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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8592 bytes / 조회: 1,604 / 2022.02.06 21:29
[영상] [TV] 품위있는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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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투숙객과 직원으로 우아진과 박복자가 처음 만나는 장면

 

 

요즘 <공작도시>를 재미있게 보고 있는데(미친 작가, 설이를 죽이다니ㅠㅠ) 유튭에서 관련 클립을 봤더니 추천 동영상에 드라마가 잔뜩 올라왔다. <품위있는 그녀>도 그중 하나인데 썸네일 제목에 끌려서 찔끔찔끔 보다가 결국 각잡고 전편을 감상했다.

 

 

:: 박복자의 욕망을 중심으로 본 <품위있는 그녀>

 

우아진은 기억 못하지만 박복자에겐 인생을 뒤흔드는 계기가 되는 둘의 첫 만남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계속 어긋난다. 우아진이 박복자를 보던가, 박복자가 우아진을 보던가.

 

박복자는 품위있는 우아진을 보며 자신도 돈 많은 사모님이 되면 우아진처럼 품위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박복자의 욕망의 정점은 '부자'가 아니라 '품위'에 있었던 거다. 그러나 사모님이 되고, 대주주가 되고 마침내는 막대한 돈을 손에 넣어도 그녀는 여전히 박지영이 아니라 박복자다. 박복자는 궁금하다. 어떻게 하면 우아진처럼 품위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무식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배움이 없어 아는 것이 없다'도 있지만 '행동이 세련되지 못하다'는 의미도 있다. 전자는 지식의 영역이고, 후자는 지성의 영역이다. 비유하자면 지식은 소프트웨어, 지성은 하드웨어인데 <품위있는 그녀>에 등장하는 상류사회 인물들 중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인물은 우아진이 유일하다. 하필 하고많은 '사모님'중 우아진이 박복자의 눈에 띈 건 박복자에게 행운과 악운을 동시에 가지고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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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인 미팅 때 박복자는 우아진에게 마티스보다 마네를 더 좋아하고, 몬드리안보다 칸딘스키를 더 좋아한다고 젠체하는데 이는 허세가 아니라 아마 사실일 거다. 비록 그림을 보는 사고의 저변은 얕을 지언정(배움이 모자란 그녀의 환경에선 당연하다) 박복자는 아마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관련 책도 읽고 그림도 열심히 봤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박복자가 우아진에게 '나를 우아진처럼 만들어달라'고 토해내듯 진심을 드러냈을 때 박복자의 욕망이 짠하고 몹시 가슴이 아팠다. '나를 부자로 만들어달라', '미인으로 만들어달라'고 했으면 박복자의 욕망은 흔한 관종에 지나지 않았겠으나 박복자가 원한 건 품위있는 사람, 즉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었기 때문.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건, 지금의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자기고백이다. 

 

이처럼 자기애가 강했던 박복자였지만 결국 '품위있는 그녀'가 되어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

 

라캉의 욕망이론을 빌리자면,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이라 착각하며 산다. 인간은 스스로 타인의 거울 앞에 서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그를 동력 삼아 때로는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 때로는 자신의 욕망을 발산한다. 그래본들 결국은 타자에 의해 학습된 욕망인데 어떤 인간은 이것 때문에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니 부조리랄지 비극이랄지... 

 

<이솝우화>에는 새들의 왕이 되고 싶었던 까마귀의 얘기가 있다. 새들의 왕을 뽑는다는 소식을 들은 까마귀는 온통 까만색인 제 깃털을 보며 낙담하지만 곧 꾀를 내어 다른 새들이 떨어뜨린 깃털을 주워 제 몸에 꽂는다. 그리고 새들 앞에서 화려한 깃털을 뽐내고 왕이 되지만 곧 제 깃털이 아닌 것이 들통나고 망신을 당한다. 

까마귀가 자신의 까만 깃털을 아름답게 여기고 자랑스러워했다면 비록 새들의 왕은 되지는 못했을지언정 조롱의 대상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뻘소리지만 박복자의 이름이 박복한 인생을 대변하듯, 까마귀는 이름조차도 '까맣다'. 이왕이면 이쁘고 귀한 이름을 지어주자. 

 

(뱀발_ 이 우화를 들은 M이 웃기는 새들이라고 비난했다. 지들이 버린 깃털을 까마귀가 주워서 뭘 하든 뭔 상관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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