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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7176 bytes / 조회: 1,444 / 2022.01.27 01:28
[영상] [스포] 오징어 게임 (SQUID GAME, 2021)


넷플릭스 공개를 앞두고 이정재가 촌스러운 색의 츄리닝을 입고 펄쩍 뛰는 예고편이 나왔을 봤을 때만 해도 무슨 내용인가 했다. 예고편을 보고 내용을 짐작하는 게 용함. 사실 흥미가 있었다고 한들 이무렵은 물리적/정신적으로 여유가 없는 시기였기 때문에 어차피 못 봤을 거라... 

옛날처럼 본방 사수 안 하면 재방을 기다려야 하고 재방을 놓치면 영영 못 보는 시대는 아니니(생각해보면 유니콘 같은 그런 시절이 있었다) 드라마야 언제고 보면 되지만 불편한 점은 스포.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의 전파를 타고 세계적으로 대박을 친 드라마라 이 스포를 피하는 게 유독 더 힘들었다.

 

 

스포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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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아홉 편에 지나지 않는데도 엔딩까지 보는데 사흘 정도 걸렸다. 이유는 너무 잔인해서. 내 기준, 굉장히 폭력적이었다. 폭력과 살인 현장에 보호 장비 없이 노출되는 기분이라 연이어 보는 게 힘들었다. 

 

그리고 엔딩까지 시청한 감상은 'simple is the best'.

스포를 피해다니느라 사전 정보 없이 봤는데- 그래도 거대한 상금을 걸고 게임을 하고 게임에서 탈락하면 죽는 내용인 것 정도는 알고 봤다, 극을 지배하는 소재가 '게임'이니만큼 플롯이 다층적인 구조겠거니 예상했는데 의외로 스토리와 구성이 매우 단순하다. 그러니까 복잡하게 머리 굴릴 필요 없이 스토리가 진행되는 과정을 직관적으로 이해하면서 보면 된다. 아마 글로벌한 인기를 얻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모양이다. 문화, 언어, 인종, 가치관이 다른 나라의 얘기가 공감을 얻으려면 누구나 아는 내용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얘기해야 되는데 <오징어 게임>을 구성하는 플롯과 서술방식이 그에 부합한다.

 

그러니까 <오징어 게임>의 장점은 관객을 속여야 된다는 두뇌플레이 강박에 쓸데없이 꼬고 꼬다가 '짜잔- 속았지!' 하는, 제작진만 만족하는 뒤통수치는 클리셰가 없다. 정확히는 반전은 있는데 반전 떡밥은 단순하게 뿌리고, 깔끔하게 회수한다. 

 

한 예로, 갑자기 소식이 두절된 형을 찾다가 우연한 계기로 게임 현장에 잠입한 경찰이 역대 우승자 명단에서 형의 이름 '황인호'를 발견하는 장면. 이 장면을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건, 황인호는 그 거대한 상금을 차지하고도 왜 좁은 고시원에 처박혀 있었을까 라는 아주 당연한 의문이다. 그리고 이후 황인호의 정체가 드러났을 때, 우승자였던 황인호의 선택이 도식적이거나 신파로 느껴지지 않는 건 그때까지 드라마가 차근차근 쌓아올렸던 승자 독식 게임룰의 서사가 단단한 설득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른 참가자가 게임에 져서 탈락하면(죽으면) 그 참가자의 몫인 1억은 남은 참가자의 게임머니로 적립된다. 결국 게임의 최종 우승자가 손에 쥐는 돈은 다른 참가자의 목숨값이다. 이것이 게임에 참가하기 전과 게임에 참가한 후의 플레이어가 동일한 인간일 수 없는 이유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쌍문동 사는 성기훈이 게임을 하는 상대는 둘이라고 볼 수 있다. 첫째 다른 참가자, 둘째 'VIP'인데, 성기훈은 게임에서 이기면 게임에서 진 다른 참가자의 몫(=1억)을 자기 것으로 가질 수 있다. 그런데 그 몫을 주는 건 실제로는 게임에 진 참가자가 아니라 VIP다. VIP가 마지막 게임인 '오징어 게임'을 하는 성기훈과 상우를 내려다보는 구도는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을 연상시킨다. 승자든 패자든 VIP가 내려다보는 경기장 안에 있는 동안은 장기판 위의 장기말일 뿐이다. VIP가 게임에 직접 참여않는 이상에야. 그러므로 만약 시즌2가 정말 제작된다면 게임의 말은 VIP와 참가자일 수도 있겠다.

 

흥미로운 건 VIP와 참가자를 가르는 부조리가 주는 기시감인데 이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 드라마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한 장면을 꼽는다면 바로 초반 지하철에서 의문의 남자와 벌이던 '딱지치기' 장면이다. 베팅 머니가 없는 성기훈은 게임에서 지면 자신의 몸으로 때우고, 남자는 돈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한다. 내가 요런조런 문제로 고민할 때면 엄마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고민은 쉬운 고민'이라고 충고하는데, 따지고 보면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 죽을 때 놓고 가는 유일한 것이 제 한몸 몸뚱아리인데 그 몸을 건다는 건 정말 마지막 수단이라는 거다. 거대한 저금통에 쌓이는 지폐, 그 아래에서 자신의 몸(=목숨)을 걸고 게임을 하는 참가자들. 자본주의의 어두운 민낯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더 잔인한 건 참가자들은 원하면 언제든 게임을 그만 둘 수 있다는 룰 조항이다. 결국 참가자들은 그들에게 총을 겨누는 자들을 원망할 권리도 없다. 그럴 기회와 권리를 스스로 포기했으니까.

이상의 관점으로 본다면 5회 우승자 황진호는 다른 참가자들을 상대로는 이겼지만 VIP를 상대로는 졌다고 볼 수 있다. 같은 관점으로 집으로 돌아온 뒤 자신을 위해서는 우승 상금을 쓰지 않았던 쌍문동에서 사는 성기훈은 VIP를 상대로 이겼다고 볼 수 있겠고. 성기훈이 강새벽의 동생과 상우의 모친에게 건넨 돈은 말그대로 그들의 목숨값이니 그들 몫인 거다. 아마도 성기훈은 456억 중 제 몫은 1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타인의 목숨값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는 성기훈이야말로 자본주의의 희망이지 않을까, 그런 비약적인 결론이 <오징어 게임>을 본 감상이다.

 

참가자들은 이 게임의 룰이 승자독식인 걸 알았어도 게임에 참가했을까. 자신이 456분의 1이 될 확률에 목숨을 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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