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선생님이 지병으로 별세하셨어요.
동친과 얘기하다가 그만 울컥했습니다. 어차피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의 삶인데 그냥 그 분이 지나온 세월이 안타까웠어요.
전 신영복 선생님의『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하, '감사')을 대학 신입생 때 읽었습니다. 동방에서 동기들이 '감사', '감사' 하길래 뭔가 했더니 이 책이었어요. 이 책이 동방 신입생들 사이에 때아닌 필독서가 된 건 한 동방 선배 때문이었어요. 문청이었던 그 선배가 대동제 뒷풀이에서 감사에 등장하는 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는데 어린 마음에 참 귀에 착착 감겼던거죠. 바로 겨울과 여름,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교도소에서 인간의 체온에 대해 느끼는 상반된 감정에 대한 얘기입니다. 유명한 에피소드죠.
사실 전 이 에피소드도 좋았지만, 그래서 책을 읽지 않은 친구들에게 이 책을 추천할 때 반드시 들려주는 에피소드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인상이 깊었던 건 저자의 쓰기에 대한 열망이었어요. 교도소엔 종이가 귀했고 지면을 구하지 못한 저자는 나중에는 낙엽을 주워 앞뒤로 빼곡하게 씁니다. 이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쓴다는 행위, 넓은 의미로 '기록'은 어쩌면 인간의 제 4의 욕구가 아닐까 싶었어요.
가끔 시대의 불운과 역사는 개인의 삶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당장 밥상에 올라오는 한 끼 반찬조차 정치적 산물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광장 민주주의를 보면서 그런 생각도 들어요.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지 않나, 모른 척 하는 게 낫지 않나 하는.
개그맨 전유성씨의 책 중에『조금 비겁하면 인생이 즐겁다』는 제목이 있어요. 예전에 지하철에서 불의한 장면을 목격한 제 소울메이트 K가 상황을 외면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자신이 비겁하다고 느꼈다는 얘기를 할 때,『조금 비겁하면...』책 얘기를 들려주었어요. 책 내용 중에 비슷한 사례가 등장하거든요. 그때도 지금도 같은 얘기가 나온다면 제 대꾸는 같습니다. "난 네가 비겁하다고 생각 안 해." 이건 이거, 저건 저거 단순하게 살기엔 세상이 너무 복잡하죠.
한 개인과 마주 선다는 건 그 개인이 걸어온 삶과 마주 서는 것과 같습니다. 시대가 낳은 비극의 증인이 또 한 분 가셨지만 현재진행중인 역사는 오히려 과거회귀, 뒷걸음질 치는 모양새라 고인의 소식이 더욱 마음이 아픈 건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