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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1
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5321 bytes / 조회: 889 / ????.07.19 22:35
장정일과 독서


무술인 최영의는 소와 싸울 때 '너 소야? 나 최영의야!' 라고 말하고 나서, 한 손으로 소의 뿔을 잡고 한 주먹으로 정수리를 난타했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넘버 3>에서 송강호가 한 말이다. 그런데 소는 그렇게 '잡을 수' 있을지 모르나, 책은 그렇게 '잡으면' 안 된다. '너 책이야? 나 독자야!' 하고 집히는 대로 읽는 일은 난독亂讀이요, 페티시fetish이다. 좋은 독서가 되려면 '나는 왜 이 책을 읽는가?'라는 강한 동기 부여나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읽게 된 두 권의 책은 난독이거나 페티시가 아니라면, 또 다른 독서질병讀書疾病인 관음증에 가깝다.
- p.178,『장정일의 독서일기 7』 

* 본문에 등장하는 두 권의 책은 앨리노어 허먼의『왕의 정부』와 마거릿 크로스랜드의『권력과 욕망』
* 독서일기 7은 기존 <범우사>에서 <랜덤하우스>로 출판사가 바뀌었다.

마침 책을 쇼핑하듯 읽지 말아야지, 어떤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좀 더 집중해야지라고 반성하던 참이라 남다르게 다가온 문단.
12일에 온라인 서점에서 발견하자마자 바로 주문한『...의 독서일기 7』은 인쇄일이 10일로 찍혀 있다. 이 정도면 장정일의 팬이라고 해야 하나. 좀 더 분명하게 말하면 서평가 장정일의 팬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사실 나는 장정일의 소설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의 다음 소설을 기다려 본 일도 없고 이미 읽은 소설도 왜 읽었을까 후회했다. 그러니 나는 작가 장정일의 팬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독자로서 장정일은 매우 신뢰하고 있고 그래서 그의 서평과 평론 가운데쯤 걸쳐져 있는 독서일기를 읽는 일은 언제나 즐겁고 다음 독서일기를 기다리게 된다.
나는 장정일의 독서 리스트를 '매우' 신뢰하는 편이다. 이를 테면 국내의 모든 번역본중 민음사의『호밀밭의 파수꾼』이 가장 좋았다는 얘기에(독서일기 7) 안심했고, 자기네 언어로『허삼관 매혈기』를 읽을 수 있는 중국인이 부럽다고 하는(독서일기 5) 부분에선 생각이 통하는 친구를 만난 것같은 반가움을 느꼈다. 아마도 그의 독서일기 시리즈에 가장 자주 등장했을『롤리타』(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경우, 지난 주에 도서관에서 대출했는데 어제 전반 30여 페이지쯤 읽었을 때 이 책을 구입해야겠다고 결정했다. * 새로운 책을 만나는 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과 매우 비슷한데가 있어서 첫 한 문장, 혹은 앞 몇 페이지에서 그 만남이 즐거울 것인가 악몽같은 것인가 거의 대부분 결판이 난다.
이런 이유와 일련의 경험으로 고미숙의『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혹』과 김탁환의『부여 현감 귀신 체포기』도 읽어보기로 결정.

사실 작가 장정일과 독자 장정일에 대한 내 호감도는 극과 극에 있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청준에게 실망한 것은 아니다. 평소에 당신을 싫어했으니까. 그런데 묻고 싶다. 당신을 4.19세대라고도 하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작가라고도 하는데, 잠든 어린 딸의 눈에 청강수를 찍어 넣는 애비는 마땅히 그 ㅈㄷㄱㄹ를 잘라 씹어버려야 하지 않나?
- p.60,『장정일의 독서일기 5』 

이처럼 영화『서편제』의 원작 소설과 원작 작가인 이청준을 싫어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독자 장정일이 정작 자신의 소설에서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한다. 그럼 자기가 쓴 소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장정일은『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대해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 작품을 쓰면서 내 심부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고, 내가 쓴 모든 작품의 핵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소설을 읽어보신 분들은 헤아리셨을 테지만, 이걸 쓰면서 무척 괴로웠다. 사회적 통념과 작가의 상상력 사이에 가로놓인 괴리가 너무 커서 자아분열에 걸릴 것만 같았다. 그것은 마치 두 절벽 사이에 내 몸으로 다리를 놓는 것만 같았다. 두 발은 이쪽에 두 손과 머리는 반대켠에. 하지만 그 괴로움과 찢김이 바로 작가가 져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고, 바로 그 때문에 작가가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 p. 171, 계간지『리뷰』(96. 겨울호) 

요즘 국내소설을 읽다보면 작가만큼이나 자질을 제대로 갖춘 평론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장정일이라면 너무 일찍 간 김현의 자리를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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