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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97 bytes / 조회: 882 / 2022.04.03 23:22
감나무
[도서] 정지돈의 소설과 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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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한 건 아니고 도서관에 있는 정지돈의 책을 무작위로 모두 뽑아온 건데 산문, 장편소설, 단편소설집으로 우연히 구색이 골고루 갖추어졌다.

 

정지돈의 출간 책 모두를 읽은 것은 아니므로 이 글은 어쩌다 장르별로 골고루 읽은 소감임을 먼저 밝혀야겠다. 굳이 이런 사족을 앞세우는 이유는 공시적 관점에서 작가가 장편은 단편처럼, 단편은 에세이처럼 쓴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장편을 읽을 때 김연수의 소설을 같이 읽는 기시감을 느꼈다고 쓴 바 있는데, 흥미롭게도 단편 소설은 김영하의 소설을 떠올리면서 읽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기시감이라는 거지 언급된 작가들의 개성만큼이나 작가들의 글은 뚜렷한 차이가 있다. 부연하자면 장편 『모든 것은 영원했다』는 인물 중심 서사라면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는 사건 중심의 서사이고, 정지돈의 단편집이 산문과 소설의 경계가 희미하다면 김영하의 단편 소설은 어딜 봐도 '소설'의 구조와 형식을 충실하게 갖춘 차이가 있다.

 

산문과 경계가 희미한 정지돈의 단편소설을 읽는 길라잡이는 수록작과 동명이기도 한 「이 작품은 허구이며 사실과 유사한 지명이나 상황은 우연의 일치임을 밝힌다」가 딱이다. 실은 단편을 읽던 틈틈이 두세 번 소설에 언급된 대명사와 명사를 구글에 검색해봤다. 정지돈의 단편을 산문과 소설의 경계가 희미하다고 쓴 이유이다.

 

정지돈의 글을 읽은 두 번째 감상은 시인이 되고 싶었던 작가의 좌절과 이상이 행간에서 느껴진다는 거다. 작가의 냉소적인 글 투가 이런 감상을 부추긴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때로는 시무룩하고 때로는 예민한 작가의 감정적 굴곡의 종착지가 '여우의 신포도'라는 게 재미있다. 달리 말하면 좌절한 시인의 신포도를 듣는 기분이랄지. 물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감상이다. 

 

내가 제일 처음 읽은 정지돈의 책은 『영화와 시』인데 독서 초반에 어떤 기전도 없이 불쑥 '김영하의 중2 버전을 보는 느낌인데-' 했다. 결국 그 느낌은 장편과 단편소설을 읽는 동안에도 계속 이어진다.

 

단편소설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정지돈은 산문에 특화된 작가라는 거다. 마침 그의 신간은 산문이다. 도서관 책을 다 읽고 나면 책장에 꽂혀 있는 신간을 읽을 생각에 벌써부터 배부르다.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에서 눈에 쏙 들어왔던 문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인용이다.

 

 

독신 여성의 가장 큰 고충은 자신을 시집보내려는 사람들과 맞서는 것이다.

-헬렌 걸리 브라운 

-p.147, 「지하 싱글자의 수기」

 

 

헬렌 브라운의 인용으로 시작하는 「지하 싱글자의 수기」는 인구 절벽을 맞은 시대에 정부가 비혼주의자를 법으로 강제하고, 싱글인은 비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의 강제를 피해 지하로 숨어드는 내용을 다룬다. 

 

이 단편이 재미있었던 건 인구절벽을 이끄는 비혼주의자를 설득하기 위해 국가와 사회가 선택한 방식이 소설적 상상력을 벗어나 현실적으로 층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수긍했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인구절벽을 해결하기 위해 쏟아내는 각종 정부 지표와 유관 기관들의 분석과 해법들, 그러니까 '경제적인 문제로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이른바 '3포 세대'를 위해 내놓는 각종 정책들을 볼 때마다 저게 효과가 있을까, 회의를 느끼는 건 2022년 현재보다 더 가난하고 힘들고 어렵던 '해방 직후 - 88만원 세대' 시절 국가가 주도적으로 내세웠던 인구정책 구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는 용어 부터도 '산아제한' 이었다. 기왕 언급한 김에 그 시절 포스터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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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결혼하는데 너도 좀 해. 국가도 위하고 부모도 위하고. 이기적으로 혼자 살 생각 그만하고.

-p.148

 

 

그러니까 현대 사회의 비혼주의의 핵심은, 이기적으로 혼자 사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삶이 된 개인이 많아진 시대라는 거다. 다시 말해 외부의 강제적 통제가 아니고서는 이런 현상이 계속 심화될 거라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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