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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8884 bytes / 조회: 2,309 / 2021.05.16 23:11
[영상] 클로이 자오 <노매드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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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랜드(Nomadland, 2020)

감독: 클로이 자오ㅣ주연: 프랜시스 맥도먼드

 

영화 대표 포스터를 고를까 하다 이 영화가 얘기하고 싶은 모든 것이 이 한 장면에 담겼다는 생각이 들어 고른 영화의 한 장면.

 

* 제목을 제외하곤 'nomad'를 '노마드'로 표기하기로 함. 나는 '노마드'로 먼저 이 개념을 접했기 때문에 이렇게 표기하는 게 편하다.

 

 

0.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좋아한다. 영화가 질문하는 방식도 좋아하고. <노매드랜드>는 관객에게 질문하는 영화다.

 

1. 영화가 끝난 후 첫 감상은 좀 속물적이긴 하지만 <기생충>이 <노매드랜드>와 함께 영화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면 무관이 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거. 

 

2. 상을 휩쓸었다는 소식에 궁금했는데 소문난 잔치가 이유 있다. '작품'이라고 붙여도 손색이 없는 영화.

 

3. 원작이 책이긴 하지만 영화는 시각적 영상보다 눈으로 읽는 텍스트의 느낌이 강하다.

 

4. 카메라 시선이 건조하고 관객과 거리두기가 또렷하다 했는데 원작이 논픽션이다. 원작이 궁금하다.

 

5. 맥도먼드의 연기가 정말 좋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오후 황혼을 바라보는 발끝에서 뻗어나간 그림자만으로도 펀의 감정과 서사가 읽힌다. 

 

6. 사건도 사고도 없다. 노매드랜드라는 제목에 충실하게 화면을 채우는 건 내내 길 위의 트레일러와 사람들 뿐이다. 그런데 울컥 감정이 치미는 순간이 있다. 특히 카메라의 시선이 펀을 잡을 때. 기쁠 일도 행복할 일도 없는 펀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이 묘하게 따뜻하다. 길 위의 펀과 땅에 정착한 사람을 투샷으로 잡을 때, 카메라의 시선은 수평을 유지한다. 펀이 그들에 비해 나락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펀의 불안과 상실은 펀 개인의 서사라고 선을 긋는 것도 인상적이다. 펀에겐 집을 대신하는 트레일러가 있고, 파트타임이긴 하지만 일자리를 얻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 하우스리스(Houseless) 펀이 집을 가진 사람보다 더 불안한가. 안정적인 직업과 통장 잔고를 가진 사람보다 파트타임을 전전하는 펀이 더 불행한가. 슬슬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7. 삶의 터전에서 쫓겨난 사람들, 가족을 잃고 혼자 남은 사람들, 주류사회가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 떠밀리듯 길 위로 나온 노마드족의 사연과 상황은 더없이 절망적인데 정작 그들은 그렇게 느끼는 것 같지 않다. 

 

8. 1년 전 펀은 사랑하는 남편과 직업과 집이 있었다. 그리고 1년 새 그녀는 그것들을 모두 잃었다. 사람들과 함께 있지 않을 때 길 위의 펀은 외로워 보인다. 하지만 외로움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유전적 징후가 아니겠는가. 즉 외로움은 노마드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얘기.

 

9. 주류사회에서 밀려난 혹은 쫓겨난 펀에게 세상은 다정하다. 트레일러에서 생활하는 펀에게 한때 그녀를 알았던 사람들이 손을 내민다. 우리 집으로 와요. 펀은 거절한다. 펀은 home이 없는 것이지 house가 없는 것이 아니므로. 펀의 집은 트레일러다. 내 집을 놔두고 왜 타인의 집에서 신세를 지겠는가. 그러나 사람들은 펀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쯤 해서 전통적인 개념의 '집'에 대해 생각해본다. 태초에 인류는 유랑민- 노마드족이었다. 펀은 트레일러를 몰고 여러 주 경계를 드나들며 이동한다. 노마드족에게 집은 곧 그들이 머무는 장소다. 트레일러가 고장이 났을 때 정비소는 트레일러를 팔고 새로 살 것을 권유하지만 펀은 거절한다. 집에 고장이 발생하면 그것을 수리하지 집을 팔지는 않는다. 

 

10. 결국 펀은 길 안쪽에서 안주하는 삶보다 길 위의 삶을 선택한다. 펀- 노마드족을 동정이나 연민으로 보지 않는 것. 이것이 영화의 일관된 시선이다.

 

11. 노마드족에 관하여, 집과 마찬가지로 개념을 재정립할 시기가 온 것은 아닐까. 지리적 위치에 기반한 지역과 사회의 합의가 있어야겠지만, 미국은 이미 그 합의 과정에 스타트를 끊은 것 같지만, 노마드족을 집이 없는 노숙자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신인류의 새로운 부류라고 받아들여야하는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epi.

예전에 J에게 들은 일화. 직장을 잃고 생활전선을 전전하다 살 길이 막막해 길에 나온 지 한 달 정도 된 노숙자를 J가 인터뷰한 일이 있다. 길바닥에서 첫날. 너무너무 불안하고 막막하고 미칠 것 같더란다. 둘째날도 마찬가지. 그리고 사흘 째가 되던 날. 처음으로 해방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자유롭고 편할 수가 없더라고. 이렇게 좋은 삶을 왜 진작 몰랐을까 싶더라고. 이제 다신 예전 생활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하더란다. 그 정도의 성찰은 아니지만 예전에 도로 위에서 큰대자로 누워 하늘을 본 적이 있다. 뭔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해방감을 느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사람마다 가진 잣대의 크기가 다른데 내 잣대를 타인에게 들이대서는 안 된다. 공존하는 삶. 아마도 이것이 VR의 등장으로 현실과 가상의 차원을 허무는 개념을 체험하는 4차 산업시대를 사는 인간의 화두가 아닐까, 라는 그런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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