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핀처 <맹크 Mank>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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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10638 bytes / 조회: 2,508 / 2021.05.10 22:44
[영상] 데이비드 핀처 <맹크 M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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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를 누가, 어떤 의도로 골랐는지 궁금하다. 포스터를 통해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오슨 웰즈의 <시민 케인>을 본 계기는 순전히 '로즈버드' 였다. <시민 케인>을 얘기할 때마다 등장하는 '로즈버드의 의미'가 궁금해 직접 영화를 보고 확인해봐야겠다 했다. 그리고 영화를 본 지 n년이 흐른 어제 M에게 전화했다.

 

나 : 시민 케인에서...

M : 그게 뭔데?

나 : 스미스씨가 워싱턴에 가는 거 볼 무렵에 같이 봤잖아

M : 안 봤는데

나 : 봤어. 영화 끝나고 내가 로즈버드가 무슨 의미냐고 물었을 때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안나?

M : 내가?

나 : 케인이 마지막에 "로오즈브으드으!!!!!!!"(기억을 살리라고 성대모사 해줌) 외치잖아

M : 그랬나(대꾸에 영혼이 없음)

나 : 내가 로즈버드가 무슨 의미냐고 물으니까 네가 뭐라고 했냐면 아무 의미 없다고 했다. 유명한 대사다 했더니 말장난이라고 했고.

 

아마 극장에 안가면서 생긴 버릇 같은데 최근엔 영화를 볼 때 대개 정보 없이 보는 일이 잦아졌다. 최근 본 <맹크>도 마찬가지. 하물며 감독이 데이비드 핀처인 것도 몰랐다. <맹크>를 본 건 올해 아카데미 노미네이트작을 봐야지- 라는 어떤 의무감?에서.

 

오슨 웰즈가 맹키위츠에게 시나리오를 완성하라고 한 경위에 관한 짤막한 자막이 오프닝으로 등장하고 이어 영화가 시작하는데 흑백이다. 그리고 몇 장면 지나지 않아 곧 알게 된다. 아, 맹크가 작업하는 시나리오는 '시민 케인'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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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케인(Citizen Kane, 1941)

감독: 오슨 웰즈 ㅣ각본: 오슨 웰즈ㅣ출연: 오슨 웰즈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가 말하는 건 미국, 그중에서도 헐리우드, 그중에서도 막 유성영화 시대를 연 30년대 헐리우드 산업이기 때문. 영화는 맹크가 '시민 케인' 시나리오를 쓰기 전까지 그리고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을 다루기 때문에 맹크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대개의 인물과 에피소드는 실존과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미국 헐리우드 산업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르는 사람은 지루하고 재미없고 몰입도 어렵다는 의미인데 이쯤되면 제작자는 이 영화의 소비 대상을 어디까지 염두했을까 궁금해진다.

 

그래도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버티고 나니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겠다. 오슨 웰즈에 대한 헐리우드의 경외심이 그것. 오슨 웰즈를 연기한 배우는 목소리를 포함 웰즈의 피지컬을 실물에 아주 근접하게 재현했는데 몇 장면 등장하는 게 고작인 오슨 웰즈의 존재감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없어도 이거 영화 <시민 케인>의 오마주인가 촉이 올 정도로 기시감을 일으키는 요소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플래시백을 이용해 과거와 현재를 교차편집한 촬영이 그렇다.

 

<맹크> 얘기는 없고 영화 외적인 얘기만 잔뜩 하고 있는데; 사실 영화 자체는 할 얘기가 별로 없다. 30년대 모습이라고는 하나 거의 100년이 흐른 지금도 헐리우드 영화산업은 여전히 정치적인 공학으로 굴러가고 있으며 그건 미래에도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 불행하게도 영화는 '선전선동(propaganda)'의 속성을 가진 훌륭한 매체인데다 자본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한 산업이다. 동서고금 막론하고 권력과 한 배를 탄 자본이다 보니, 자본이 필요한 영화야말로 위정자가 입맛에 맞춰 활용하기에 딱인 도구다. 한마디로 비극인 건데, 예술과 자본은 늘 충돌할 수밖에 없지만 자본 앞에 선 예술은 골리앗을 앞에 둔 다윗이기 때문. 성경 속 다윗이야 신을 뒷배로 두고 있으니 무서울 게 없지만 현실의 예술은 그렇지 않다. 뒷배는 커녕 배고픔과 무명의 공포가 늘 발목 근처를 어슬렁거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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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 같은 작가 출신인 업튼 싱클레어를 지지했던 맹크는 업튼이 선거에서 낙마하자 심한 좌절과 분노를 느끼고, 3년 후 MGM 사장 메이어와 언론 재벌 허스트가 식사를 하는 곳에 난입한다. 여기서 맹크는 허스트를 돈키호테에 비유하는데 이때 자본가와 그 자본가에게 월급을 받는 가난한 노동자에 대한 일장연설이 눈여겨 볼만하다. 

 

맹크는 주지사 선거에 가짜 뉴스 영상을 만들어 공화당 후보 당선을 도운 메이어가 아니라 허스트를 공격하는데 그 의문은 바로 이어지는 메이어의 대사로 풀린다. 즉슨 허스트를 가운데 두고 맹크와 메이어가 싸움을 벌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는데, 허스트를 대신해 맹크를 비난하는 메이어의 대사가 매우 뼈아프다. 그러니까 맹크에게 월급을 주는 사람은 허스트이며, 허스트가 월급을 주는 이유는 맹크의 글 때문이 아니라 말 때문이라는 거다. 실제로 맹키위츠는 투머치토커이며 입담으로 유명했다고 하니, 저 대화가 실제였다면 맹크가 받았을 모욕감과 좌절이 익히 짐작이 간다. 저건 결국 네 재능이 아니라 네 광대짓에 월급을 준다는 소리 아닌가.

 

주지사 선거 이후 1937년과 1940년을 오가는 교차편집이 무척 빠르게 진행된다. 그때까지의 느린 속도에 익숙했다면 달라진 속도에 자칫 중요한 장면들을 놓칠 수 있는데 사실 영화 전체를 통해 의미있는 장면과 대사들이 바로 이 지점에서 가장 많이 쏟아진다. 

1940년 현재, 우여곡절 끝에 시나리오를 완성한 맹크는 오슨 웰즈에게 애초의 계약을 깨고 엔딩 크레딧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줄 것을 요구하는데 빠른 교차 편집으로 관객은 맹크가 무례한 요구를 하는 배경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관객을 위한 배려인지 뭔지 핀처가 굉장히 정직한 연출을 하는데, 3년 전 식당에서 무모한 모험가에서 보수꼰대로 변절한 돈키호테에 비유하며 허스트를 맹렬히 비난하는 맹크에게 허스트는 무척 여유로운 태도로 '오르간 연주자의 원숭이 우화'를 들려준다. 제 위치와 역할을 망각하고 눈 앞에 펼쳐진 것에 도취된 원숭이의 얘기다. 처음 맹크가 식당에 난입할 때 허스트가 '몽키위츠'라고 비아냥댔던 게 복선이었던 셈이다. 결국 맹크가 크레딧을 원하는 이유는 자본가의 원숭이가 되지 않겠다는 결심인 거다.

 

뭐어쨌든 크레딧에 이름도 올리고 42년 아카데미에서 상도 받았으니 맹크로선 몇 년 전의 모욕에 설욕을 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연출이 데이빗 핀처인 것에 놀랐고, <시민 케인>이 공동 각본인 것에 놀랐고. 

생각해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지 않고서야 굳이 엔딩 크레딧까지 꼼꼼하게 챙겨보진 않는다.

 

이 영화를 선뜻 추천하기는 힘들다. 서두에 썼지만 중급 이상의 헐리우드 키드가 아니면 문과생이 이과 수학 수업을 듣는 기분이 들 것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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