가 주장하는 '악의 정당성'에 언제쯤 설득될 것인가 지켜보던 어느 순간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종일 알론조에게 기가 눌렸던 제이크가 딱 한번 자신의 순전한 의지로 경찰이 할 도리, '범죄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마땅하고 당연한 선의를 베풀었는데 그 잠깐의 선의가 선의로 되돌아와 결국 제이크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다. 

 

악(惡)은 악(惡)으로, 선(善)은 선(善)으로 돌아온다. 그 어떤 경우에도 악(惡)은 선(善)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알론조의 악은 틀렸고, 제이크의 선은 옳은가? 대답은 쉽지 않다. 과거 어느 한때는 정의로웠을 알론조의 악은 처음부터 악이 아니었으며 선에서 악으로 이행하는 과도기를 거쳤을 것이기 때문. 반면 제이크는 이 과정이 없다. 제이크의 선은 아직 순수하다. 선은 악으로 단번에 이동하지는 않는다. 상상하는 것보다 선(善)은 질기고 강하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선(善)은 악(惡)으로 단번에 이동하지 않는다는 진실이 오히려 공포스럽다. 이는 곧 선악이 공존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선악이 공존하는 시대를 사는 인간은 선(善)한 얼굴로 웃으며 손을 내미는 악(惡)을 언제나 늘 경계해야 한다.

 

지난밤 <그것이 알고 싶다>는 'vip5촌 살인사건'을 탐사 보도했다. 이 사건을 초기부터 취재했던 주진우 기자가 해당 프로 방영을 앞두고 본인 sns에 남긴 말이 의미심장하다. 옮기면 이러하다.

 

참 슬퍼요. 무죄인 사건을 무죄받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

우리 세금으로 월급 받는 검사들이 악의 편에 서서 저를 잡으려 한다는 사실이....

외국 언론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언론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덧_.

1. 낯이 익는데, 익는데 했더니 스눕 독이 카메오 출연했다. 그것도 카메오치곤 분량과 상관없이 제법 비중있는 역할로 나온다. 알론조의 농담 중에도 '스눕 독'이 잠깐 나왔던 것 같은데 덴젤 워싱턴이 아주 걸걸한 탁성으로 대사를 해서 확실하진 않다. 참고로 나는 헤드폰 브랜드로 최초 인지한 닥터 드레도 카메로 출연했다.

2. 믿고 보는 배우 덴젤 워싱턴. 이 배우의 연기는 늘 감탄하는데 송강호 같달까, 메소드 연기가 아닌 자기 연기를 하는 배우.

3. '2'에 덧붙여. 그럼에도 가끔 개봉작을 놓칠 때가 있다. but. 최근엔 영화를 거의 안 보니 의미없는 얘기.

4. 뒤늦게 검색하다 안 사실. 덴젤 워싱턴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상을 수상했다. 어쩐지 잘 하는 연기를 더 잘 한다 싶더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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