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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5609 bytes / 조회: 974 / ????.10.07 04:56
더불어 살기



- 새벽에 배는 출출하고 밥을 먹는 건 부담스럽고 해서 냉장고를 뒤져 찾아낸 간식거리입니다.






도서관에서 대출해 온 책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과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입니다.
<세설>의 첫인상(잠깐 훑어 본 것이지만)은 제인 오스틴의 소설, 그러니까 '거실문학'을 떠올리게 했는데 '죽지 않았다면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거라는'(출판사 설명) 작가는 일본 근대 소설가입니다. 먼저 읽고 있던 일본 소설이 있어서 고민이 좀 있었는데 새 책의 유혹에 굴복하여 집어 왔어요.
조이스의 책은 두께와 크기가 장난이 아닙니다. 크기 비교가 될까 해서 연필을 책 옆에 뒀지만 가로x세로는 A4 용지 정도 되고 1300여 페이지 되니 두께도 어지간합니다. 저걸 들고 오면서 "내가 미쳤구나" 소리를 몇 번이나 했는지. 책이 무거우니 여느 책처럼 손에 들고 읽는 것은 불가능하여 얼마전에 거실에 펼쳐 놓은 상 위에 놓아두고 왔다 갔다 하면서 조금씩 읽고 있어요.
음, 그런데 20년 만에 재출간했다는 책에 문제가 좀 있습니다. 주석이 있다는 표시만 있고 정작 중요한 주석은 온데 간데 없는 데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벌써부터 등장하는 오타 때문에 안타깝습니다.
<율리시스>는 지금껏 주석이 있는 책을 읽으면서 안 했던 고민을 하게 합니다. 예를 들면 같은 책에 등장하는 '그는 검은 표범에 관해 밤새 헛소리를 해댔다'는 부분인데, '검은 표범(black panther)'은 중세우화에 등장하는 동물로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즉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는 의미가 되지요. 조이스의 소설은 이런 상징들과 은유가 가득하기 때문에 그들의 문화권이 낯선 독서가에겐 책을 이해하기 위하여 주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됩니다. 아직 나한테는 무리였나 싶기도 하고. 벌써부터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비관적인 생각이 듭니다. 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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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어수선한 10월입니다. 그래서인지 이제 일주일이 지나고 있는데 훨씬 더 지난 것처럼 느껴집니다.
최근 영화로도 개봉한 만화『20세기 소년』의 원작자인 우라사와 나오키의 대표작『몬스터 MONSTER』에는 이름을 갖고 싶어 길을 떠난 괴물이 "날 봐, 내 안의 괴물이 이렇게 자랐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누구나 자기 안에 작은 괴물을 한둘쯤 가지고 있을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 괴물을 키우는 건 '누구나'가 아니라고 믿고 싶어요. 경계의 이쪽과 저쪽은 매우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 경계라는 것은 사상누각과도 같아서 호기심에, 그냥, 어쩌다 보니 자꾸 넘나들다 보면 어느 순간 사라지고 없을지도 모릅니다. 지킬 것은 지키는 마음이 아쉬운 요즘입니다.

나도 어떤 밭에서는 잡초일 테지

(중략)
이 세상에는 내가 싫어하는 인간들, 내가 미워하는 인간들이 꽤 있다. 내 짐작 같으면, 금방 주저앉을 것 같은데, 금방 내려앉을 것 같은데, 그들 중 몇몇은 승승장구를 거듭한다. 참 이상한 일도 다 있지. 나의 판단에 따르면 그들은 주저앉게 되어 있는데, 내려앉게 되어 있는데…… 참 이상도 하지…….
활 쏘는 사람들이 금과옥조로 삼는다는 말 한 마디, 수십 년 내 염두를 떠나지 않는 말 한 마디.
「세 번 쏘았는데도 과녁에 맞지 않으면 활 쏘는 나의 자세를 살핀다.」
어떤 사물에 대한 나의 좋은 감정, 싫은 감정은 <나의 호오>일 뿐이다. 그런데 내 감정이라는 것이 늘 바르게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잘 훈련되어 있지 않을 경우 감정은 매우 감정적이다. 그르게 작용하는 경우가 더 잦다. 채소를 잡초로 여기고 맹렬한 적의를 품는 일이 왜 없겠는가?
어떤 밭에서는 나도 필시 잡초일 터이다.

- p.222, 이윤기,『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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