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안 젤러 <더 파더 The Father> 스포有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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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11155 bytes / 조회: 2,508 / 2021.05.14 01:55
[영상] 플로리안 젤러 <더 파더 The Father> 스포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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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더(The Father, 2020)

감독: 플로리안 젤러 

출연: 안소니 홉킨스, 올리비아 콜맨

 

 

 

주1. 예고편은 장면 전환도 빠르고 얼핏 스릴러의 장르적 특성이 보이는 편집을 했지만 실제 영화는 안소니의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기 때문에 예고편의 느낌을 기대하고 영화를 보면 당황할 수도 있다.

주2. 스포 있음.

 

 

누가 영화를 추천하며 '스릴러'라는 표현을 썼길래 스릴러인가 보다 하고 봤는데 뭐, 결과적으로는 속았다는 얘기.

불안과 공포가 스릴러의 대표적인 요소이긴 하다만 그렇다고 이런 요소들이 스릴러를 정의하는 것은 아니다.

뭐어쩌겠는가. 이미 본 것을. 장르에 대한 불호 얘기가 아니라 의학 픽션인 줄 모르고 봐서 당황했다는 얘기다.

 

아카데미 남우주연, 각색상을 받은 것 말고는 역시 정보 없이 봤는데 이번엔 좀 후회했다. 나는 의학 관련 픽션은 드라마든 책이든 기피하는 편인데 남의 불행을 거울 너머로 보며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위안, 공포, 불안 따위의 감정 전이를 견디는 것이 몹시 불편하기 때문. 구체적으로는 그런 감정 발현에 동원되는 인위적이고 과장된 서사에 화해할 수 없는 괴리를 느낀다. 혹자는 이런 걸 '불행포르노'라고 부르던데 그런 주장조차도 일종의 전시효과를 의도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별로다.  

 

얘기가 곁길로 샜는데 다행이랄지 의학 소재라는 걸 빼면 <더 파더>는 위에 열거한 것들과 거리가 먼 영화다. 신파도 없고 과장도 없다. 그렇지만 공포와 불안을 부추기기는 한다. 영화는 알츠하이머를 다루는데 원래 난치병 혹은 불치병이라는 게 지금은 남의 일이지만 언젠가는 나의 일이 될 수도 있으므로 동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소재에 감정적으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감독은 알츠하이머를 1인칭 시점으로 다룬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불안, 공포, 의심, 혼란을 환자 시점으로 보기 때문에 아마 스릴러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다시 말하지만 스릴러는 아니다. 이는 물론 내 기준.

연출만 얘기하자면 '알츠하이머'를 1인칭 시점으로 보여주는 카메라의 서술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영화사적으로는 아마 이후 같은 소재를 다루는 영화의 한 전범(典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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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재구성이란 어떤 의미일까. 인간의 삶을 시간이라는 흐르는 강물 위에 쌓아올린 기억의 역사라고 한다면, 시간의 연대기적 특성인 순행 질서가 붕괴된 기억은 더이상 추억이 아니라 혼란이고 재앙이다.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혼란을 느끼는 안소니. 안소니는 자신의 혼란을 딸 앤의 탓으로 돌리며 앤이 자신의 플랫(아파트)을 탐낸다고 의심한다. 그리고 점차 뒤섞이며 왜곡되는 기억과 인물과 시간. 이렇듯 불안심리에 시달리는 안소니가 영화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보여주는 모습은 바로 시계에 대한 강박이다. 비밀 장소인 찬장에 시계를 숨기고 -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 시계를 찾는 반복을 보여주는데 급기야는 딸의 남자친구가 자신의 시계를 훔쳤다고 의심한다. 시계를 시간으로 치환하면 안소니의 혼란이 의미하는 바가 매우 자명해진다. 

 

인간에게 기억은 어떤 의미일까. 알츠하이머 환자의 가족이 겪는 고통은 다양한 매체와 육성을 통해 전해지지만 정작 알츠하이머 환자 본인의 육성은 없다. 자신의 시계..., 기억을 유실한 사람이 깨어진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보는 불안과 공포를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너무 슬프고 너무 비극적인 얘기다.

 

등장인물 중 남성은 안소니를 위협하는 존재, 여성은 안소니를 위로하고 보듬는 존재로 양분되는 시선이 흥미롭다. 비록 까맣게 잊어버렸을지라도 인간의 최초의 기억은 아마도 모태일텐데 그래서 안소니가 엄마를 부르며 흐느낄 때 부서진 자아가 자신의 근원을 그리워하는 장면을 정면에서 목도한 기분이었고 그래서 몹시 충격적이고 슬펐다.

 

 

What about me? Who exactly am I?

- 안소니, <더 파더>

 

 

영화가 조금 진행되었을 때 ¹연극적인 특성이 보인다 했는데 영화가 끝나고 찾아보니 감독 플로리안 젤러는 극작가이며 연극 연출로 경력을 꽤 쌓았고, 원작은 본인이 쓴 희곡이며, 각색도 본인이 직접 했다고 한다. 연출에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기왕 알츠하이머 환자의 불안과 공포를 다룰 것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안소니의 1인칭 시점을 유지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거였다. 영화가 지루하지 않도록 스릴러적인 요소를 넣으려고 딸 앤의 시점과 교차하는 편집을 선택한 게 아닐까 이해는 가지만 그래도 역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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¹연극적인 특성이라고 함은 감독이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 때문인데 협소하고 제한된 장소에 인물을 세워 놓고 대사와 주변 소품을 활용하는 것으로 서사를 직/간접으로 전달하는 연출 때문. 장진 감독이 이런 연출을 잘하는데(비록 악동 같은 느낌이지만) 최근엔 작품 소식이 없어 아쉽다. 언급한 김에 장진의 <박수칠 때 떠나라> 추천. 개인적으로 장진의 필모 중 연극적 영화 연출의 마스터피스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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