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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s Casket
Review 1
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3551 bytes / 조회: 901 / ????.06.22 02:04
두부 / 박완서


* 계간지 '창작과 비평(이하, 창비)'의 정기구독자는 창비에서 출판되는 단행본을 창비에서 직접 주문하면 정가의 30%가 할인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창비 정기구독자인 나는 막상 지금까지 창비에서 책을 구입한 적은 없는데 얼마 전에 읽고자 점 찍은 책이 마침 창비 출판이었다. 그리하여 창비 홈페이지에 접속, 해당 도서외에 배송비 무료 혜택을 받으려고 주문액을 채우면서 어쩌다 장바구니에 담은 책이 박완서의 산문집『두부』(이제 확실히 산문집에 재미를 들였구나 싶다).
요즘 읽었던 다른 소설들에 비해 조금 얇다고 느꼈던 총 234페이지의 이 산문집은 그러나 칠순이 훌쩍 넘은 작가의 진중한 삶의 무게로 인해 두께와 상관없이 풍성하고 곡진한 내용으로 가득하다.
(집 근처가 호수이기도 하고 내가 유난히 극성인 탓도 있지만) '비오는 날은 모기가 없다'는 항간의 설만 믿고 창을 다 열어두었더니 집안 곳곳으로 장마를 앞두고 물기를 잔뜩 머금은 서늘한 바람이 참 시원하게도 밀려들어온다. 덕분에 기분도 좋고해서 오랜만에 오디오에 바흐의 CD도 걸고 분위기를 제대로 만든 다음『두부』를 집어 들고 소파에 앉았는데 중간쯤 읽었을 때 그만 독서에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노을이 아름다운 까닭」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산문의 첫 문장이 <가을이 산을 내려오고 있다>였던 것. 앞서「가을의 예감」이라는 제목의 산문도 아무렇지 않게 읽어놓고선 저 한 문장엔 가슴이 덜컹한 것이다.

아직 여름도 시작되지 않았는데 벌써 가을이라니... 이 한 문장을 보는 순간 괜시리 뜨악해져버렸다. 더 생각할 것도 없이 해당 페이지에 책갈피를 꽂고 책을 얌전히 덮었다. 한창 재미있게 읽고 있던 이 책은 아무래도 여름을 보내고 가을이 되어야 다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심리는 매시간, 매분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 죄책감에서 기인한다.
다음은 읽기를 중단하기 직전에 읽었던 챕터에 등장하는 꽃에 관한 얘기의 일부. 노작가의 꽃을 향한 열정과 애정은 정말이지 감탄과 존경을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무릎팍 도사 - 엄홍길대장편』에서 엄홍길대장이 8000미터 고도의 빙벽에 매달려서 듣는 바람소리를 <짐승울음소리 같은 바람소리> 라고 표현했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었다. 적절한 비유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웅변적인가.



* 곡진하다
내용 중에 '곡진'이라는 표현을 쓰고나서 스스로 깜짝 놀랐다. 사전을 검색해 보니(Yahoo),

곡진-하다 [―찐―][曲盡―] <형용사><여불규칙활용>
① 정성이 지극하다. ¶ 인정에 곡진하고. <이상백:인간 이충무공>
② 자세하고 간곡하다. ¶ 곡진한 사연.

라고 한다. 어디서 들은 것일까, 읽은 것일까. 그렇다고 배운 기억도 없는데. 인간의 학습능력이란 하여튼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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