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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문(多聞), 다독(多讀), 다상량(多商量)

22585 bytes / 조회: 1,103 / 2022.11.27 17:08
[도서] 에바 일루즈 『사랑은 왜 불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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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왜 불안한가 하드 코어 로맨스와 에로티즘의 사회학 

에바 일루즈(저) ㅣ김희상 (역)

 

 


 

 

책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제목에 관해 짚고 넘어가야겠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 10여 년 전 서구권 서점가를 강타한 메가 셀러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시리즈(이하 통칭 '그레이 시리즈')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물음표가 점점 진해진다. 

도대체 '그레이 시리즈'와 '사랑이 불안한 이유'가 무슨 관련성이 있는가. 

 

그럼 이쯤에서 원제를 확인해보자. 

 

'Hard Core Romance: Fifty Shades of Grey, Best-Sellers, and Society'

(영: 하드 코어 로맨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베스트셀러, 그리고 사회)

 

'Die neue Liebesordnung, Frauen, Männer und Shades of Grey'

(독: 사랑의 새로운 질서, 여성, 그리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원문 제목이 가리키는 지침은 명백하다. 그러니까 이 책을 읽으려면 먼저 '그레이 시리즈'를 읽으라는 거지. 국내 번역본 제목에서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빠진 게 의도적인 건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행이랄지 나는 이 책을 1/4쯤 읽고서야 이 사실을 깨달았고, 1/3쯤 읽고서야 수긍했다. 


나는 활자 민감도가 0에 수렴하는 인간인지라 활자로 만들어진 텍스트는 뭐든 다 잘 읽지만 그럼에도 안 읽고 못 읽는 장르가 있다. 바로 팬픽과 라노벨이다. 둘 다 읽으려고 시도는 해봤는데 첫 줄에 나가떨어졌다. 혹시 몰라 몇 년 텀을 두고 두어 번 더 시도를 해봤는데 결과는 마찬가지. 어쩌겠나 항마력이 도저히 안받쳐주는 걸.


여하튼, 이런 이유로 내가 '트와일라잇 시리즈' 팬픽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그레이 시리즈'를 읽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하므로 위의 '수긍 단계'에 이르렀을 때 차선으로 영화를 봤다. 마침 은혜로운 넷플릭스에서 시리즈 중 1, 2편을 볼 수 있다. 3편은 예고편으로 충당.

 

영화와 소설의 싱크로율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지만 '엄마들 포르노(mommy porn)'라는 딱지가 붙은 소설의 상상력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기는 건 어려웠을 것이므로 생략된 행간은 알아서 이해했다. 

다만 좀 어이가 없었던 건, 소설이 주구장창 묘사했던 BDSM을 영상으로 모두 재현할 수 없으니 대신 대사로나마 분위기를 표현하려고 한 것 같은데 한글 자막이 그걸 죄다 순한맛으로 바꿔놨다. 상스럽고 천박하고 거친 대사가 상식적이고 보편적인 자막으로 변신할 때마다 '어이구 저런-'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더티토크(dirty talk)도 분명 섹스를 다채롭게 하는 한 요소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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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시리즈'를 모르는 독자를 위해 에바 일루즈가 친절하게 요약한 줄거리를 보자.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는 우리를 전혀 다른 규범의 영역으로 이끈다. 이 3부작 소설은 섹스의 신천지인 미국의 서부 해안, 곧 시애틀과 포틀랜드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화자는 소설 초반만 해도 처녀였던 여대생이다. 이 처녀는 대단히 매력적이고 재산이 많으며 거침없이 성공가도를 달리는 청년을 알게 된다. 그녀는 난생처름 강렬한 성적 욕구를 느끼며 이 독특한 남자에게서 정말 기이한 섹스 파트너를 발견한다. 이 남자는 정말이지 다른 사내들과 확연히 달랐다. 그는 자신이 제시한 계약조건을 수락해야만 관계를 맺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계약은 여자에게 남자의 '서브'가 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 결박당한 채 때리는 매를 고스란히 맞아야 하며, 그가 지켜보는 앞에서는 눈길을 다소곳이 아래로 깔고, 정확히 남자가 지시한 만큼만 잠을 자며, 옷과 음식도 남자가 골라주는 것만 입고 먹어야 했다. 게다가 침묵 서약이라는 것도 요구했다. 누구에게도 이들의 관계가 어떤 성격인지 알려서는 안 된다는 조건이다.

 

p.11 『사랑은 왜 불안한가』

 

 

『사랑은 왜 불안한가』는 인용 출처를 제외하면 역자의 말을 포함해도 118페이지 밖에 안 된다. 그러나 이 얇은 책은 각잡고 읽었음에도 완독하는데 이틀이나 걸렸는데 이유는 방지턱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한 페이지 안에서도 몇 번씩 방지턱을 만나니 독서가 느려질 수밖에.

 

게다가 인용출처만도 24페이지에 달하고 그 인용출처도 대부분 학술지나 논문인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은 단순히 사회학 분야 인문서가 아니라 학술지 페이퍼(논문)에 가깝다. 한마디로 현학적인 서술이 많아 페이지가 술술 쉽게 넘어가는 책은 아니라는 의미.

 

책을 읽는 동안 다양한 의문이 수시로 떠올랐는데 메모를 따로 안 했더니 거의 잊어버렸고, 그중 기억에 남아 있는 의문 몇 개를 꺼내보자면,


1. '그레이 시리즈'의 흥행으로 

소설에 등장했던 성인용품 - 노끈, 눈가리개, 채찍, 수갑, 벤와 구슬 등의 매출이 껑충 뛰었다고 하는데 관련 마켓의 피셜에 의하면 성인용품 매출을 올려준 일등공신은 여성이라고 한다. 당연히 그렇겠지. 소설의 소비가 (일종의) 굿즈 소비로 이어진 거니까. 여기서 내가 궁금한 건 성인용품을 구입한 여성들은 과연 그것들을 사용했을까, 라는 것. 남성 소비자면 당연히 사용했겠지 싶은데 여성 소비자라니 궁금해지는 거다. 플레이를 하려면 당연히 상대의 동의와 협조가 있어야 되는데 그정도 성적교감이 가능하고 능동적인 여성의 파트너라면 여성이 구입하기 이전에 남성 파트너가 이미 먼저 구입하지 않았을까.

 

1-1. 확언하건대

소설과 영화를 보고 성인용품을 사들인 여성들 중 아마 대다수가 소설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당연하다. 야동이 남성들의 판타지라면 로설은 여성의 판타지이므로. 분명한 건 SM을 제대로 즐기려면 고도의 학습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현실이다. 그들이 괜히 파트너 계약서를 쓰고 세이프워드를 설정하겠는가. 블록버스터 흥행 후 가장 많이 파지 접수된 책이라는 불명예의 왕관을 쓴 데는 아마 이런 실망이 한 몫 했을지도...


2. 저자에 의하면, 

'오늘날 미국 인구의 5~10퍼센트의 사람들이 사도마조히즘 섹스를 경험했다고 한다.' (p.98)

라는데 해당 통계 결과에 오잉? 한 건 나뿐인가. 통계 자료를 볼 수 없으니 질문의 유형과 응답자의 배경을 알 수는 없지만 저 수치를 통해 적어도 S/M의 범위를 아주 협소하고 완고하게 제시했을 거라는 추측은 가능하다. 'BDSM(구속하고 조련하고 때리고 맞는)의 기저는 한마디로 구속(통제)과 복종(굴종, 순종)이다. 이렇게 정의만 보면 뭔가 굉장히 변태적이고 이상성욕인 것 같지만 실상 BDSM은 수위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 주변 일상에도 흔하게 존재한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가학 성향과 피학 성향을 모두 갖고 있다는 에리히 프롬의 진단(『사랑의 기술』)을 상기하자.

 

역시 에리히 프롬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담과 이브는 신에게 불복종하므로써 수치와 부끄러움에 눈을 떴는데', 이 내용은 그레이가 자신의 플레이룸에서 아나의 옷을 벗길 때 아나를 설득하면서 했던 대사 '복종하면 부끄럽지 않다'로 고스란히 재현된다. 

 

문제는 BDSM을 이상 성향으로 못 박고 지나치게 협소한 의미로 해석하는 부분이다. 이를테면, 영희에게 짧은 치마를 못 입게 하는 철수를 보자. 이때 영희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인데, 철수의 간섭이 기꺼운 영희도 있을 거고, 싫은 영희도 있을 거고. 철수의 간섭이 기꺼우면 계속 사귀는 거고, 싫으면 헤어질 거고. 이런 예는 주변 일상에 숱하게 많다. 상대의 스마트폰 비번을 공유하려고 하는 거나, 통금 시간을 강제하거나, 상대의 일상을 시시콜콜 알기를 원하는 거나. 언급했듯이 다만 수위의 차이일 뿐이지 광의로 보면 피학/가학에 포함된다.

 

그럼 크리스천 그레이는 어떤가. 성적욕구를 BDSM을 통해 해소하는 그레이는 파트너 적임자를 찾으면 도미넌트/서브미시브(Domination/Subssion) 계약을 맺는데 계약서는 굉장히 상세한 항목으로 채워져 있으며 파트너 당사자인 두 사람이 모두 합의해야 계약이 성립된다.

 

그러니까 그레이와 아나, 철수와 영희의 공통점은 파트너의 의지에 개입하려면 두 사람이 '합의한 관계'여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는 거다. 일단 합의 후에 룰을 어기면 당연히 계약은 파기되는/헤어지는 거고.

 

3. '2'에 덧붙여,

저자는 '섹스를 다루는 대중문화야말로 서구 사회가 가장 자주 검열하고 감시하는 대상'(p.92)이라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렇다면 도대체 왜 여성은 자청해 아픔을 감당하는 마조히스트를 그린 소설을 좋아할까?'(p.93) 묻는다. 저자의 이런 역설적인 태도는 정부와 사회가 개인의 섹스를 검열하고 감시하는 건 이상하고, 사회학자가 개인의 섹스 취향을 분석하고 해석하는 건 당연한가 반문하게 한다. 

BDSM의 핵심은 '역할(role)'과 '플레이(play)'인데 그러니까 그런 취향도 있는 것이다. 때리면서 흥분할 수도 있고 맞으면서 흥분할 수도 있는 거고, 보면서 흥분할 수도 있고 보여주면서 흥분할 수도 있는 거고. 입맛이 다르듯 섹스 취향이 다를 수도 있지. 애초에 개인의 동의 없이 사회가 일방적으로 규정한 정상/비정상의 기준을 개인의 침실에 들이대는 게 오히려 연구대상이지 않나.

 

4. 솔직히

'그레이 시리즈'를 BDSM으로 분류하는 건 소설의 흥행을 발판삼아 19금 산업에서 돈을 쓸어모으겠다는 자본주의 논리를 감안하더라도 이건 너무 뻔뻔하고 염치가 없지 않은가 한다. 아마도 실제 돔/서브 성향자들이 소설이나 영화를 봤다면 조롱하거나 최소 비웃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를 의식한 건지는 몰라도 그레이와 아나의 입을 통해 '바닐라'가 반복되고, 그레이는 아예 자신은 도미넌트가 아니라 사디스트라고 고백하기도 한다. 

소설은 안 읽어서 모르겠으나 실제로 영화 속 그레이는 도무지 도미넌트로 보이지 않는다. 엄마 친구 엘레나의 서브미시브를 6년이나 했다는 과거 서사도 그렇고, 그저 유년시절 친부모의 학대와 방치로 입은 분노와 상처가 해갈이 안 된 덜 자란 영혼이지. 정체성이 불분명한 그레이의 포지션은 아나와의 관계가 진전될수록 점점 더 죽도 밥도 아닌 것이 된다. 달리 말하면 돈 많고 잘생기고 매력 넘치는데 유년시절의 상처로 특이한 성적취향을 가지게 된 흔한 로맨스소설의 주인공이 된다. 첨언하자면 '그레이 시리즈'는 로맨스소설답게 신데렐라 스토리이기도 하지만 그레이의 '그림자' 때문에 '미녀와 야수'의 변주도 보인다.

 

5. 마지막으로

BDSM 플레이에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을 돔(주인님)과 서브(노예)로 고정시키고 정신병리학과 페미니즘의 관점을 오가며 논리를 전개하는 접근법은 주제의 신뢰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어떤 주제에 관하여 인과를 분석하고 해석하고 결론을 낼 때는 그 결론이 보편성을 담보해야 하는데 이 책의 논지라면 간단한 예로 여성 돔과 남성 서브는 어떻게 해석할 것이며, 동성간 돔/서브는 또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을 빌리면 '사도마조히즘은 준비되고, 기획되고, 동의된 대단히 '지적'인 섹스(『혼자서 본 영화』 p.057)'인 것이다.

 

6. 영화 얘기를 해보자면

영화를 보는 내내 애드리안 라인의 <나인하프위크>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는데 두 영화가 비슷하다는 얘기가 아니라 '미키 루크가 정말 섹시하고 치명적이었지' 아련했다는 얘기다. 애드리안 라인은 지금껏 내가 봤던 영화 바운더리 내에서 비오는 배경을 가장 아름답고 섬세하게 찍는 감독이고. 

주제나 소재 모두 딱 애드리안 라인의 취향이라는 생각이 들어선지 '그레이 시리즈'를 애드리안 라인이 찍었다면 어떤 그림이 나왔을까 호기심과 아쉬움이 남는다. 재미있는 건 시리즈 2편 '심연(Darker)'에서 드디어 엘레나가 등장하는데 하필 킴 베이싱어였다는 거다. 인지상정이라고 이 장르의 티오피는 역시 <나인하프위크>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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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보자.

 

여성도 포르노를 소비할 수 있다. 성적 취향을 선택할 수 있으며 그 속에서 주인님이 될 수도 있고 노예가 될 수도 있다. 성적 취향이 서브미시브라고 '너는 가부장제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미개한 여성이야'라고 비난받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누구에겐 직장인보다 가사노동이 더 좋을 수도 있고, 경력 단절보다 육아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선택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몫이다. 머리를 기르고 싶으면 기르는 거고, 치마를 입고 싶으면 입는 거고. '운동'의 본질이 원래 다함께 차차차이긴 하나 그것도 지향점이 같은 경우에나 해당하는 거지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머리를 자르고, 코르셋을 벗고 페미니즘을 실현하라고 강제해서는 안 된다. 도대체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한가.

 

현대 페미니즘의 가장 큰 문제는 여성운동가들의 구호가 정작 여성들로부터 그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지지와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거다. 

애초에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해방'을 기치에 걸었는데 여성의 지위와 권리와 처우에 대한 국가(혹은 사회)의 차별과 억압에 맞서 사회적 불평등을 깨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운동의 방향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여성'에 함몰되는 오류를 저지른다. 서구 사회의 예를 보자. 영화 <히든 피겨스>가 훌륭한 전범인데, 반 세기 전만 해도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자격으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잊지말아야 할 건 이것이 여성에게만 국한됐던 차별이 아니라는 거다.

민주주의 시스템의 대표 주자라고 하는 미국조차도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됐을 때 여성보다 흑인이 빨랐다는 논평이 나왔을 정도로 여성과 흑인(유색인종)은 WASP에 의해 오랫동안 차별과 불평등의 불모지에서 견뎌야 했다. 요는, '여성'이어서 차별받은 게 아니라 사회적 약자, 소외층이었기 때문에 차별받은 것이다. 문화적, 역사적 배경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차별 구조는 서구나 동양이나 비슷하다. 그러니 여성운동가들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고립을 버리고 이제라도 '연대'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뭐 거기도 이전투구의 장이 된 지 오래라 요원해 보이지만.


몇 달 전, 에바 일루즈의 책을 일괄 주문하려다 개인적으로 기피 요소가 있어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기로 하고 대표작이라고 하는 『사랑은 왜 아픈가』만 주문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라고 『사랑은 왜 아픈가』의 원문 제목을 찾아보니 다행히 직역이다. 쓰면서 느낀 건데 아마도 연작 기분으로 '사랑은 왜 불안한가'라는 제목이 나온 모양.


한 호흡에 읽지 않으면 좌뇌로 들어와서 우뇌로 빠져나가는 책이 있다. 이럴 땐 책을 손에서 안 놓고 읽는 것도 한 방법.


섹스는 "누구와는 자도 되고,누구와는 자면 안 되는가" 하는 물음의 답이기 때문이다. 

-p.51, 『사랑은 왜 불안한가』

 

 

지금껏 봐온 '섹스'의 정의 중 가장 명쾌하다.

서글프지만 양성의 지위와 역할에 상전벽해가 몇 번이 지나갔든 섹스가 '남성에겐 연애, 여성에겐 사랑'인 건 여전히 유효한 명제인가 보다.

 

 

잡솔_

 

책을 읽고 S와 '야설'에 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그레이 시리즈'를 소프트 포르노라고 명명하던데 생각해보니 미국에선 '야설'을 본 기억이 없다. 그렇다고 야설이 없지는 않을 텐데, 어쨌든 내가 접하지 못한 걸 보면 그 나라 방식의 음지문화였을 가능성이 크다. 반면 성인용품점이야 쇼핑몰에 가면 널렸는데, 생각해 보면 우리나라는 성인용품점은 보기 어렵지만 야설은 소위 '선데이 서울'을 위시한 찌라시 연재부터 PC통신 시절 음지 동인문화를 거쳐 현재는 전자책 플랫폼의 효자상품으로 당당히 등극하기까지 역사가 유구하다. 

문화의 갭이랄지, BDSM은 고사하고 온갖 '필리아(-philia)'로 무장한 이상성욕과 도착증이 음지문화 판을 갈아치운지 오래인 작금에 파트너간 합의된 본디지 플레이가 좀 등장했다고 '그레이 시리즈'가 서구 사회에서 블록버스터를 터뜨린 배경이 좀 애잔한 것도 같고. 

유교는 종교인가 사상인가 논쟁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금병매의 중국을 위시한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까지 동양이 교황청과 청교도 혁명의 역사를 가진 서구보다 음지문화를 더 적극적으로 즐겨온 것을 보면 역시 성(性)윤리의 최고봉은 종교인가 싶고.

누누이 주장하지만 19금의 정의를 바꿔야 한다. 랜선으로 못 가는 곳이 없는 웹시스템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십대가 성인전용이라고 못 뚫는 것도 아니고 온갖 19금, 25금 웹툰/웹소설 서브컬처로 무장한 요즘 10대들의 성 지식과 정보는 아마 전 세대 중 가장 해박(?)할 거다. 그런 시대에 '교복 착장은 음란물'이라니 그야말로 탁상행정의 끝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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