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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7 15:46
죽음이 나쁜 것은...『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中
시간은 밤 11시 30분이었고, 타오르는 듯한 빛은 한밤의 태양이었으며, 장소는 북그린란드의 슈케르트 골짜기였다. 아주 짧은 여름 동안에도 북극의 태양이 골짜기를 35도까지 달구는 곳, 말라버린 강바닥과 열기로 번들거리는 바위투성이 표면 위에 모기 떼가 들끓는 풍경을 만들어내는 곳이다. 골짜기를 횡단하는 데는 이틀이 걸렸다. 그 후로 나는 종종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오빠는 사냥꾼으로서 탐사 여행중이었다. 그것이 오빠와 내가 마지막으로 함께 한 긴 여행이었다. 우리는 아이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리츠가 나를 억지로 덴마크로 보내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가 12년이나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처럼. 이 순간, 세탁 건조기 앞에서 나는 그 설명할 수 없는 내 청춘의 기억, 다시는 그 달콤함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기억에 매달려 있었다. 죽음이 나쁜 것은 미래를 바꿔놓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를 기억과 함께 외로이 남겨놓기 때문이다. - p.415
새벽 1시가 다 된 시각, 그 시각에도 봉하 마을로 들어가는 깜깜한 길은 조문하러 온 사람들이 길게 메우고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은 하나도 안 지루했다. 길게 늘어선 줄 사이로 인사하는 누군가가 눈에 띄었다. 배우 문성근 씨였다. 슬픔과 상심으로 초췌한 그의 모습을 보니 새삼 내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울음이 났다.
열 명씩 줄을 지어 영정 앞에 국화를 헌화하고, 다시 스무 명씩 줄을 지어 영정을 향해 절을 했다.
방명록을 쓰고 돌아오는 길에 함께 간 일행에게 울컥 산 권력이 죽은 권력을 어떤 식으로 괴롭혀댔는지 얘기들을 쏟아냈다.
"이런 초라한 시골 골짜기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사람을 그렇게 괴롭혔단 얘기냐"고 분노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위로가 되었다.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것만으로 서로에게 위안이 되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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