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인터스텔라><테넷> >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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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18912 bytes / 조회: 2,175 / 2021.07.19 22:22
[영상] 크리스토퍼 놀란 <인터스텔라><테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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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부쩍 양자물리학이 재미있어서 유튭에서 관련 영상을 자주 찾아보는데 재미와 이해는 별개의 문제라, 그냥 재미만 만끽하고 있다. 무슨 얘긴지는 모르지만 재미있네- 하는 거다.

덕분에 서당개 3년이라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인터스텔라>와 <테넷>을 제법 재미있게 감상했다. 뭔지 모르지만 익숙한 내용들이 눈과 귀로 쏙쏙 들어오는 것이다.

 

 

 

총평


물리학 이론에 기반을 둔 세계관은 <인터스텔라>가 <테넷>보다 어려웠고,

감상 총평은 액션(활극)이 돋보이는 <테넷>이 <인터스텔라>보다 재미있었다.

 

 

 

놀란 유니버스


놀란 감독은 의심의 여지 없이 영화를 재미있게 잘 만드는 감독이다. 오락성과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드는데 개인적으론 천재형에 가깝다고 보는 감독이다. 다만 어쩌다 물리이론에 사로잡혀서 영화에 매번 어려운 세계관을 넣는지 안타깝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영화를 좀 더 즐기려면 영화 속 세계관을 이해해야 하고 그러자니 영화 한 편 보자고 매번 공부를 해야 하는 실정인데 그 귀찮은 과정에도 분명하게 장담할 수 있는 건 놀란의 영화는 재미있다는 거다. 

 

하지만 순수 관객으로서 놀란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는 제일 큰 이유는 물리이론에 기반한 지적 세계관보다 염통이 쫄깃해지는 스릴러에 있다. 놀란의 필모에서 스릴러의 정점을 느꼈던 작품은 <덩케르트>. 런닝타임 내내 카메라 렌즈의 시선에 갇혀 조여오는 긴장감에 쫓겼는데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이런 스릴러의 긴장감은 <인터스텔라>, <테넷>도 여지없다. 아마도 이런 장르적 쾌감이 어려운 세계관에도 불구하고 놀란의 영화를 기대하고 기다리는 팬심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이젠 '놀란 유니버스'라고 이름 붙여도 과하지 않은 놀란의 필모를 늘어놓으면 과거엔 안 보였으나 지금은 보이는 것들이 있는데, 순행하지 않는 시간에 대한 집요할 정도의 관심과 흥미가 그것이다. 생각해보면 첫 작 <메멘토>는 놀란 유니버스의 조촐한 서막이었던 셈이다.

 

 

 

<테넷>


<테넷>은 구성이나 진행 방식에서 여러모로 <인셉션>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많다. 하물며 OST마저 그렇다. 냉정하게 말하면 자기복제에 가까운 수준. 사실 <테넷>에서 가장 이해가 어려웠던 부분은 물리 이론이 아니라 주도자가 캣을 챙기는 내용인데, 중요한 작전을 망치고 자신을 위험에 빠트리면서까지 주도자가 캣을 챙는 걸 이해할만한 선행 서사가 없다. 하물며 주도자는 모든 작전이 끝난 이후에도 캣을 챙기는데, 이로써 가능한 추측은 15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 그와 관련된 내용이 편집된 게 아닐까, 하는 정도.

 

영화가 끝날 즈음이면 '닐'에 대한 무한한 호감이 생겨난다. 등짝스매싱이 아닐까 흐린눈으로 봤던 게 미안할 정도로 담백하고 깔끔하고 쿨한 캐릭터다. 어떤 점에선 닐이 주인공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악의 축이랄 수 있는 '미래 세력'이 대화로만 등장했고, 닐의 퇴장이 여운을 남기는 것으로 보아 속편을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는 닐에 대한 내 미련이고.

 

세계관으로 들어가면, 역행의 과정으로 회전문을 통과하는 방식이 신선했는데 엔트로피의 순행과 역행이라는 첨단 미래과학과 두꺼운 철회전문이라는 아날로그의 결합이 SF적 상상력의 한계처럼 보인달지 하여튼 소박한 상상력이 귀여웠다. 

 

<테넷> 개봉 직후 재미있다와 어렵다로 평이 갈린 것으로 아는데 눈으로 직접 확인한 <테넷>은 물리 이론에 기반한 세계관보단 감독의 편집이 감상을 어렵게 하는 주범이라는 생각. 교차편집도 헷갈리는 판에 한 장소에 두 장면이 동시에 진행되니 이야기를 쫓아가기도 급급해 장면 속 디테일을 번번이 놓치는 것이다. M에게 궁금한 장면에 대해 물어보다 결국 한 번 더 봤는데 두 번을 보니 비로소 한 장소에서 두 개 혹은 세 개의 사건이 동시에 벌어지는 장면과 놓쳤던 디테일이 눈에 들어온다. 굉장한 집중력과 매의 눈을 가진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테넷>은 가능한 두 번 이상 보는 걸 추천.

 

 

 

<인터스텔라>


<인터스텔라>는 엔지니어와 과학자가 드러내는 정서의 차이가 특히 재미있었다. 평소 나는 '믿음이 신념으로, 신념이 아집으로 변질되는 과정'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과학자와 광신도가 대동소이하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두 집단은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자신의 신념이 세계를 구할 것이라고 믿는 것이나,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것이나, 다른 의견은 받아들이지 않는 폐쇄적인 일념이나. 신이 그토록 강조하던 '나 말고 다른 신은 믿지 말라'던 그 다른 신은 과학일 수도 있고, 내 고집일 수도 있다. 불행히도 두 집단 모두 그 사실을 잊는 데서 비극이 발생한다.

 

물리 이론을 세계관으로 깔았지만 <인터스텔라>는 결국 가족영화다. 이는 놀란 감독이 일관되게 추구하는 정서이기도 한데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는 얼핏 <오디세이아>의 원형을 따르는 듯 보이기도 한다. 온갖 위험과 유혹과 싸우며 항해하는 모험의 최종 목적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는 것, 즉 귀향(=귀환)이다. 인류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새로운 행성을 찾기 위해 우주로 떠나는 쿠퍼의 최종 목적 또한 아이들 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쿠퍼가 과학자가 아니라 엔지니어로 설정된 건 당연해 보인다. 귀향 좌표를 '아이들'에게 찍은 쿠퍼의 의지는 쿠퍼에게 위기가 닥치고 선택의 순간이 올 때 빛을 발한다. 목표가 명확할 때 선택과 집중의 지혜는 의지를 배신하지 않는다. 

 

 

 

세계관


두 영화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물리이론을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인터스텔라>는 상대성이론에 양자이론을 얹었고, <테넷>은 양자이론 중 초공간(테세렉트Tesseract)으로 확장된 세계관을 배경에 깔았다. 더 간단히 정리하면 <인터스텔라>는 중력, <테넷>은 시공간에 관한 이야기다.

 

차원에 관하여 초간단 개념 정리를 해보면, 

1차원은 점과 점으로 이어진 , 2차원은 선과 선으로 이어진 , 3차원은 면과 면으로 이어진 공간, 4차원은 공간과 공간이 이어진 시공간이다. 같은 맥락으로 시공간과 시공간이 이어진 것이 초공간, 테세렉트인데 이를테면 우리 귀에 익숙한 '평행우주'는 초공간에 기반한 가설이다. 참고로 초공간 테세렉트는 마블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에도 등장한 바 있다.

 

 

 

시간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시간의 부인할 수 없는 1명제는 '순행'이다. 바로 과거→현재→미래로 진행하는 방향성인데 우리는 면과 면이 이어진 3차원 공간에서 순행하는 시간의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고, 매순간 현재의 나만 볼 수 있으며, 1초 전의 나와 1초 후의 나를 동시에 볼 수 없다. 쉽게 비유하자면 사진과 영화의 차이인데, 영화가 등장한 초기에 세간에선 영화를 '활동사진'이라고 불렀던 것이 시사하듯, 2차원인 사진 속 피사체가 공간에 점처럼 찍힌 정지상태라면 3차원인 영화속 피사체는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동하는 운동의 연속성이 가능해지고 동시에 시점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렇듯 3차원 존재로 만족하며 살던 우리에게 아인슈타인이 던진 돌멩이가 '상대성이론'이다. 내 손목의 시계와 네 손목의 시계는 똑같이 움직이는가(=시간이 똑같이 흐르는가)에 관하여 아인슈타인은 그렇지 않다고 증명했다. 시간이 공간의 이동으로 자연발생한 부수적인 산물이 아니라 공간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차원이며 시공간이라는 4차원 세계의 존재 가능성을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것이다. 점이 점으로 이어지고(1차원), 선이 선으로 이어지고(2차원), 공간이 공간으로 이어졌다면(3차원), 3차원 공간이 3차원 공간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 차원이 개입하여 이동한 것이 4차원이다. '타임머신'이 4차원 세계의 산물인 (기술적인)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예를 들었고 그중 '화덕 위에 앉은 1분과 미인과 함께 있는 1분은 다르다'를 나는 우스개로 자주 인용했는데, 정작 이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한 건 <인터스텔라>를 보고서였다. 사실 근래 양자물리학에 흥미를 느끼기 전까지 나는 시간과 중력의 관련성에 관하여 생각해본 적이 전혀 없다. 실은 아예 관심도 없었다. 거듭 고백하지만 나는 뼈와 살과 피가 문자로 이루어진 진성 문과형 인간이다.

 

 

 

중력


<인터스텔라>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핵심은 '중력'이다. 그러니까 블랙홀에 가까운 행성일수록 중력의 영향을 많이 받고 그에 따라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데 이는 중력의 영향을 덜 받는 행성과 중력의 영향을 많이 받는 행성의 시간이 다르게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중력을 이용하면 시간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가설이 생겨난다. 

 

<인터스텔라>에서 블랙홀로 뛰어든 쿠퍼가 다중공간의 한복판에서 과거 자신과 머피의 모습을 보는데 사실 이 부분은 내 이해 범위를 벗어난다. 이 장면은 4차원 시공간의 다음 차원인 초공간(테서렉트)을 구현한 것인데 M에게 설명을 들어도 잘 모르겠다. 

멘사 문제 중에 꼭 등장하는 유형이 펼쳐놓은 도형 도면에 찍힌 점이 도형을 완성했을 때 어디에 있는가, 혹은 도형에 찍힌 점이 도형 도면을 펼쳤을 때 어디에 있는가- 인데 내 경우 머리속으로 도형을 세 번쯤 접고 네 번째 접을라 치면 앞에 접어놓은 세 번이 실종되는 인간이라, 공간에 공간까지는 그럭저럭 따라갔대도 공간에 공간에 공간이 되면 어김없이 머리에 과부하가 온다. M이 늘 하는 말처럼 나는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이라 어쩔 수 없다. 그러니 이 부분은 좀 더 공부한 뒤에 훗날 첨삭하는 걸로...

 

 

 

순행과 역행


<테넷>의 줄거리는 간단히 요약하면 시간의 순행과 역행을 이용해 인류의 위기를 막는다는 내용이다. 

영화 초반 테넷 연구실에서 주도자가 테이블에 있던 총알을 건드리지 않고 손에 쥐었을 때 연구원은 네 입장에선 총알을 집은 것이지만 총알 입장에선 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사실상 <테넷>이 차용한 초공간 세계관을 압축한 대사라고 할 수 있다. 이어지는 '엔트로피의 방향을 바꾼다'는 보충 설명은 <테넷>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버전(Inversion)' 즉 물질이 움직이는 방향과 반응을 역변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테넷>의 세계관은 엄밀히 말하면 '시간의 역행' 보단 '물질의 에너지가 반응하는 방향과 속도를 반전시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고증에 관하여 놀란 감독의 집요한 작업 스타일을 봤을 때 <테넷>을 끌고가는 세계관 역시 관련 전문가의 자문을 넘치도록 받았을 거라고 짐작되지만 영화 매체의 특성상 세계관을 만든 이론을 러닝타임 내에 이야기에 모두 담기엔 여러모로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영화를 감상하는 입장에선 '저건 너무 나갔는데', '저건 좀 무리수 같은데' 싶은 설정이 몇 있다.

 

 

 

후기


이과 쪽은 문외한이라 영화를 보고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관련 영상이나 자료를 찾아보거나 M에게 물어보며 나름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는데 이 과정에서 깨달은 건 질문이 거듭될수록 질문의 내용이 근원적인 것으로 향하더라는 거다. M을 여러차례 귀찮게 하면서 질문할 때마다 앞에 꼭 덧붙이던 말은 '초딩 시각으로, 초딩 사고로 묻겠는데'였다. 이를테면 '중력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우주에 블랙홀은 몇 개나 존재하는가' 등.

 

M은 어차피 모두가 가정일 뿐이라고, 내게 '이론'에 지나치게 빠져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대개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건 '소수'라고 하는데 내 보기엔 '허수(虛數)'야말로 그렇지 않나 한다. 허수의 상상력이 없다면 그 수많은 풀리지 않는 문제를 어떻게 풀 수 있겠는가. 문명의 시작은 늘 보이지 않고 존재하지 않는 미지의 것을 상상하는 데서부터 도래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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