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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6735 bytes / 조회: 816 / ????.12.29 12:04
취향의 차이...겠지만서도


"나는 오늘날의 재미가 하나도 재미있지 않다. TV의 개그 프로가 하나도 웃기지 않고 하나같이 똑같은 연속극들을 시청할 인내력이 없다. 멀티 샘플링에 불과한 인기 가요가 음악으로 들리지 않고 발랄하고 도발적이라고 인기를 모으는 칙릿 소설이 문학으로 읽히지 않는다. 백 년 이상 된 작가의 작품만 읽는다는 어느 외국 소설가의 선택이 전혀 거만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과연 뼈아픈 고통과 비장한 존재의 무게감은 모두 실종되어버린 것일까."
- 김갑수『지구위의 작업실』 

98% 공감하는 글. 나머지 2%는, 그와중에도 TV에선 간간이 재미있는 프로가 등장하고 책은 여전히 버릴 것 보다 읽을(읽고 싶은) 것이 더 많기 때문에...

옛날엔 TV가 참 재미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드라마도 예능프로도 하물며 애니메이션까지도 재미가 없어진 느낌이다. 언제부터인가 고만고만 재탕삼탕하는 TV연속극을 최종회까지 시청할 인내력이 없어졌고(배우가 연기까지 못하면 설상가상), 소설인지 블로거 일기인지 구분 안 되는 칙릿 소설은 아무리 용을 써도 문학으로 읽히지 않는다. 그나마 소설은 어쨌든 끝까지 읽기라도 하지만 드라마는 도중에 시청을 포기하는 것이 많아졌다.

<아내의 유혹>은 구은재가 정교빈의 집으로 들어갈 때, <꽃보다 남자>는 기억도 안 나는 중간 어디쯤에서, <선덕여왕>은 '미실의 난' 직후에 (결국 비담 때문에 마지막 회에 다시 TV 앞에 앉았지만) 포기했다. 더 보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으니 이쯤되면 포기한 것이 아니라 '버렸다'고 표현해도 될 듯 하다.
<아이리스>는 후반 2,3 회 건너 뛰다가 마지막 두 회는 챙겨서 봤지만 역시나 "괜히 봤군" 후회했다. 특히 마지막 회 시작 장면에서 빅을 향해 던지던 현준의 그 오글거리는 대사란. 그러나 그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현준이 죽어가던 마지막 장면은 참 인상적이었다. 이병헌 이 배우, 정말 연기를 잘 한다.
<아이리스>가 시작은 괜찮더니 엔딩으로 갈수록 안드로메다행 기차를 탄 것은 작가들 인터뷰 내용에서도 살짝 언급된 것처럼 드라마 방영 중에 계속해서 원고를 수정하고 또 수정했으니 당연한 귀결이 아닌가 싶다. 작가들은 왜 그런 바보 짓을 했을까. 아마도 원작 표절 소송 문제와 무관하지 않았으려니 짐작한다.

최근 챙겨 보는 드라마 중엔 <보석비빔밥>, <히어로>가 있다.
<히어로>는 개인적으로 중간 이상은 하는 드라마다 싶었는데 의외로 시청률이 무척 낮아서 좀 놀랐다. 특히 내가 "팬이에욧!" 눈을 반짝이면서 팬질 중인 용덕일보 사장님 (아니 이제 회장님인) 용덕 씨와 등장할 때마다 예뻐서 껌뻑 죽는 아이들 솔, 정을 떠올리면 낮은 시청률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시청률 조사 이거 시스템을 바꿔야 되는 거 아닌가효?
<보석비빔밥>은 이 작가의 장기는 역시 홈드라마구나 싶게 소소한 이야기를 맛깔나게 잘 살리는 재미에 챙겨 보는 드라마. 작가의 본색이 드러나는가 싶은 위기가 간간이 보이지만, 이 드라마를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뭐니 해도 큰 딸 비취 때문인데, 어머님들 잘 하시는 말씀인 "며느리 삼고 싶은"은 비취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게 참하고 예뻐 보인다.

M군의 영향으로 뒤늦게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SBS)를 보고 있는데 이 드라마를 보면서 새삼 든 생각은 내 (드라마)취향은 역시 정극이군, 하는 것이다. 난, 드라마 속 인물들이 좀 진지했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마냥 심각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뭔가 여백을 느낄 수 있는 입체적인 인물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인물에 집중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고 그리하여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엔 그들에게 연민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지나치게 단순하고 획일화된 인물은 시청자가 끼어들 틈이 없다. 이런 인물은 사실 현실에서도 재미가 없다. 소설 역시 마찬가지다. 나는 작가 고유의 문채와 문체가 흘러 넘치는, 서사가 행간까지 꽉꽉 채워진 소설을 좋아한다.
결국 요즘 트렌드에 비추면 여러모로 내 취향은 비주류 취향인 셈이다.

덧>> '<1박2일> 김종민 복귀'를 두고 설왕설래 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내가 <1박2일>을 보게 된 계기는 '김종민 낙오 사건 - 정선 편'을 보고서였는데 프로그램이 내세우는 '리얼 야생 버라이어티'가 가장 잘 드러난 방송이었다. 꼭 그런 것이 아니라도 예능프로그램에 범죄자도 아니요 사적공적 물의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 그저 군복무로 잠깐 빠진 원년 멤버이건만 - 십대는 물론 십대를 키우는 어머니(?)들까지 '김종민 복귀'에 찬반여론이 시끄럽다하니 그저 어리둥절하다. 한 연예인의 연예프로 투입이 그렇게도 대단한 일인가? 바라건데 그저 단순한 언론의 호들갑이길.

한동안 의무적인 책읽기를 하느라 소설을 멀리 했다. 몰랐는데 소설에 많이 굶주렸던 모양이다. 읽지 않은 소설들이 책장에 보란 듯이 잔뜩 꽂혀 있음에도 보상심리인지 주말을 사이에 두고 소설을 잔뜩 주문했다. 그런데 눈 때문에 배송이 지연되는 듯...(애인을 기다리는 심정이 이런 것인가 ㅠ.ㅠ) 언젠가 엄마랑 택배 얘기를 하다가 택배비 얘기가 나왔는데 내가 그랬다. "집에서 편안하게 보내고, 받는데 그 정도 돈이 뭐가 아깝겠어요"

달력에 남아 있는 칸이 불과 셋.
생각해 보니 연말연시를 한국에서 보내는 것도 오랜만의 일이다.
오전에 엄마랑 통화하면서 "창 밖에 눈이 잔뜩 쌓여 있다"고 했더니 엄마가 엄청 부러워하신다. 옛날 국사수업 때 '우리나라의 특징은 사계절이 뚜렷하고'를 배울 땐 몰랐는데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서 산다는 것, 이거 참 큰 복이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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