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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5452 bytes / 조회: 943 / ????.05.08 21:13
독자의 목소리『장정일의 독서일기』中, 장정일


공지영의《고등어》(웅진출판, 1994)를 읽다.
-중략-
일전에《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같은 작가의 소설을 두고 한 평론가와 이야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는 그 우스운 소설을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말했고 나는 관습과 역할 그리고 더 나아가 상징과 신화에 도전하지 않는 그런 종류의 의사 페미니즘은 TV를 통해(연속극) 매일, 아침 저녁으로 쉴새 없이 반영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평론가는 페미니즘적 수준 성취는 물론이고《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가 오문과 악문으로 가득한 책이라는 나의 불평마저 접수하길 거부했다. 자신은 그런 문장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고등어》를 읽으며 나는 불평을 넘어,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앞서의 '형편없는 수준' 운운 하는 대목은 상당 부분 작가의 오문과 악문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며 하나의 예를 들어볼까 한다.
-중략- 

온라인 세상의 확장으로 타인과 만나는 것이 쉬워진 요즘, 비슷한 취향을 발견하면 우선은 반가움을 느끼게 되고 그 반가움은 내처 친밀감을 형성하는 데까지 이어지기 마련. 고작해야 같은 소설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도 친구가 될 수 있는(『상실의 시대』) 이른바 문화소비의 세대가 아닌가. 어제 저녁에 책장을 정리하다가 내 책 치고는, 나는 내 손에 들어온 내 물건에 대해서는 결벽증적으로 아끼는 성향이 있다, 꽤 많이 상한 이유로 눈에 띈『장정일의 독서일기』(놀랍게도 현재 시리즈로 6까지 출간된 이 책은 아마 출간 당시만 해도 연작 계획이 아니었던지 '1'이라는 숫자가 빠져 있다). 책이 왜 이렇게 상한 거지, 생각하면서 이리 저리 들추다가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소설이 아닌 이런 류의 책들은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순서대로 읽기보다는 틈틈이 넘겨서 읽게 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리고 책장을 넘기다가 작가의 얘기에 공감하는 부분에 이르렀을 때, 반가움과 더불어 내친 김에 모니터 앞에 책을 펼치고 앉았다.

장정일의 독서량은 알려진 것처럼 한 마디로 거대(!)하다. 한 개인이 읽을 수 있는 독서량이 과연 어디까지인가 몸소 실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중졸 학력이라는 드문 이력을 가진 소설가 장정일은 제도권 교육의 울타리안에서 한번도 벗어나보지 못 한 아니 감히 그런 상상도 해 본적이 없는 내게 교육의 허와 실을 되짚어 보게 하는 생생한 증거이기도 하다. 그의 입으로 평론가가 되고 싶었다던 장정일은 사실 독자의 입장에서도 그의 소설보다 그의 서평을 읽는 게 더 즐거운 것이 사실이다.
그의 소설은『아담이 눈뜰때』,『너희가 재즈를 믿느냐』,『내게 거짓말을 해봐』를 읽었는데 단짝 친구K의 언니의 책장에 꽂혀 있던 것이 이 소설들이었다. 당시 꽤나 자극적이고 민감한 내용으로 사회적인 이슈를 몰고 다녔던 그의 소설을 K와 나는 금기를 엿보는 심리라고 할까 다소 불온한 동기로 읽었는데 그가 말하고자 하는 세계를 이해하기엔 우리가 너무 어렸거나, 아니면 그의 세계는 말 그대로 그 혼자만의 자아도취였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 밖의 기타등등의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이 몇 편 안 되는 소설로 장정일이 우리들에게 그의 이름 석자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것은 사실이다.
사회통념상 도저히 받아들여지기 힘든 내용의 소설을 저작, 출판했다는 명목으로 감옥까지 갔다 온 주홍글씨가 붙은 불온한 작가 장정일과 국내 여성작가들 중 단연 베스트셀러 작가의 꼭대기에 서 있는 작가 공지영. A가 좋아서가 아닌 단지 B가 싫기 때문, 의 이유로 혹자는 공지영의 손을 들어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정일은 그 스스로 작가인 동시에 자타가 공인하는 거대한 독서량을 비축한 한 사람의 독자 혹은 서평가가 아닌가. 좋은 글을 쓰는 것과 좋은 비평을 쓰는 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바둑을 못 두는 사람도 얼마든지 훌륭한 훈수를 둘 수 있고, 스포츠 세계에서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뛰어난 감독들 중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시절을 거쳤거나 아예 비(非)선수 출신도 허다하다. 한 사람의 독자로서, 작가 공지영은 독자 장정일의 지적에 한 번쯤 주의를 기울여주길 바란다면 오지랖 넓은 것이 될까.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면서 더 이상 자필 기록에 연연해하지 않아도 되기 전까지는 책을 사면 책 표지 안쪽에 구입 날짜와 간단한 메모를 하던 때가 있었다.『장정일의 독서일기』의 표지 안쪽에는 '96년. 3.21. 거듭남을 위해'라고 씌어 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메모를 했는지 지금은 물론 기억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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