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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15212 bytes / 조회: 4,467 / ????.06.04 23:11
[영상] 퍼스널 쇼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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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친절한 영화인데 그 불친절이 불쾌하지 않다. 감독이 내 할 일 다했으니 다음은 네 차례다- 하고 관객에게 턴을 넘긴다고나 할까. 아마 대부분의 관객은 "그 턴 기꺼이 받지." 할 것 같다. 취향인 사람에겐 굉장히 반가운 영화, 취향이 아닌 사람에겐 시원찮은 뒷맛을 남기는 영화일 수도 있겠다. 나는 전자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더 보고 싶고, 더 알고 싶고, 더 생각하고 싶은…. 그리하여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에 대해 막 떠들고 싶어진다. 한마디로 인풋과 아웃풋 모두 충족시켜주는 매력적인 영화다.

 

모린(크리스틴 스튜어트)은 영매이며 퍼스널 쇼퍼. 영매는 개인적 정체성이며, 퍼스널 쇼퍼는 사회적 정체성으로 모린의 이 두 정체성이 교차하듯 얼개를 이루며 플롯을 전개한다.

 

역시 영매였던 쌍둥이 오빠 루이스가 석 달 전 심장발작으로 사망 후 모린은 생전에 했던 약속 - 먼저 죽는 사람이 살아있는 사람에게 보내기로 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하여 루이스가 살던 집을 중년부부에게 매각하기로 하면서 집에 루이스의 영혼이 있는지 확인하는 장면에서부터 영화는 출발한다.

 

영매일 때도, 퍼스널 쇼퍼일 때도 일관되게 모린을 지배하는 정서는 외로움이다. 그래서 모린은 영화 내내 불안하고 우울하고 삐걱거린다. 개인적 정체성이 사회적 정체성을 좀 더 압도한다고 할까. 유명 셀러브리티의 퍼스널 쇼퍼로 세계적인 브랜드 부티크를 들락날락하며 명품을 만지지만 모린은 빛나지도 즐거워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다 모린의 사회적 정체성이 개인적 정체성을 압도하기 시작하는데 바로 'unknown'으로부터 문자메시지가 수신되면서부터다. 처음엔 경계하지만 문자 수신이 쌓이면서 여자인지 남자인지, 하물며 사람인지 영혼이지도 알 수 없는 상대에게 자신의 금기와 욕망을 털어놓기 시작하는 모린은 unknown이 부추기자 충동적으로 고용인 키라의 욕망을 욕망하는 자신의 금기를 넘어선다.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철학자 자크 라캉의 언어인데, 실상 타자의 욕망은 타자의 것이므로 내 것이 될 수 없고 따라서 그것을 취한들 인위적이고 거짓인 가짜 욕망이다. 라캉의 '타자의 욕망'에 대입하면, 결국 셀러브리티 키라의 욕망을 욕망하는 모린의 금기는 애초에 거짓 → 가짜 → 허상을 향한 것이며 키라의 죽음과 함께 허상도 박살난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모린은 키라의 욕망을 욕망했을까. 스스로 그것이 금기라고 하면서도 말이다.

다음은 unknown과 나누는 메시지.

 

unknown : Do you want to be someone else?

Maureen : Yes

unknown : Who?

Maureen : I don't know

 

Maureen : Yesterday I tried on the shoes of the woman I work for

unknown : Why are you telling me?

Maureen : Because she wouldn't let me try them on

unknown : So the answer is what's forbidden 

Maureen : no desire if it's not forbidden

 

그러니까 키라가 싫어하기 때문에 키라의 옷을 입는 행위는 금기이고, 그것이 금기이기 때문에 욕망한다는 것인데, 주동적 역할을 키라에게 미룸으로써 스스로 반동적 역할을 자처하는 모린의 수동적인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 모린의 이런 수동적인 태도는 영화 전반에 나타난다. 죽은 쌍둥이 오빠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으며, 고가의 제품을 고르지만 타인의 취향을 배달하는 것일 뿐이며, unknown과의 메시지도 저쪽에서 발신을 해야 이쪽에서 수신과 발신을 하는 식이다. 그런데 이런 수동적인 태도가 키라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반전된다. 경찰서에서 목격자 조사 이후 unknown의 메시지를 다루는 태도에서 처음으로 주동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물론 모린을 연기한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연기도 뛰어나지만 <퍼스널 쇼퍼>의 가장 탁월한 정점은 연출이다. '어디서 무슨 상을 탔다'에 그닥 의미를 두지 않지만 올리비에 아시아스는 2016년 칸에서 <퍼스널 쇼퍼>로 감독상을 수상했고 영화를 본 소감은 받아야 할 사람이 받았다는 것.

 

연출의 가장 특징적인 점은 굉장히 섬세하다는 거다. 장면 장면이 매우 촘촘하게 직조되어 시선을 낭비하는 장면이 없다. 화면 안에 들어오는 모든 디테일이 의미를 갖고 배치되었는데 철저하게 의도되고 계산된 짜임새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디테일이 가장 눈부셨던 장면은 영화 종반부 호텔 씬. 카메라가 인물만 쫓아갈 뿐인데도 웬만한 스릴러 못지 않게 긴장감이 흐르고 그에 몰입하다 보면 시각과 청각이 절로 열리면서 적정 장소, 적정 시점에 감독이 의도한 메시지를 관객이 직접 눈과 귀로 확인하는 순간이 온다. 그러므로 영화에서 한 장면을 꼽으라면 나는 종반 호텔 씬을 꼽겠다. 사족을 붙이자면 일상에 아주 조금 낯선 것을 끼워넣는 것만으로도 스릴러를 유발할 수 있는 건 순전히 감독의 역량이다.

 

특기할 점은 이 호텔 장면을 기점으로 이전에는 관객이 모린을 통해서만 심령을 인지할 수 있었다면 이후는 모린 없이 심령을 확인하게 된다는 거다. 호텔을 나서는 잉가 뒤로 사람이 없음에도 호텔 입구 자동문이 한번 더 열리고 닫히는 장면에서 관객은 유령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며, 루이스의 연인이었던 라라의 새 연인 어윈과 정원에서 얘기를 나눈 직후 모린의 뒤로 나타나는 루이스의 영혼은 모린은 모르고 관객만 인지할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러니까 이전까지는 모린의 심리를 통해서만 등장하는 유령이 모린의 불안이 만들어낸 망상일 가능성을 내포했지만, 모린 없이 혹은 모린 모르게 관객의 눈에만 보이는 유령은 존재의 객관성을 확보함으로써 관객은 영화 속 심령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고 나아가 이제 모린이 그녀가 기다리던 유령과 드디어 대면하겠구나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은 영화와 관객의 거리를 깬다는 이유로 영화에서 금기시 한다는, 배우가 스크린 정면을 바라보는 연출 탓에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게도 하는데 사실 이 마지막 장면은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우선 떠오르는 건, 이제껏 루이스의 동생, 키라의 퍼스널 쇼퍼, unknown의 문자 수신 대상으로 기능했던 모린이 마침내 타인이 아닌 자신의 욕망에 눈을 떴다는 것인가 정도인데 감독의 의도가 뭐든 모린의 존재론적 정체성에 변화가 온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불편하지만 불쾌하지는 않다고 서두에 쓴 이유는, 감독이 열린 해석의 문을 열어놓았지만 딱히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엔딩에 다른 해석을 추가해보자면,

영화 엔딩 남자친구 개리를 만나러 간 오만에서 심령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처음 루이스냐고 물었을 때 심령이 응(쿵!) 했음에도 대화가 진행될수록 불안해진 모린은 다시 루이스냐고 묻는다. 대답 안 하는 심령. 그리고 모린이 나야?(just me?) 묻자 응(쿵!) 한다.

여기에서 유추할 수 있는 가정은, 모린이 호텔에서 사망했다는 결말이다.

 

사실 영화 종반부 호텔 장면은 보면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두 곳 있는데 모린이 살아있다고 전제한다면 잉가를 쫓아 호텔 밖으로 나온 두 유령은(호텔 로비 자동문이 두 번 열린다) 루이스와 키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키라는 잉가에게 살해당한 직후부터 잉가를 따라다녔을 것이라고 쉽게 수긍이 가지만 루이스는 애매하다. 루이스는 왜 호텔에 있지? 굉장히 뜬금 없다. 루이스는 모린을 따라온 것일 수도 있겠다.

 

다음. 잉가가 호텔룸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까지 폰 키패드를 두드리는 소리가 계속 나는데 알다시피 잉가와 메시지를 나눈 건 모린이다. 감독이 매 장면 디테일을 굉장히 신경쓴 걸로 보아 이 장면에 키패드 소리를 이토록 선명하게 넣은 건 분명 이유가 있을 거다. 이를테면 호텔 복도에서 잉가를 쫓아가는 건 직전에 사망한 모린이라던지.

 

사실 모린이 사망했다고 가정하면 고개를 갸웃했던 의문들이 모두 해소된다. 이를 테면 이런 거다. 모린이 호텔룸에서 키라의 물건을 꺼내다 문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거기서 장면이 암전되는데 생략된 장면은 아마도 룸에 들어온 잉가에게 모린이 살해당하는 현장일 것이다. 그러므로 암전 직후 호텔 복도를 지나 호텔을 나가는 유령은 모린이며,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잉가가 호텔룸에서 나올 때 복도를 울리던 폰 키패드 소음은 심령이 된 모린이 보내는 신호라고 추측할 수 있다. 잉가를 뒤를 쫓는 두 유령은 역시나 루이스와 키라일 거고.

 

모린의 사망을 전제하면 적어도 호텔 장면에서 몇 가지 의아했던 부분은 해소된다. 그럼에도 모린의 생존 가능성을 열어둔 건 키라 사건 이후 모린의 일상이 이어지는 장면 때문이다. 물론 이또한 샤말란의 <식스 센스>식으로 말하면 죽은 사람은 자기가 죽은 줄 모르는 설정 허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면 모린은 역시 사망한 것일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기타_

1. 감독은 관객의 다양한 해석을 원한다고 했지만, 키라의 살인범은 논란의 여지 없이 'ㅇㄱ'입니다.

2. 고가의 옷과 구두, 액세서리가 모린 본인이 아닌 키라의 욕망이라고 보는 이유는 영화 전반에 걸쳐 모린의 물욕이 드러난 장면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 이런 이유로 그것이 고용주 키라의 것이므로 그것들을 욕망한 것이고 금기인 것이지 물질 자체가 모린에게 욕망의 대상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3. 영화에서 페이드 아웃하는 장면이 몇 군데 있는데 어떤 의미인지 평범한 관객의 머리로는 모르겠다.

4. 키라의 살해 현장에서 누구 혹은 무엇이 뭔가를 하는 장면을 보고 모린이 달아나는데 이 장면은 영화 초반 루이스의 집에서 유령과 맞닥뜨린 직후 달아다는 장면과 겹친다. 내가 모르겠는 건 그것이 무엇인가 or 누구인가 하는 거다. 혹자는 잉가라고도 하는데 연출의 괴기스러움 때문인지 나는 그게 꼭 심령같다는 거지. 카르티에 종이백이 모린의 집에 옮겨진 걸 보면 잉가가 맞는 것 같기도 하고.

5. 루이스의 집을 매입하려는 중년 부부와 대화 중. 집에 심령이 있는 것 같다는 얘기에 부부가 궁금해하는 건 '영혼이 우호적인가'다. 즉 우호적이면 같이 살아도 괜찮다는 것인데, 뭐랄까, 컬쳐쇼크랄까... 쇼크까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문화적인 차이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던 장면이다. 대개 한국 귀신은 원귀(寃鬼)다 보니 산 사람 공격하고 놀래키는 걸 예사로 아는데, 서양 귀신은 어쩌다 저쪽과 이쪽을 잇는 문이 열려 들락날락 하는 것일 뿐 너랑 대화할 마음이 있다 혹은 대화하기 싫다 정도가 다인 듯 보인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간 질문. 서양은 특히 영미 사회는 개신교 사상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풍토 아니었던가? 그런데 사후세계로 영업하는 심령사업은 불황이 없으니 뭔가 대개 모순이다 싶다.

6. 아시아스의 다른 영화도 챙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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