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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6606 bytes / 조회: 4,616 / ????.06.07 19:10
[영상] 맨 프롬 어스 (Man from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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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작. 개봉한 지 10년 째인 올 하반기에 2편인지 속편인지 개봉한다는데 정보가 너무 빈약해서 속편에 대한 내용은 오리무중.

가끔 커뮤니티를 돌다 보면 이 영화에 대한 찬사가 한번씩 올라오는데 썩 끌리지 않아서 계속 미루다가 이번에 영화 잉여력이 되살아난 김에 드디어 봄.

줄거리는 간단하다. 존 올드맨이 교수직을 그만 두고 떠난다는 소식에 동료 교수들이 그의 오두막으로 찾아와 작별인사 겸 얘기를 나누는 게 전부인데 일단 제작비가 참 안 들었겠다 싶어 찾아봤더니 20만 달러... 오올~

 

이름에서부터 올드맨인 존은 동료 교수들에게 자신이 동굴인간(cave man)이며 추정하건데 크로마뇽인이고 만4천 년 정도 산 것 같으며 기억하는 연대는 4천 년 전 부터인 것 같다고 고백한다. 확신이 아닌 추정인 이유는 기억의 속성이 그렇기 때문이라고 해명한다. 

처음, '소설인데 한번 들어봐... 늙지 않는 자신을 숨기기 위해 10년 마다 거주지를 옮기고 신분 세탁을 하는 남자가 있어...' 농담처럼 시작했던 존의 얘기는 학자들답게 동료들이 그것이 소설이 아님을 곧 깨달으면서 존의 얘기가 사실인가 거짓인가 검증하는 청문회로 바뀐다. 때마침 그들의 전공분야도 인류학, 고고학, 생물학, 신학, 심리학이다. 토론이 진행될수록 이들은 존의 이야기를 입증할 증거를 확인할 수 없으나 존의 이야기에 허점도 없음을 인정한다.

 

다들 존의 얘기에 설득되고 인정하는 분위기로 흐르지만 단 한 사람 신학자이며 독실한 크리스천인 이디스만은 존의 정체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존이 신약에 등장하는 예수가 본인임을 밝히면서 이디스와 종교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한다. 이때 존의 주장이 흥미로운데 성경 특히 신약은 시인과 철학자들이 만든 훌륭한 윤리 규약집이고 그래서 교회는 동화 위에 세워진 것이며, 애초에 신약성서는 100단어 미만이었다는 부분은 굉장히 반기독교적인 내용으로 영화에선 일종의 충격적인 반전에 해당하며 영화 후반을 채운다.

 

별다른 사건 사고 없이 영화 속에서 존의 얘기가 진실인가 아닌가 입증하는 유일한 도구는 '대화'이며 그러므로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대사'다. 즉슨 영화의 완성도는 대사에 달려있다는 얘기인데, 정작 이 대사의 내용이 여러모로 미진하고 부족하다. 깊이와 성찰이 부족하고 겉핥기에 머문달까. 비유하자면 청소년용 고전을 읽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그냥 흘려버리기엔 아까운 흥미로운 부분이 요소 요소에 분명히 있고 그래서 제작진이 작가진에 제작비를 좀 더 투자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노린 듯 상징적인 연출이 몇 군데 있는데 하나만 들자면 대화가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그들 중 유일하게 끝까지 존의 정체를 부정하며 갈등을 일으켰던 인물 이디스가 존의 뺨에 입을 맞춘다. 이디스의 행동은 묘하게 유다가 예수에게 입을 맞추는 장면을 연상시키는데, 예수를 팔아넘긴 유다가 예수에게 입을 맞추는 의미는 '내가 입을 맞추는 사람이 예수'라고 예수를 체포하려고 기다리는 병사에게 알려주려는 목적이다. 끝까지 존을 부정하던 이디스가 존이 예수다라고 확인해주는 아이러니한 장면.

 

속편을 제작할 게 아니라 작가진을 보강해서 본편을 새로 제작하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 있다. 모닥불 앞에서 벌어지는 신화와 역사를 둘러싼 토론은 언제나 흥미롭고 즐거운 지성의 만찬이니 말이다.

 

동료들이 존에게 유독 일관되게 퍼붓는 질문은 '언제'다. '그때가 언제였어?', '언제 어디로 갔어', '언제 그렇게 되었어'... 묻는 동료들에게 존의 대답은 언제나 '너는 기억해?'이고. 기억은 연속하는 레일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과 같아서 연대와 시기로 남지 시,분,초의 시간으로 기록되지 않는다. <맨 프롬 어스>에서도 관련된 대사가 나오는데 '시계의 경쟁자는 시계'가 그것이다.

 

영화를 보고나면 결국 역사는 기억의 연대기가 아닐까 성찰하게 된다. 역사의 속성은 과거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가 멈추고 미래가 없다면 역사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것을 기억해야 할 미래 주체가 사라지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건 좀 비약적인 해석일 수도 있는데, 존이 자신의 얘기가 허구라고 거짓 실토를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심리학자 윌이 동료들이 모두 떠난후 존의 얘기가 사실이며 그 이면에 숨어있던 진실을 깨닫는 순간 충격을 못이기고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이후 집을 떠나던 존이 트럭을 멈추고 자신을 연모하는 샌디를 태우는 장면은 역시 역사와 기억의 긴밀한 속성 때문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뭐, 간단하게 말하면 인류의 본능이 후손을 남기는 거라고도 하니까.

 

개인적으로 인상에 남았던 부분은 존이 동료들에게 자신의 얘기가 사실이라고 믿게 하는 데는 긴 시간과 긴 단어의 설명이 필요했으나 자신의 얘기가 거짓이라고 믿게 하는 데는 단 몇 분, 몇 마디면 충분했던 장면의 전환이다. 인간은 믿는 것보다 의심하는 게 더 쉬운 종족인가 잠시 회의감이 들었던 반전. 이 내용을 좀 더 보충하자면 많은 선례를 통해 보건데 인간은 사실을 믿는 것보다 거짓을 믿는 걸 더 쉽게 여기는 기질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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