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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9044 bytes / 조회: 1,122 / ????.09.13 22:29
내겐 최고의 영화 (The best 5)


<아비정전> 포스터.
너무나 좋아하는 유가령. 내가 반한 건 <금지옥엽>에서.

(무순...)

*아비정전

96년. 친구들은 모두 <중경삼림>을 떠들어댔고, 미디어마다 이 영화를 패러디하고 있었다. 유행에 휩쓸려 본 이 영화가, 그러나 나는 정작 별로였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낯설었고 동화되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같은 감독의 다른 영화를 찾아서 보다가 발견한 것이 <아비정전>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는 이 영화에 완전히 매혹됐다. 홍콩판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린다는 <아비정전>. 하지만 나는 <영웅본색>에서의 아걸보다 <아비정전>에서의 아비에게 반했고, 영화의 장면 장면은 내 기억속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선리기연 (西遊記 完結篇 之 仙履奇緣: A Chinese Odyssey Part Two - Cinderella, 1994)

서유기를 각색한 주성치의, 주성치에 의한, 주성치를 위한 영화다. 가장 아끼는 DVD 타이틀이기도 한 이 영화는 <월광보합(上)>, <선리기연(下)> 두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폐가 있을 지 모르나 개인적으로 <선리기연>을 최고로 꼽는다. 아마 <선리기연>이 아니었다면 주성치의 <서유기>는 최고의 영화가 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고까지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서유기>라 하지 않고 굳이 <선리기연>이라고 제목을 쓴 것.
중국 4大기서 가운데 하나인 <서유기>가 원작이니 다 아는 내용이라고, 영화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얼핏 그렇지 않다.

<월광보합>은 손오공이 되기 전 인물인 지존보가 산적패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패악을 부리고 다닌다는 내용이고, (500년 후)
<선리기연>은 (시공간을 이동 가능하게 하는 일종의 타임머신인) 월광보합에 의해 500년 전으로 가게 된 지존보가 자신의 전생의 업을 깨우치게 되고, (500년 전)
현재로 돌아온 손오공이 삼장을 보필, 저팔계등과 함께 천축으로 불경을 찾아 떠나면서 이야기가 완성된다. 500년이라는 시간은 잠에서 막 깬 손오공의 모습에서 손오공이 하룻밤 꿈을 꾼 것처럼 보인다. 

<서유기>는 로맨스와 무협, 코믹, 판타지등 장르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과 여기에 희극과 비극의 모든 요소까지 다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영화는 '사랑 이야기'다. 그것도 '더없이 애틋하고 뭉클한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다.
<서유기>를 보기 전까지 나는 주성치라는 배우에 대해서 과장적이고 허풍스러운 희극배우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후부터는 주성치는 천재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주성치 영화의 장점이자 특징이랄 수 있는 '패러디'와 '비틀기'가 <서유기>역시 곳곳에 숨어 있다. 마치 '패러디란, 비틀기란 이런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
<서유기>는 보고 나면 뭔지 표현 안 되는 여운이 오랫동안 감정선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최고의 영화다. 주성치에게도 나에게도.

진정한 사랑이 눈앞에 나타났을때 난 소중히 여기지 않았지.
그걸 잃었을 때 비로소 크게 후회했소. 인간사의 가장 큰 고통은 바로 후회요.
하늘이 내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면 난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줄거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만약 사랑에 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년으로 하겠소 


*매트릭스

한 번 본 영화는 정말 좋아하는 영화가 아니면 거의 다시 보지 않는 타입이다. TV에서 공짜로 보여줘도 잘 안 본다. 일부러가 아니라 책을 예로 들면 '정독'하는 타입이라 영화나 드라마에도 그런 습성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매트릭스>는 극장에서 개봉작을 본 이후로도 비디오, DVD, 컴퓨터 파일로 몇 번씩이나 거듭해서 본 정말 유일한 영화다. 스토리가 있는 액션은 B급 영화라면 누구나 바라는 이상이 아닐런지. 확실히 매력적이긴 하다. 게다가 동양사상, 철학적인 담론으로 버무려진 종합선물이니 더 말 할 필요가 없을 듯.

*블레이드 러너

내가 가장 좋아하는 Best of best of... of best 영화. 처음 본 것이 대학 도서관의 자료실에서였다. 뭘 볼까... 하다가 그냥 낯익은 제목이라는 이유로 참 심심하게 골랐던 영화. 하지만 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 <블레이드 러너>는 더 이상 그냥 '영화'가 아니게 되어 버렸다. 많은 은유와 상징이 보석처럼 채워져있는 <블레이드 러너>는 지적인 충만감, 화면을 읽는 즐거움을 모두 충족시켜주는 TEXT적인 영화다.
지금은 너무 흔해져버린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사이보그'라는 주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옥상씬에서 로이(룻거 하우어)의 대사인 "Time to die"에서는 바보같이 울어버렸다. 이후 director's cut도 봤는데 나는 둘 다 좋았다.
(편집본이 감독판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아이러니하지만 오히려 더 좋은 작품이 허다하다. 때로 객관적인 시선이 더 정확할 때도 있는 법.)
마지막 장면을 편집해 버림으로써 데커드의 정체가 애매해졌다고 비판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용을 유심히 보면 이미 영화 전반에 걸쳐 데커드의 정체성에 대한 힌트를 충분히 주고 있다(믿고싶지 않아도 데커드는 레플리컨트이다).
필립 K.딕의 원저의 제목인 <Do Androids Dream of Electric Sheep>는 스토리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너무나 잘 대변한다. 반젤리스의 음악도 좋고,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연출도 흠잡을데 없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영화가 시대의 외면을 받았다니, 이런 작품을 만들고도 상 하나 못받다니, 오호! 통재라~ (참고로 그당시 대세는 E.T였다고 함.)
82년作임을 감안할 때, 영화 전반부에 등장하는 일본의 묘사가 지금의 일본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난 네가 상상도 못할 것을 봤어. 오리온 전투에 참가했었고, 탄호이저 기지에서 빛으로 물든 바다도 보았어. 그 기억이 모두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죽을 시간이야 


*동사서독

<중경삼림>덕에 보게 된 왕가위 감독의 또다른 영화. 위의 영화들과는 다른 의미에서, 그러니까 영화 서사의 독특함 때문에 손가락에 꼽는 영화다. 이 영화는 text로 펼쳐보면 시나리오의 치밀함과 그 완성도에 놀라게 된다. 인물이 많고, 내래이션이 중첩되기 때문에 자칫 지루하고 복잡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홍콩식 무협액션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사랑이야기'다. 그것도 아주 전형적인 삼각관계의. 김용의 <영웅문>시리즈에 등장하는 주요인물들이 <영웅문>을 뛰쳐나와 각자 다른 사연을 가지고 총출연한다.

사랑에 승부가 있다고 해도 그녀가 이겼다고는 생각 안한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졌다. 난 이 여자때문에 복사꽃을 좋아한다. 매년 복사꽃이 필 때면 그녀를 만날 수 있다. 그녀가 구양봉을 궁금해해서 난 그를 만나러 간다. 구양봉이 있는 한 난 매년 이 여자를 만날 수 있다.

- 전에는 사랑이라는 말을 중시해서 말로해야만 영원한 줄 알았죠.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하든 안하든 차이가 없어요. 사랑 역시 변하니까요. 난 이겼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거울을 보고 졌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가장 아름답던 시절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죠.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그와 친하다면서 왜 내 얘길 안했죠?
- 당신과 약속을 해서요.
- 정말 고지식 하군요.

그녀가 슬피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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