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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4495 bytes / 조회: 892 / ????.05.29 19:47
영화속 해피엔딩


지난 토요일에, B양과『캐러비안의 해적 3: 세상의 끝에서』를 보러 갔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미리 예매한 티켓을 무인발권기에서 발권한 다음 팝콘에 콜라까지 사들고 입구로 갔더니 "손님, 죄송하지만 10:20분 표네요" 라는 것이다.
아, 이런... 22:20을 20:20분, 즉 10시를 8시로 착각한 것. 꼭 22시가 헷갈린다. 21시나 23시는 절대로 안 헷갈리는데 거 참 묘하다. 중요한 것은, 이 표를 인터넷으로 예매해준 사람이 M군이라는 것. M군은 "8:20분이야"라고 말했고 발권한 티켓에 선명하게 찍혀 있는 22:20을 보면서 나도 B양도 "8:20분이군" 했던 것이다. 어쨌든 10시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할 수 없이 표를 취소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극장과 집이 가까우면 고민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그리고 어제 월요일에 다시 표를 예매했다(또 헷갈리지 않도록 이번엔 아예 19:00로 했다). 물론 디지털 상영관으로 선택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내가 디지털상영관에서 본 첫 영화이다.
영화가 끝나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루루 일어나서 나갔지만 우리를 포함, 십 여명 남짓되는 사람들은 자리에 앉아서 크레딧이 다 올라간 뒤 남아 있는 장면을 끝까지 봤다. 시간을 쟀는데 크레딧이 올라가는 시간이 무려 8분. 남은 장면은 아마 4,50여초? 그 한 장면이 허탈하다는 사람도 많지만 달리 다른 장면이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나오는 길에『스파이더맨3』이 극장에서 떨어지기 전에 아이맥스관에서 꼭 봐야지 다짐했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속 해피엔딩에 대해서 생각하다 지난 목요일에 본『데자뷰』로 생각이 흘렀다.
평행우주 이론을 근거로 한 시간 역행을 스토리의 기반으로 삼은 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의문점을 물어보려고 M군에게 전화했을 때 M군은 "억지로 해피엔딩을 만드는 바람에..."라고 했는데 사실 나는 이 영화를 새드엔딩으로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봤다.

우연히 알게 된 재미있는 일치.『캐러비안...』과『데자뷰』의 자막번역은 동일한 사람이 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또 있다. 바로 연기 잘 하는 배우가 등장한다는 것.
조니 뎁의 '잭 스패로우'는 정말 매력적이었다. '세상 끝'으로 흘러들어간 '잭의 분열된 자아 놀이'는 특히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이야기이지만 물론 이 영화는 '스펙타클 액션 어드벤처'이기 때문에 영화에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이런 심리단막극은 진지해야 할 의무도 없을 뿐더러 관객도 가볍게 유희로 즐기면 된다.
잭의 알쏭달쏭한 '연애 심리'도 마찬가지. 실연으로 슬퍼하는 전설의 해적이라니, 상상만 해도, 아니,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사실 잭이 그런 이유로 조금이라도 우울해했다면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 틀림없다. 그의 연기가 훌륭하다고 생각이 들었던 장면은 영화의 절정에 해당하는 장면에서였다. 그 장면에서 풍기던 비극성은 전적으로 조니 뎁의 연기에 의존한 것이라 믿고 있다. 조니 뎁, 그는 연기를 정말 잘 한다. 좀 더 자주 그의 연기를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데자뷰』의 덴젤 워싱턴. 더그(덴젤 워싱턴)가 클레어(폴라 패튼)을 바라보던 그 시선과 표정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정체성'의 관점에서 나는 이 영화를 새드엔딩으로 받아들인 게 아닌가 싶다. 필모그래피의 거의 모두가 묵직한 인물로 채워져 있는 덴젤 워싱턴은 그래서 영화속에서 웃고 있을 때조차도 슬픈 느낌이 난다. 내가 B급 액션이 장기인 토니 스콧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를 슬프게 봤다면 그건 순전히 덴젤 워싱턴 때문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재미가 달라진다는 걸 알게 해준 영화는 박중훈, 정진영 주연의『서라벌』이었다. 패자인 백제군의 입장에서 본 처음은 재미가 없었는데 그러나 승자인 신라군의 입장에서 본 두 번째는 의외로 재미있었던 것. 물론 전자는 새드엔딩이지만 후자는 해피엔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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