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미술에게 말을 걸다』 > Review

본문 바로가기
Login
NancHolic.com 감나무가 있는 집 Alice's Casket 비밀의 화원 방명록
Review
-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21030 bytes / 조회: 2,881 / 2021.04.25 15:30
[도서] 이소영 『미술에게 말을 걸다』


20210425170617_dc29fdb4a9c106427d24358ffa59712d_c2ku.jpg

미술에게 말을 걸다 

이소영|카시오페아|2019년 11월

 

 1장을 읽으면서 미술 초보자를 위한 감상 길잡이인가 했는데 읽다 보니 여느 대중문화서적처럼 화가와 그림과 화가의 주변 이야기다. 그림을 얘기할 때 자연인으로서 화가의 얘기(라기보단 정보라고 하는 게 더 적확하겠다만, 하여튼 얘기)를 빼놓을 수 없는 건 문학이나 음악과 달리 미술은 창작의 기저에 화가의 경험이 필수불가결하게 동반되기 때문인 듯하다. 이는 추상미술, 설치미술 등도 마찬가지.

 

1장, 2장은 화가와 그림이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사적 의미, 화가와 그림을 둘러싼 주변의 에피소드가 많다. 2장의 소제목은 「그림을 좋아하지만, 잘 알지는 못해요」인데 '좋아하는 그림이 있나요?'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 장은 역시나 고흐부터 시작한다. 아무래도 고흐가 대중친화적이면서 접근하기 쉬운 방지턱 낮은 화가이기는 하다.

 

3장의 소주제는 '명화'인데 명화를 여는 시작은 다빈치의 모나리자. 이후 존 앳킨슨, 클림트 등으로 이어지는데 아는 얘기는 아는 거라서, 모르는 얘기는 모르는 거라서 재미있다. 그냥 미술책이 아닌 미술 대중문화책이라는 건 교양서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즉 쉽고 재미있다는 얘기.

 

3장 이후는 대개 이런 책을 고를 때 기대하는 화가와 그림 얘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자연인과 직업인인 화가로서 인물을 통해 그의 그림을 감상하고 나아가 그림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책은 딱히 미술사조를 나누는 대신 인상주의, 추상미술 등 근대회화를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쭉 읊는다. 그러다 5장 「취향은 어떻게 찾나요? 」로 넘어가 우크라이나 출신 소니아 돌로네로 결을 맺는다. 덧붙이자면 소제목을 참 잘 골랐다는 생각이다. 

 

소니아 돌로네는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화가인데 저자의 말을 그대로 옮기면 '자신의 추상화를 인테리어와 의상에 접목한 아티스트'라고. 남편인 로베르 들로네와 함께 오르피즘(orphism), 동시적 시각을 회화에 작업한 것이 특징인데 책을 덮고 소니아 돌로네의 작품을 찾아본 개인적인 감상은 소니아 돌로네를 화가라고 칭하는 것에 관하여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하는 거다. 응용미술가, 설치미술가 정도로는 부족한가. 굳이 화가라고 붙여야 하나. 그 시절에 패치워크를 응용한 그녀의 작업이 신선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수록 굳이 소니아 돌로네라는 이름을 순수미술 인명부에 기록할 필요가 있을까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것이다.

 

달리 의식하지 않고 읽었는데 다 읽고 전체적으로 책을 훑어보니 각 장이 모두 소제목에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다. 

 

개인 취향으로 좋아하는 화가와 그림을 제외하고 눈길을 끌었던 화가는 수잔 발라동의 아들 모리스 위트릴로. 특히 '백색시대' 시기에 작업한 그림은 동화같은 이미지와 우울한 서정이 시선을 오래 잡았다. 그리고 밤 풍경의 화가 존 앳킨슨의 그림 역시 여러 번 들여다 봤는데 처음 볼 때, 두 번 볼 때... 볼 때마다 밤의 색채가 묘한 매력을 느끼게 한다.

 

수잔 발라동은 에릭 사티의 연인으로도 유명하다. 아니, 발라동의 연인 에릭 사티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6개월 간 동거를 했고 이별했고 이후 발라동은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했지만 사티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사티는 사랑하는 발라동을 위해 'Je te veux(너를 원해)'를 작곡했다.
 

 

::: 모리스 위트릴로(Maurice Utrillo, 1883 - 1955) 

 

 

20210425182136_dc29fdb4a9c106427d24358ffa59712d_2sg2.jpg

 

Rue a'Asnières(아스니에르 마을의 거리), 1915




20210425182900_dc29fdb4a9c106427d24358ffa59712d_o1jq.jpg

  

The Cabaret of Lapin Agile, Snow Effect(눈덮인 라팽 아질), 1936

 

 

 

20210425192201_dc29fdb4a9c106427d24358ffa59712d_gemo.jpg

 

la petite communiante eglise de deuil (두유 마을의 교회), 1912


 

 

20210425184835_dc29fdb4a9c106427d24358ffa59712d_23p6.jpg

 

L'Eglise de Clignancourt(클리냥쿠르의 교회), 1913-1915 

 

 

<두유 마을의 교회>와 <클리냥쿠르의 교회>는 백색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그림은 <아스니에르 마을의 거리>. 동화 같은 서정이 느껴지는데 백색이 쓸쓸하고 우울한 서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독특하게 다가왔다.


그림이 그려진 정확한 연대를 알고 싶은데 검색을 여러차례 했으나 위트릴로가 대중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나 크게 성공한 화가가 아니어서인지 정보가 빈약하다. 오히려 위트릴로를 검색할수록 그림보다 개인사에 대한 정보가 더 넘쳐나는 웃픈 결과.

 

위트릴로는 당대 화가들의 모델이자 자신 역시 화가였던 수잔 발라동의 사생아로 태어났다. 알콜중독 치료의 일환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어 화가가 되었으며 위트릴로의 화풍은 '몽마니 시대', '백색시대', '다색시대'로 이어진다.

 

10대 때부터 알콜중독으로 정신병원에 드나들며 그림을 그렸던 위트릴로는 불안한 시기를 보냈으나 쉰이 넘은 나이에 부유한 미망인과 결혼하면서 이후 폐충혈로 사망할 때까지 정신적,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말년을 보낸다. 역설적이지만 그리고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위트릴로 개인적으로 안정을 이룬 이 시기에 화가로서 재능은 오히려 평범해졌다는 평을 받는다.

 

위트릴로의 그림 몇 점을 찾아 본 감상은 이 화가는 원을 그리는 것에 박하다는 것인데 직선으로만 이어지는 건물과 거리는 위트릴로가 반평생 겪었던 우울의 결과물인가 궁금하다. 그림 속에서 풍경의 일부로만 존재하는 인간도 마찬가지. 원래는 그림을 좀 더 많이 포스팅했으나 어차피 포털에서 검색하면 다 볼 수 있는 거라 과감하게? 정리하고 대표작과 내 마음에 들었던 그림만 남겨둔다.

 

 

 

::: 존 앳킨슨 그림쇼(John Atkinson Grimshaw, 1836-1893)

 [출처]https://www.artrenewal.org/ 

 

 

20210425200600_dc29fdb4a9c106427d24358ffa59712d_ik32.jpg

The Custom House, Liverpool, Looking North

circa 1880-circa 1890

Oil on canvas

60.8 x 91.2 cms | 23 3/4 x 35 3/4 ins

Walker Art Gallery | Liverpool | United Kingdom

 

 

20210425201304_dc29fdb4a9c106427d24358ffa59712d_j0ht.jpg

 

Scarborough Lights

58 x 89 cms | 22 3/4 x 35 ins

Oil on canvas

Scarborough Art Gallery

Scarborough | United Kingdom

 

 

 

존 앳킨슨의 그림, 그러니까 콕 찍어 밤 풍경은 셜록 홈즈의 우울을 연상하게 한다. 안개비, 템즈강, 어두운 거리, 개와 늑대의 시간. 저기 어디선가는 범죄가 일어나고 있을 것 같은 그런.

 

참고로, 

M은 위트릴로, 앳킨슨 둘 다 별로라고 했다. 별로인 이유도 들었는데 까먹었다. 여하튼 취향이 아니라는 얘기였겠지. 

tmi를 하자면 M은 모네의 <인상>를 좋아한다.

 

 

20210425204251_dc29fdb4a9c106427d24358ffa59712d_ndyx.jpg

 

끌로드 모네 <인상 : 해돋이(Impressing : Sunrise), 1940> 

 

클로드 모네가 활동하던 당시에 혹평을 받았다는 얘기를 들려주니 M이 들려준 일화. 그러니까 초6 때, 야외에서 미술 수업을 할 때였다고 한다. 돌멩이에 그림을 그리는 수업이었는데 붓을 대는 순간 물감이 결따라 번졌고 M이 보기에 그것이 꼭 사자처럼 보이더라고. 그래서 남은 두 시간은 놀았는데 수업이 끝나고 담임이 이게 뭐냐고 묻더란다. 사자라고 하니 담임이 이해를 못하였다고. 메리배드엔딩에 아이구, 저런 안타까워하다 그 돌멩이 어쨌냐고 물으니 버렸다고 한다. M의 추상을 못 본 게 참 아쉽네. 

 

생각해보면 예술가의 불운은 대부분 시대를 잘 못 타고 나는데서 비롯된다. 시대를 앞서가도, 시대에 뒤처져도 그들에겐 불운이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질 않는가. 내 작품을 봐주지도, 공감해주지도 않는 시대와 화합하지 못하고 홀로 맞서야 했었을 이들에게 때늦은 위로를 보낸다.

 

 

'내가 끌렸던 것은 예술 자체보다는 예술가들의 삶이었다.' - p.318
 

저자가 쓰기로 프랑스 출신 나비파 화가 피에르 보냐르의 말이라고 하는데 아마 대부분 평범한 초보 미술감상가들도 공감하지 않을까. 이런 종류의 책을 읽는 재미이기도 하고.

 

* 댓글을 읽거나 작성을 하려면 로그인을 해야 합니다.

Total 339건 2 페이지
Review 목록
번호 분류 제목 날짜
324 북마크 Mon Caf´eㅣ신유진 2 23.10.26
323 도서 혼자서 본 영화 6 23.10.21
322 도서 정이현 外 『사랑, 이별, 죽음에 관한 짧은 소설』 23.10.04
321 북마크 정희진 『혼자서 본 영화』 23.10.03
320 도서 정지돈 『내가 싸우듯이』『야간 경비원의 일기』 23.10.02
319 도서 정은형 『베이비, 베이비』 6 23.07.20
318 도서 도서관 책 간단 평 23.07.12
317 북마크 A Canticle for Ditator 2 23.07.03
316 영상 헌터 / 에지 오브 투머로우 / 세버그 23.07.01
315 도서 백민석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 23.07.01
314 도서 조성준 『예술가의 일』 23.06.20
313 북마크 예술가의 일 23.06.20
312 도서 곽아람 『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23.03.12
311 도서 최혜영 『그리스 비극 깊이 읽기』 7 23.03.08
310 도서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3 23.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