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나무 덧 : 읽기 편하게 엔터 편집했어요. 그리고 구분을 위해 원문과 세 출판사의 번역문은 박스 처리했습니다.)
[새움출판사 블로그에 게시된 글]
선입관을 버리고 아래 문장을 한 번 보자.
"You used me, you used me. I'll teach you to use me."
영어 문장은 “너는 나를 이용해 먹었어.나를 이용해 먹었다구. 나를 이용해 먹었으니 가르쳐주지.” 정도?
이걸 역자는
(그럴 리가 없겠지만 역자는 manque를 moquer(골리다, 조롱하다)로 잘못 본 건 아닐까?).
같은 사람이 같은 상황에서 하는 말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르게 옮길 수 있을까? 역자는 그 말을 하는 화자의 어투는 딱 저래야만 한다고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 치사하고 악랄해 보이는…… 그래서 옮긴이는 화자가 하는 말마다 위에처럼 원본에는 있지도 않은 욕설(이년, 저년, 네년)을 친절하게 담아내고 있다.
어투를 통해 그 사람의 성격이며 배경 등을 드러내는 것은 문학의 기본인데, 옮긴이는 그런 상식에 충실하려 한 모양이다. 그러나 문제는 화자가 원래 그렇게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는 데 있다.
...
그런데 이러한 선학의 오해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학자로서나 번역가로서 대한민국 최고의 엄지로 추켜지는 선학이기에 그분이 잘못 끼워놓은 단추는 이후 나온 그 숱한 중역본들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열린책들 이방인 김예령 역. 앞서 레몽의 주먹다짐에 각개목까지 등장시킨다. 옮긴이의 분노가 느껴진다.)
가 날 골탕 먹였어. 네가 날 골탕 먹였다고. 골탕 먹이는 게 뭔지 내가 제대로 가르쳐주지.
(시공사 이방인 최수철 역, 앞서 누군가 댓글에 이분의 번역은 어떠냐고 물어서 책을 구해보았다. 보고 있는 대로이다.)
니가 날 우습게 봤어. 니가 날 우습게 봤어. 내 생각이 간절하도록 만들어주지.
(문학동네 이인 이기연 역.이분은 정말 원본을 가지고 하긴 한 걸까?의역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
정말 이래 놓고 보니, “설마 저 쟁쟁한 학자들이 전부 틀리고 당신만 맞다는 것이냐?” 의심스러울 게 당연한데, 이쯤 되고 보니 정말 나도 흔들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정말 그 외부적 포장들은 다 걷어버리고 눈앞의 문장만을 보라. 거기에 진실이 있는 것이다.
[문학동네 발행 <이인> 번역가 이기언 선생님의 답변]
원문은 이렇습니다.
"Tu m'as manque, tu m'as manque. Je vais t'apprendre a me manquer."
manquer 동사에는 여러가지 용법이 있는데, 간접타동사 manquer a qn의 의미는 "... 를 우습게 보다/소홀히 대하다"의 뜻이고,
자동사 manquer 에는 "Tu me manques"(네가 그립다. 네가 보고 싶다)에서처럼
"몹시 그립다, 보고 싶다, 간절하게 생각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카뮈가 두 가지 용법을 써서 일종의 말놀이를 한 것인데,
앞의 "Tu m'as manque"는 간접타동사이고,
뒤의 "Je vais t'apprendre a me manquer"는 자동사로 쓴 것입니다.
(이 네이버 댓글에서는 불어의 악센트 지원이 안 되네요. 정확한 불어 악센트까지 확인하시려면, 새움출판사 블로그 http://saeumbook.tistory.com/332 에 들어가보세요. 거기에도 댓글을 달았습니다.)
[문학동네 답변에 대한 새움편집부의 답글입니다]
새움지기 2013/09/24 17:22
새움편집부입니다. 의미있는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상당히 까다로웠던 부분인데, 그래서 김화영님도 저렇게 뜬금없이 번역을 해두셨겠지만, 이 문장만 떼내어서보면 이기언 선생님의 번역이 옳은 것같다고 하십니다. 다만 이기언 선생님의 번역은 전체적으로 너무 의역이 심한 게 아니냐는 말씀이셨다고 합니다. 제대로된 번역서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이니 앞으로도 조언을 부탁드린다고 전해달라 하십니다. 고맙습니다.
[위 새움편집부의 답글에 대하여]
맨 위의 게시글에서, “(문학동네 이인 이기언 역. 이분은 정말 원본을 가지고 하긴 한 걸까? 의역이 심해도 너무 심하다)”고 단언한 것에 대해 “이 문장만 떼내어서 보면 이기언 선생님의 번역이 옳은 것 같다고 하십니다”라고 말하는 게 타당한지 모르겠군요. “이분은 정말 원본을 가지고 하긴 한 걸까?”라며 비아냥으로까지 느껴지는 잘못된 지적에 대해 어떤 사과도 없이 말입니다. 그러고는 다시 “다만 이기언 선생님의 번역은 전체적으로 너무 의역이 심한 게 아니냐는 말씀이셨다고 합니다”라니요.
가전제품 사용설명서 번역이라면 모르되 문학작품의 번역은 번역가의 주관적인 작품 해석을 거쳐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문학작품에서는 여러 번역본이 각기 의미 있게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움출판사의 판본도 그 여러 번역본 중에 하나로 의미 있게 출간되기를 바랍니다. 카뮈의 <이인(혹은 이방인)>에 관한 한 “제대로 된 번역서”는 이미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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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뱀발_
해당 페이지를 읽어 보면 새움의 역자는 김화영 뿐 아니라 기존 번역자 모두에게 '번역오류'의 책임을 묻고 있습니다.
여튼, 책이 드디어 출간됐는데 역자(이정서. 필명)가 해당 문장을 최종적으로 어떻게 번역했을지 궁금하네요.
번역은, 정답이 없죠. 당연한 얘기지만 '내 번역이 최고'라고 할 수도 없는 거고. 이유는 '기술'만으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인데, 구글번역기가 여전히 사전 기능에 머물고 있는 현실이 그 단적인 예죠.
하지만 기존의 번역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번역, 새로운 시도는 긍정적인 현상이고 또 응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저토록 공격적이고 날을 세울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책이 나오고, 사람들에게 읽히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논의의 장이 형성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