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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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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읽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글도 쓰고 싶지만 시간은 늘 부족하고 잠도 늘 부족하다. 해야 할 일은 자꾸만 미뤄지고 있고, 하지 못 하고 있는 일들은 쌓여만 가고...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일의 순서, 시간의 재분배, 휴식. 절실하다.
집에서 좀 오래 빈둥거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문명이라는 게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가를. 잠깐 사이에 인간은 바로 원시 상태로 되돌아간다. 냉장고에서 남은 음식을 주워 먹고(수렵과 채취?) 방에는 쓰레기가 널려 있고(“어이구, 구들장에 풀 나겠다!”) 물은 수돗물이면 족하고(“정부를 한 번 믿어보자고. 설마 먹고 죽기야 하겠어?”) 식탁 위엔 고지서가 쌓인다(“맘대로 하라 그래.”). 그러고 보면 문명화는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정말 최근에 벌어진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러나 그 문명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인간은 곧 깨닫게 된다. 문명은 나같이 게으르고 나약한 자들을 지속적으로 솎아내면서 발달해온 것이다.
- 김영하, 『퀴즈쇼』15회, 조선일보(03.05일자 연재)
- 김영하, 『퀴즈쇼』15회, 조선일보(03.05일자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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