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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4456 bytes / 조회: 948 / ????.09.01 21:25
『Copying Beethoven』vs『불멸의 연인』


당대에는 물론 지금도 난해하다고 소문난 악성의 대푸가와 함께 시작하는 영화의 앞 부분이 특히 좋다. 전기영화의 경우 늘 그렇지만 연기력이 검증된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 안정된 연출, 안정된 극본이 영화의 기본적인 재미를 보장한다. 다만 악성으로 우뚝 선 베토벤의 대표적 전기영화가 되기에는 팩션의 특성상 사실 관계와 관련해 약간의 연대기적 오류가 있다.

『카핑 베토벤』은 전성기에 청력을 상실해간 베토벤이 작곡자로서는 최악이라고 할 수 있는 악조건에서도 훌륭한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것에 대한 미스테리에서 출발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베토벤에게 아마도 뛰어난 필사가(copyist)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바탕으로 한다. 베토벤에게 어느 날 우수한 필사가인 안나가 찾아오고 베토벤은 그녀의 도움을 받아 9번 교향곡을 완성할 뿐 아니라 초연 무대에서 지휘까지 무사히 해낸다는 내용이다.

베토벤의 전기영화라는 점에서 역시『불멸의 연인(Immotal beloved)』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불멸의 연인』은 베토벤이 임종 직전 남긴 유서에 등장하는 베토벤의 연인을 찾는 과정과 베토벤의 이야기가 교차편집의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세 명의 여인이 그 대상에 오르지만 결국 그 연인이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는다. 이 영화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는 '베토벤의 연서'는 맥거핀 효과 같은 것이 아닌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영화적 상상력과 사망 이후의 악성의 알려지지 않은 인간적인 일면을 재조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불멸의 연인』에선 게리 올드만이 주연을 맡았는데 화면을 압도하고 영화의 전반을 지배했던 강렬한 그의 카리스마는 지금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그런 점에서『카핑 베토벤』의 애드 해리스는 자막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변신이 놀랍지만 개인적으로는 게리 올드만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그건 아마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베토벤의 이미지 즉, 베토벤 하면 막연히 그리게 되는 괴팍하고 까다롭고 은둔적인 이미지와 게리 올드만의 베토벤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는 이유가 크다. 게리 올드만이라는 배우만이 지닌 광기가 '베토벤적인' 것과 잘 맞아떨어졌다고 해야할까... 배우 자체가 품고 있는 아우라는 열심히 연기하는 것과는 또다른 문제인 모양.
『카핑 베토벤』에서 에드 해리스가 커다란 보청기를 귀에 꽂고 피아노를 치는(친다기 보다는 두들기던) 모습도 물론 인상적이지만 아무래도『불멸의 연인』에서 게리 올드만이 그랜드 피아노위에 귀를 대고 진동을 느끼면서 '월광'(피아노 소나타 14번 C sharp단조, op.27-2, 1악장 Adagio sostenuto)을 치던 장면에는 비할 수가 없다.

『불멸의 연인』이 전적으로 게리 올드만에 의한 영화였다면『카핑 베토벤』은 또 다른 히어로인 안나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다. 베토벤 악보의 필사가이자 말년의 베토벤과 정신적인 영감과 교감을 나누는 아름답고 재능있는 아가씨 안나는 다이앤 크루거가 열연했다. 영화『트로이』에서 그녀가 세기의 미인 헬레나를 맡았을 땐 '세기의'라는 단어의 무게 탓인지 "에게~" 했었는데『카핑 베토벤』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재능 있고 아름답고 매력 있는 배우였다.

사족 - TV드라마에서 오랫동안 인기를 끌던 사극 장르가 요즘은 판타지가 어우러진 팩션 장르로 이동을 하는 사례를 심심찮게 본다. 하지만 특히 실존 인물이 배경이 되는 팩션은 잘못된 역사(=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에서 픽션보다 더 진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치밀하게 이야기를 다루어야 하는 장르다. 고리적 얘기지만 다음 중 가구가 아닌 것은? 이라는 시험 문제에 '침대'에 동그라미를 쳤다는 초등생들의 이야기는 그저 웃고 넘길 얘기가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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