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가냐니까"
"들키러요"
"너는 나를 정말 좋아하나 봐"
"네"
"지독하게 사랑하나 봐"
"네!"
"그래서 쫄지도 않나 봐"
"다 됐고... 그냥 내 기집애 해요"
"나 잊어도 돼. 너는 어쩌다 나한테 와서 할 일을 다 했어. 사랑해줬고... 다 뺏기게 해줬고...
그래서 고마워. 그냥 떠나도 돼"
"집 비워 두고 어딜 가요. 1년이 될 지 10년이 될 진 모르지만 그래도 같이 한 번 살아는 봐야죠.
그런 것도 안 해보고 헤어지면 너무 아깝잖아요"
"이 곡은 치는 게 아니라 만지는 거래요
음표가 전부 2770개 쯤이고요, 그 중에 겹화음이 500개 쯤 더 되나...
나는 매일 당신을 그렇게 만져요
언제나... 겁나 섹시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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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해서;;; 15, 16회만 먼저 봤어요.
위 대사는 15회, 16회에 등장하는 혜원과 선재의 대화예요. 작가님 연세가 환갑인 걸로 아는데 어쩜 저런 대사를 쓸까 감탄스럽습니다.
매 회 그렇지만 결말에 대한 불안으로 가슴을 졸이면서 본 탓인지 마지막 두 회의 여운이 특히 길어서 대사를 메모해봤어요.
수인복을 입고 감옥 뜰에 앉아 미소 짓는 혜원을 비추던 따뜻한 햇살이 그대로 선재의 방으로 옮겨와 비추는 마지막 장면은 두 사람의 앞날도 따뜻할 거라는 결말의 암시라고, 저는 그렇게 믿고 싶어요.
사실 소재만 놓고 보면 시청자 입장에서 주인공의 불륜을 다루는 드라마는 살인범이 주인공인 영화를 보는 것 만큼이나 주인공을 응원해야 하는가- 라는 도덕적인 딜레마를 안고 시청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다행히 <밀회>는 이런 도덕적 딜레마가 극중에서 치열하게 갈등하는 혜원과 선재의 몫이었고(일종의 작가님의 배려라고 생각해요) 덕분에 보다 유연하게 드라마를 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레이먼드 챈들러의「어느 시대 어느 때건 가장 좋은 소설은 언어로 마법을 부리는 소설이다. 소재는 단지 작가가 상상력을 풀어놓을 도약판에 지나지 않는다」('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나')에서 '소설'은 '드라마'로, '언어'는 '대사'로 치환한다면, <밀회>는 오랜만에 대사의 마법을 만끽한 드라마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