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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3460 bytes / 조회: 888 / ????.01.06 18:51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


K은 C의 질문에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답변하지 않았다. 오직 그를 침묵시키려고만 했을 뿐이다. 그의 책들을 찢고 금지하고 불태우고 압류했다. 정치적인 압력수단을 동원해 그가 다른 지역에 머물러 있어도 집필금지령을 내렸다. 그가 대답할 수 없고 보고도 할 수 없게 되자마자, K의 패거리는 그를 향해 온갖 험담을 퍼부어댔다. 그것은 더 이상 싸움이 아니라 방책 없는 자에 대한 유린이었을 뿐이다.
C는 말할 수도 쓸 수도 없게 되었고, 그의 저서들은 서랍 속으로 말없이 들어가야만 했다. K은 인쇄소, 설교단, 대학 강단, 종교국, 국가공권력 전부를 장악했다. 그리고 그 모든 기구를 거침없이 가동시켰다. 는 발걸음 하나까지 감시를 받았고, 그의 말 한마디까지 누군가 엿들었으며, 편지는 모두 누군가 가로챘다. 단 한 사람에 대해서 머리가 백 개나 달린 조직이 우세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것도 없다. 다만 때 이른 죽음만이 C를 망명이나 화형대에서 구원해주었다.
그의 시체를 앞에 두고도 승리에 찬 교조주의자들은 눈이 뒤집힌 증오를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갉아먹는 석회처럼 의심과 비방을 그의 무덤 속에까지 던져넣고, 그의 이름 위에도 재를 뿌렸다. K의 독재뿐 아니라 모든 정신적 독재의 원칙 자체에 대항해 싸웠던 이 유일한 인물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잊어버리고 사라지게 만들려고 했다. 

인명은 일부러 약자로 표기했다.
역자도 언급하듯이,

이 두 인물의 대립적 초상화에서 주인공들의 이름을 빼면 이런 전체적인 구도는 극히 보편적인 모습을 보인다. (중략) 등장인물의 이름과 구체적인 상황은 바뀌어도 근본적인 구조는 늘 비슷한 것이기에.

덧. K는 종교개혁가 칼뱅, C는 인문학자 카스텔리오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슈테판 츠바이크)를 읽던 중.
16세기 한 인문학자의 투쟁은,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현실과 중첩되어 수시로 책을 덮게 한다. 지금으로부터 5세기 전에 일어난 일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재와 놀랄만큼 닮아 있는 것에 소름이 끼친다.
여전히 나는 태연한 정신으로 그 분의 사진을 보는 것이, 그 분의 음성을 듣는 것이 힘에 겹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자신의 용기에 도취된 상태로 쓰러지는 사람,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자신의 확신을 조금도 포기하지 않고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순간에도 확고하고 경멸에 찬 눈길로 적을 응시하는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운명의 손에 의해 한 방 얻어맞는 법이다. 그는 죽임을 당할망정 물러서지 않는다. 가장 용감한 사람들은, 대개는 가장 불운한 사람들이다. 승리를 향해 질투심에 찬 눈길을 보내는 의기양양한 패배도 있다. - 몽테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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