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바움백 <결혼 이야기>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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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6715 bytes / 조회: 2,597 / 2021.03.11 22:01
[영상] 노아 바움백 <결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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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했던 건 딱 하나였다.

니콜은 왜 찰스와 이혼하려는 거지?

나는 모르는 심오한 '뿌의 세계'인가? 그런 생각도 들지만.

 

친구 같고 연인 같고 동료 같은 니콜과 찰스는 주변의 부러움을 독차지하는 부부였지만 어느날 느닷없이 파경이 닥친다. 고향인 LA로 간 니콜은 그곳에서 이혼 소송을 시작하고 찰스는 갑작스런 니콜의 통보에 이유를 몰라 황당하다. LA로 날아가 니콜을 만나 얘기를 해보지만 이미 니콜은 마음의 정리가 끝난 상황.

 

그러나 두 사람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건, 또한 이혼을 향한 갈등이 본격적으로 심화되는 건 이혼 전문 변호사가 끼어들면서다. 이혼을 단순히 이별의 다른 형태로만 생각했던 니콜은 어느새 이제 곧 전남편이 될 찰스에게 거액의 위자료 청구를 요구하고 있고, 졸지에 가진 전재산과 아들의 양육권을 빼앗기게 생긴 찰스는 울며 겨자 먹기로 역시 이혼 전문 변호사를 선임하는데 문제는 이거다. 사실 두 사람은 아무 문제가 없다. 연인이 싸우고 헤어지는 것처럼, 혹은 싸우지 않아도 헤어질 수 있는 것처럼 두 사람에게도 그냥 이별의 때가 온 것 뿐이다. 그런데 펼쳐놓고 보니 가관이다. 그들 스스로도 놀랍다. 우리가 이렇게 문제가 많은 부부였다니!

 

말그대로 문제라고 하니 문제가 되는 상황들.

니콜은 단지 이혼이 하고 싶을 뿐이고, 찰스는 결혼 생활을 계속 유지하고 싶을 뿐인데 법 앞에 서니 하루아침에 이혼의 유책배우자가 된 두 사람.

 

두 사람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일상의 단편들은 법 감정이 끼어들고 법률 조항이 개입하는 순간부터 이혼의 원인이 되고 조건이 되어 두 사람을 공격한다. 사실 관객 입장에서야 심정적으로 니콜이, 구체적으론 니콜의 변호사가 지나치단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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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백미는 두 사람이 직접적으로 부딪치는 유일한 장면으로 후반부에 등장한다. 상대에게 오직 상처를 입히려는 목적으로 악을 쓰며 비난하는 두 사람. 둘 모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겪는 날것인 감정의 발산이다. 그리고 번아웃이 찾아온다. 단 한번의 발화인데 그래서인지 이후 찾아오는 침묵이 무척 쓸쓸하다. 씁쓸이 아니고 쓸쓸이다.


반전은, 이혼 소송의 한 과정으로 '서로의 장점 쓰기'를 할 때 그들이 적어내려간 상대의 장점이 팩트였다는 거. 장점은 많고 단점은 별로 없는 그들은 서로에게 듬직하고 사랑스러운 배우자이고 동료였던 것이다

 

영화 자체는 사실 좀 심심했는데 엔딩 이후 생각지 않게 여운이 길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굳이 드라마 <부부의 세계>식 막장이 없어도 부부는(혹은 연인이어도 마찬가지) 파경을 맞을 수 있다는 거다. 단 한번이긴 하나 찰리의 외도조차도 니콜이 이혼을 결심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어느 날 눈 떠 보니 저 사람이 내 인생에서 더이상 중요하지 않고, 저 사람보다 내 인생이 더 소중하고, 저 사람이 내게 필요한 이유를 더는 느끼지 못할 때 바로 그런 때 이별의 순간이 온다. 두 사람 사이에 변한 건 그저 '시간(=세월)' 뿐인데 이게 참, 불가항력이다. 헤어지고 싶은 사람에게도, 헤어지기 싫은 사람에게도 모두에게 이별이 상처가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칼렛 요한슨의 재발견. 영화를 보는 내내 요한슨의 연기가 물이 올랐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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