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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29 bytes / 조회: 3,420 / 2019.05.06 17:42
[도서] 김이경 『살아있는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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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경ㅣ서해문집ㅣ2018년 4월

 

 

제목만 보면 '책에 관한 책'을 다룬 에세이일 것 같은데 분류가 '소설'이어서 내용이 무척 궁금했던 책.

실제로 읽어보니 소설이 맞고, 내용은 책에 미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대분류가 소설이면 소분류는 '환상소설'에 넣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이 소설은 다양한 시대, 다양한 국가,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책에 미친 사람들을 보여주는데, 팩션과 픽션을 섞은 형식을 하고 있어 얼핏 보르헤스를 떠올리게 한다. 어딘가에 실제로 있을 것 같은 인물들, 있을 것 같은 책들...

그런 이유로 이 소설은 마지막 작가의 말과 인용출처까지 꼼꼼하게 읽어보길 권한다.

 

소설은 모두 12개 챕터와 독립 챕터 '소설 속 책 이야기'로 구성되었는데 12개 챕터 중「다큐멘터리 - 책의 적을 찾아서」의 내용이 흥미롭다.

책의 날을 맞아 지구촌 어느 작은 도시에서 이런저런 책 관련 행사가 열리는데 '최고의 문학작품'을 뽑는 것도 그중 하나. 처음 흥미롭게 출발한 행사는 곧 여론의 비판에 부딪친다. 그도 그럴 것이 리스트에 오른 책이 <돈키호테><파우스트><안나카레니나><율리시즈><변신> 등이다. 너무 적나라한 서양 중심 리스트라 당연히 반발을 살 수 밖에. 이런 비판이 수용되는 과정에서 차라리 '책의 적'을 뽑아보자는 의견이 나온다. 내가 흥미를 느낀 것도 이 대목이다.

 

일단 '최악의 책의 적'으로 네 명의 후보가 추려진다. 진시황, 히틀러, 테오필루스, 카라지치가 바로 그들.

테오필루스는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을 불태운 주교. 카라지치는 처음 듣는 이름이라 검색을 해보니 보스니아 내전의 주범이자 '인종청소'(단어만으로 혐오스럽다)의 주범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들 네 명의 변호를 맡은 인물들이 논쟁을 벌이는데, 누구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이전에 일단 나라면 이들 네 명 중 최악의 책의 적으로 단연코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을 불태운 테오필루스를 꼽겠다.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영화 <아고라>가 바로 이 시기, 이 사건을 다루는데 영화를 본 M이 분개했던 부분도 테오필루스가 후세에 성인으로 추대되어 길이길이 존경을 받았다는 대목이었다. 도서관을 불태운 이유가 지나치게 개인과 그 개인의 종교를 핑계 삼은 사리사욕에 바탕한 거라 사실 보편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분개할 포인트이기도 하다.

 

책을 불태우는 권력자들의 광기에 눈살을 찌푸리다 보면 분노는 다음 질문으로 이어진다. 인간에게 책을 읽는 행위와 책을 쓰는 행위는 어떤 의미인가, 하는.

 

인류의 역사는 사람이 무엇보다 '읽는 존재' 임을 보여줍니다. p.255
 

 

그런 의미에서 위 문장에 사족을 달자면, 나는 인간의 네 번째 본능은 '기록'이라고 생각하는바, 그러니까 인류의 역사는 인간이 '읽는 존재'보다는 오히려 '쓰는 존재'임을 증명하는 시간이었다고 본다. '쓴다' 즉 '기록하는 행위'는 인간이 불변의 존재가 아니며 불확실한 기억을 곱씹으며 생명의 초를 태우는 찰나의 존재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쓰고 쓰고 또 쓰고 계속해서 쓰는, 기록을 향한 인간의 집착은 마치 번식을 통해 이 땅에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는 것처럼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이 땅에 정신을 남기려는 제 4의 본능이 아닐까..... 는 내 생각이고.

 

故신영복 선생은 옥살이 중에 종이를 구할 수 없자 낙엽을 주워, 휴지를 뜯어 글을 쓴다. 한 자라도 더 쓰기 위해 깨알같은 크기로.

기록을 남기려는 인간의 집착은 여기저기서 확인할 수 있는데 일례로 남의 나라 유적지까지 가서 기어이 제 이름 석자를 써야 직성이 풀리는 여행자의 고집(?)도 그에 다름 아니다. 돌덩이에, 반지 등 금붙이에, 파도가 들이치는 모래 위에, 남의 집 담벼락에, 공중 화장실 벽에... 그외에도 어디든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문자를 새기려고 드는 이게 본능이 아니면 대체 뭐란 말이냐. 그런데, 쓰고 보니 어째 개인이 기록을 남기는 장소가 죄다 공공장소다. 하아, 인간이란....

 

작가의 말에 '책만 읽는 사람과 책을 전혀 안 읽는 사람 중 누가 좋은가' 라는 질문이 있다. 답을 하기에 앞서 먼저 우문이라고 따지고 싶은 건 세상에 '책을 전혀 안 읽는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 그것을 감안하고도 고르라면 나 역시 '책을 전혀 안 읽는 사람'을 고르겠다. 아무려나 곡학(曲學)으로 지록위마(指鹿爲馬)하는 위인보다야 차라리 일자무식이 낫지 않겠나. 일자무식은 언젠가 배우겠지 라는 미래의 희망이라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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