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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6361 bytes / 조회: 836 / ????.12.16 23:20
책장 정리하기


요즘 집청소를 하느라 그야말로 집을 들어 엎어서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동안 보이는 곳만 건성건성 대충 청소하고 살았는데 새해를 앞두고 심기일전 하고자 마음 단단히 먹고...는 아니고 실은 이번에 귀국할 때 엄마가 동행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청소를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ㅜ.ㅜ
- 이 와중에 발견한 책상 서랍 아래 흠집 자국. 그만 억장이 무너졌다.
그러나 청소 계획을 세운지 두어 달, 청소에 돌입한지 2주째지만 아직도 첩첩산중이다. --;;;
청소라면 웬만한 주부님을 능가하는 내공을 가진 B에게 하소연 했는데 역시 '버리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일단 내 손에 들어온 물건은 애지중지, 웬만해선 안 버리고 끝까지 함께 가는 의리, 나쁘게 말하면 x고집이 있다. 이런 나를 아는 B양은 <버리는 기술>(다츠미 나기사, 이레출판)을 읽어보라고 했지만 글쎄, 버리는 것 정도는 스스로 하고 싶단 말이오... ㅜ.ㅡ
결국 마음 독하게 먹고 '버리기'에 돌입한지 며칠, 여전히 엉망진창이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질서가 잡히고 정리가 진전을 보이는 것 같다.

어제는(어젯밤 ~ 오늘 새벽) 몇 달 전에 팔을 걷어 부쳤다가 실행하지 못했던 잡지 버리기에 착수했는데 결국 잡지는 손도 못 대고 책장 정리만 했다.
지난 달에 침실에 있던 책장을 서재로 옮길 결심을 했던 것은 리클라이너 소파를 거실에서 서재로 가져오면서였다. 침실 책장은 메이플, 서재 책장은 월넛 색상이라 한 공간에 두기가 애매했는데 리클라이너 소파가 베이지색이어서 색상 문제가 해결된 것. 다만 새 책장이 들어온 후 책을 꽂을 공간이 넉넉해지면서(여기까진 좋았다), 이후 책을 여기저기 아무데나 꽂는 건 둘째치고 쌓듯이 얹어두는 바람에 급기야 며칠 전엔 책 한 권을 찾으려고 책장 앞에서 한참을 두리번거리는 일이 발생했다. 여기서 또다시 증명되는, 게으름은 필연적으로 불편을 부른다는 사실!

책을 새로 배치하면서 가장 쉬웠던 것은 김훈, 김연수. 일단 두 사람을 사이좋게 나란히 꽂았다. 제일 어려웠던 건 이문열인데 그의 짝을 찾느라 시간을 많이 낭비했다. 공간을 생각하면 진중권이 딱이지만 역시 그건 안될 것 같고(캄캄한 밤, 모두 잠든 후에 책장에서 튀어나와 침을 튀기며 싸울 것 같다;;) 결국 월북작가 박태원이 그의 옆으로 갔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옆은 삼국지가 자리했다. 토지 옆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손에 넣은 혼불이 자리를 잡아 감개가 무량하다. 오랫동안 김훈과 함께 했던 박완서는 김훈을 버리고 새로운 짝 황석영을 만났고 이외에 아줌마 군단 김형경, 공지영, 은희경은 나란히 나란히... 자야 여사는 백석의 옆에... 그리고 류는 하루키와 짝을 지어주었다(하루키가 좀 괴로울 듯;;). 제일 좋은 자리는 언제나처럼 카뮈가 차지했고 그 옆으로 보르헤스와 각종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들이 차례로 입성했다. 소설은 작가별, 국적별로 우선 순위 분류하고 다음은 출판사별로 분류했다. 산문, 시, 원서 등은 국적 불문하고 장르별로 헤쳐모여 시켰고 전공책, 컴퓨터, 어학류는 제일 위 칸에 넣었다. 책장 앞 바닥에 덩그맣게 놓여 있던 오디오도 책장에 자리를 만들어 옮기고 마지막으로 경제서와 사회과학 인문서는 새 책장으로 고고씽~ 한 다음 이러구러 책장 정리 끝~~~
그나저나 오늘 저녁엔 반드시 꼭 정말 진짜로 잡지를 정리하고야 말테다.

* <박물관은 살아있다> 후속으로 <책장이 살아있다>가 만들어져도 재미있겠다 싶다. 그러니까 비트겐슈타인이 부지깽이를 들고 포퍼를 쫓아다니고 사르트르와 카뮈가 격하게 말싸움을 하고 류가 하루키를 마구마구 구박하는 식으로...

"책장 정리가 취미예요"라는 사람들, 정말 존경한다. 책장 정리라는 게 책만 옮기면 되는 게 아니라 책장이나 책 사이사이에 앉아 있는 먼지도 떨어줘야 되고 무거운 책들을 이 칸에서 저 칸으로 이사 시켜야 하는, 옮기고 또 옮기고의 꽤 힘든 반복 작업이라 결코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특히 요즘같이 추운 날 창을 모두 열어 놓고 오들오들 떠면서 책장과 씨름하다 보면 "야, 이거 쓰리디이(3D)다아~!" 소리가 절로 나온다.


* 버리기 위한 사고방식

1. '일단 놔둔다'는 금물
2. '임시로'는 안되고 '지금' 결정한다
3. '언젠가'는 오지 않는다
4. 다른 사람에게 매우 편리한 것은 나에게 '거추장스러운 것'
5. '성역'을 만들지 않는다. (예. 업무와 관련된 서류,자료)
6. 갖고 있는 물건은 부지런히 사용한다
7. 수납법. 정리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자
8. '이건 버릴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9. '큰일났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10. 완벽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 버리기 위한 기술

1. 보지 않고 버린다
2. 그 자리에서 버린다
3. 일정량이 넘으면 버린다
4. 일정기간이 지나면 버린다
5. 정기적으로 버린다
6. 아직 사용할 수 있어도 버린다
7. '버리는 기준'을 정한다
8. '버리는 장소'를 많이 만든다
9. 좁은 곳부터 시작해 본다
10. 누가 버릴지 역할 분담을 한다 

이중 지금 내게 필요한 건 1번 그리고 2번! (불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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