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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7300 bytes / 조회: 4,294 / ????.05.27 00:15
[도서] 가오싱젠『버스 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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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오싱젠│ 오수경 (옮김) (민음사 2002.12.)

 

 『버스 정류장』은 세 개의 희곡과 국내 번역에 부쳐 작가의 요청으로 연극 평론 한 편, 작품 공연을 위한 제안 두 편이 부록으로 실려있다.

가오싱젠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건 알고 있었지만 중국인 최초인 건 몰랐는데 검색품을 팔아보니 가오싱젠은 프랑스로 망명후 프랑스국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공식적으로는 2012년 수상자 모옌이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라고. 노벨상, 첫번째 수상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중국이 겨우 두 번의 수상자를 배출했다는 부분이 개인적으로 놀라웠다는 얘기. 나는 중국문학에 약간의 환상을 갖고 있다. 정확하게는 세계문명 발상지 중 한 곳을 보유한 중국의 종이와 상형문자(한자)의 긴 역사에 환상이 있다.

 

 

 


 

 

간단 감상

- 형식은 굉장히 '모던'하지만 내용은 문화혁명 전후 중국이 배경이라 굉장히 '올드'하다. 

- 위(↑)와 같은 이유로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 독자에겐 감정이입이나 몰입이 여러모로 불친절한 작품.

- 무대를 위한 전형적인 희곡. 3차원인 무대 - 공간을 상상하며 감상해야 하는 작품.

 

『버스 정류장』을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먼저 다성부(多聲部) 극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다성부'란 '한 작품 내에 여러 주제가 함께 전개되는 작품이라는 의미'(p.105, 같은 책 역주)라고 하는데, 고맙게도 부록 <「버스 정류장」공연에 대한 몇 가지 제안>에서 보다 구체적인 설명이 있다.

 

이것은 다성부(多聲部)를 활용한 연극 실험이다. 수시로 두세 개의 성부가, 많게는 일곱 개의 성부가 동시에 이야기한다. 때로는 대화도 다성부로 진행된다. 여기서는 글로 표현되는 지면인 관계로 기본 형식이 제한되어 교향악 악보와 같은 표기 방식을 쓸 수가 없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다소 불편을 주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 연극은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므로, 이러한 불편이 도리어 연극의 표현 수단을 더 풍부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p.216)

 

가오싱젠의 장담과 달리 산문 서사에 익숙한 독자에겐 유감스럽게도 다성부 극 형식이 '다소 불편'이 아니라 '쫌 많이 불편'한 게 문제라면 문제랄까.

희곡은 무대 공연을 목적으로 하므로 희곡을 가장 제대로 잘 즐기려면 공연을 보는 게 맞다. 하지만 동시에 엄연히 문학 장르이므로 대사와 지문 형식의 희곡을 텍스트로도 즐길 수 있어야 하는데 가오싱젠의 희곡은 텍스트 독자에겐 야박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피안』도 살짝 씨름하는 기분을 느끼며 읽었는데 '다성부 극' 형식을 활용한『버스 정류장』(외 두 편)에 비하면 '피안'은 꽃길이었구나 싶다. 적게는 둘, 많게는 7,8명이 동시에 대사를 하는데 이런 형식이 낯선 나같은 독자는 이 대사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도통 감이 안 선다. 인물 A가 1,3,5,7,9 하는 중간 중간 인물 B가 2,4,6,8 하는 식이라 순서대로 읽으려니 대사가 이어지지 않고 인물로 끊어 읽으려니 한 페이지 안에서 시선이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몇 번이고 반복해야 하니 독서가 피로해진다.

  

「버스 정류장」 

표제작 '버스 정류장'은 정류장이라는 공간과 정류장의 목적인 '버스를 타는 것'에 결국 실패하는 사람들을 다루는데 '탈 수 없는 버스'는 '오지 않는 고도'(베케트『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상시킨다. 두 작품이 유사하다는 게 아니라 서사를 진행하는 형식이 두 작품을 연관시킨다는 거다. 별개로 광의의 관점에서 '낯설게 하기'를 적용한다면 가오싱젠과 베케트가 같은 실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혹은 베케트의 실험이 가오싱젠으로 이어지고 있던가.

 

「독백」

늙은 배우가 혼자 독백으로 무대를 끌고가는 형식이 이근삼의 '어느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를 떠올리게 한다.

늙은 배우의 대사 중 '네가 자신의 연기력을 믿는다는 건 곧 관객의 상상력을 믿는다는 거야(p.94)'는, 작가의 희곡을 공연이 아닌 텍스트로 소화하려면 독자의 상상력이 작동하는 수밖에 없다- 고 응용해볼 수 있겠다. 물론 이것도 어디까지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독자의 기꺼운 의지가 선행되어야 가능한 얘기. 그런 점에서 가오싱젠의 희곡은 독자의 선행의지를 미리부터 꺾는 아이러니.

'독백'은 늙은 배우의 1인극인데 노끈과 벽돌로 관객과 배우의 공간을 끊임없이 나누었다 허물었다 하는 과정에 배우와 자연인 사이를 오가는 독백으로 채워져있다. 배우가 관객에게 이건 '연극이라구!' 거듭 환기시킨다는 점에선 한트케의 '관객모독'이 살짝 겹친다.

 

「야인」

수록작 중 그나마 서사가 편하게 읽히는 작품. 물론 그와중에도 어김없이 다성부가 등장해 독서가 곤혹스러운 건 매한가지. 국가가 중앙에서 국민 전체를 관리하는 시스템에선 교육은 필연적으로 교조주의를 지향하게 된다. 근대 이후의 중국문학에서 공통적으로 읽히는 부분이 바로 '교조주의'인데 이런 방향성이 낡고 촌스럽다는 생각이 드는 건 역시 체제의 차이 때문이려니 한다. 문화사 측면에서 중국문학에 대한 내 신뢰가 꽤 깊은 편인데 중국문학이 어찌하여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두 명 밖에 배출하지 못했는지 알 것도 같고. 노파심에, 노벨문학상의 권위에 대한 찬양/신봉이 아니라 중국문학이 국경, 인종, 이념을 초월해 범지구촌의 보편적인공감대를 얻으려면 지향 및 지양해야 할 방향성을 가늠할 것도 같다는 의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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