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조그만 함정 '덤불속 이야기' / 『탐독耽讀』中 > 설(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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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ncHolic.com 감나무가 있는 집 Alice's Casket 비밀의 화원 방명록
Alice's Casket
Review 1
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31498 bytes / 조회: 855 / ????.09.14 12:13
진실의 조그만 함정 '덤불속 이야기' / 『탐독耽讀』中


- 이하,『탐독耽讀』中「덤불속」이야기


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재판관의 심문이 벌어진다. 나무꾼은 살인 사건을 증언한다. 그 다음 나그네 스님이 증언한다. 그는 살인 사건이 있던 전날 피해자를 만났다. 피해자인 사무라이는 부인과 칼, 활, 화살을 가지고서 지나가던 중이었다. 이 두 가지 증언은 비교적 투명하다. 즉 인식론적 장막이 아직 드리워지기 전이다. 적어도 일정 부분까지는 관점들의 교차가 가능하다.
나졸은 도적을 붙잡아 왔다. 그는 다조마루라는 유명한 도적이다. 그가 유달리 색色을 밝힌다는 사실이 중요한 복선으로 깔린다. 평범한 이야기가 전개된다면 다조마루가 사무라이를 죽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제 다조마루, 여인, 사무라이의 어긋나는 증언이 전개된다.

다조마루 : 나는 사내를 유인해서 나무에 묶었으며, 그가 보는 앞에서 부인을 겁탈했다. 그러자 여인은 나에게 자살하거나 아니면 자기 남편을 죽여달라고 말했다. 나는 사무라이를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의 밧줄을 풀어주었고 정정당당하게 결투해 승리했다. 그 사이에 여인은 사라졌다.

여인 : 다조마루에 겁탈 당했다. 나는 남편에게 가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남편의 눈빛에서 형언할 길 없는 차가운 경멸을 보았다. 나는 남편에게 같이 죽자고 했다. 그러나 남편은 노려보기만 했다. 나는 남편을 죽였고 곧 따라 죽으려 했으나 정신을 잃었다.

죽은 사무라이(무당을 통해 이야기함) : 겁탈 당한 아내는 도적의 말에 넘어가 그를 따라가려 했다. 아내는 도둑과 함께 떠나면서 그에게 나를 죽이라고 했다. 도둑은 아내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그를 내팽개쳤다. 도둑은 나를 쳐다봤고 아내는 갑자기 도망갔다. 도둑은 나를 반쯤 풀어주었고, 도둑이 가고 나서 밧줄을 완전히 푼 나는 떨어져 있던 단도로 내 가슴을 찔렀다. 의식이 사라지기 직전 누군가가 내 몸에서 단도를 뽑았다.

재판관의 질문에 대한 나무꾼의 답변
......그렇습니다. 그 시체를 본 것은 틀림없이 저였습니다. 저는 오늘 아침에 여느 때처럼 뒷산으로 삼나무를 배러 올라갔었습니다. 그런데 그 그늘진 덤불 속에 그 시체가 있지 않겠습니까? 시체가 있던 장소를 물으셨습니까? 그곳은 야마니사 역로에서 백십미터 정도 산으로 들어간 곳입니다. 호리호리한 삼나무들이 대나무 덤불에 섞여서 있는 호젓한 곳입니다.
시체는 옥색 스치칸(귀족 평상복)차림이었고 교토 풍의 아치에보시를 쓴 채 하늘을 보고 고꾸라져 있었습니다. 하여간 단칼이라고는 하나 가슴께의 상처 때문인지 시체 주위의 대나무 잎은 검붉은 물감에 담근 것 같았습니다. 아닙니다. 피는 이미 멎어 있었습니다. 상처 구멍도 말라붙은 것 같았고요, 그리고 왕파리 한 마리가 제 발소리도 듣지 못했는지 상처에 딱 늘어붙어 피를 빨아먹고 있더군요. 칼이나 무엇을 보지 못했냐구요? 아뇨,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다만 삼나무 밑동쯤에 밧줄이 한 가닥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 밧줄 말고도 빗이 하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시체 옆에 있었던 것은 그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풀이나 대나무 잎이 넓게 짓밟혀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 사내는 살해되기 전에 상당한 저항을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예? 말은 없었냐고요? 그곳은 말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못됩니다. 하여간 말이 다니는 길과는 대나무 덤불이 가로막고 있었으니까요.

재판관의 질문에 대한 지나가던 스님의 답변
.......시체가 된 저 사나이는 분명 어제 만난 사람이 맞습니다. 어제, 그러니까 점심 무렵이었습니다. 만난 곳은 시케야마에서 야마시나로 가던 길 중간이었습니다. 그 사내는 말을 탄 여자를 데리고 세키야마 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이치메가사 아래로 늘어진 비단 때문에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본 것은 꽃자주빛 겹옷 같은 색뿐이었습니다. 말은 적갈색의, 틀림 없이 갈기를 박박 깎은 말이었습나다. 말의 키 말입니까? 키는 네 길을 되었을까요? 하여튼, 속세의 일이라 그런 일은 잘 모르겠습니다. 사내는, 아닙니다. 칼도 차고 활과 화살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검은 칠을 한 화살 칩에 스무개 남짓한 화살을 꽂고 있던 것이 지금도 확실히 생각납니다. 그 사람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했습니다. 참으로 사람의 목숨이란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다는 말이 맞습니다. 허참, 뭐라고 말할 수 없이 딱한 일이지요.

재판관의 질문에 대한 나졸의 답변
.......제가 붙잡은 녀석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놈은 틀림없이 이름이 자자한 다조마루라는 도둑입니다. 하기야 제가 붙잡았을 때에는 말에서 떨어졌을 때였지요. 아와다구치 돌다리 위에서 끙끙대고 있던데요. 시간이요? 그건 어젯밤 초경쯤이었습니다. 언젠가 제가 잡으려다 놓쳤을 적에도 역시 이 감색 스이칸을 입고 무늬가 눈에 띠는 쇠로 된 칼집에 칼을 차고 있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지금은 그것 말고도 활과 화살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가요? 그 죽은 자가 갖고 있었던 것도.... 그럼, 그 자를 죽인 것은 틀림없이 이 다조마루일 것입니다. 가죽을 친친 감은 활, 검은 칠을 한 화살집, 매의 깃을 단 화살 열일곱개, 이것은 모두 죽은 그 사내가 갖고 있었을 겁니다. 예, 말씀하신 대로 말은 갈기를 짧게 깎은 적갈색의 말이었습니다. 그 말에서 떨어지다니, 틀림없이 무슨 연고가 있을 것입니다. 말은 돌다리 조금 앞에서 긴 고삐를 끌며 길가의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이 다조마루라는 녀석은 성안에서 활동하는 도둑 중에서도 유난히 여자를 밝히는 녀석입니다. 작년 가을 도리베사의 빈즈루 뒷산에서 절에 불공을 들이러 온 여자 하나와 계집아이 하나를 죽인 것도 이 녀석의 짓일 거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녀석이 그 사내를 죽였다면, 그 적갈색 말에 타고 있던 여자도 이 녀석이 어디다 어떻게 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왕이면 그 일도 밝혀 주셨으면 합니다.

재판관의 질문에 대한 노파의 답변
.....예, 죽은 사람은 제 사위가 맞습니다. 하지만 성안에 사는 사람은 아닙니다. 와카사의 고쿠후 무사입니다. 이름은 가나자와의 다케히로이고 나이는 스물 여섯입니다. 아닙니다. 성격은 무난했기 때문에 누구한테 원한을 사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제 딸 말씀이십니까? 딸의 이름은 마사꼬입니다. 나이는 열 아홉 살이었고요. 그 아이는 남자보다도 지기를 싫어하는 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여태껏 다케히로 말고는 다른 남자와 사귄 적은 없었습니다. 얼굴은 까무잡잡하고 왼쪽 눈초리에 검은 사마귀가 있는 자그맣고 갸름한 얼굴입니다. 어제 다케히로는 딸과 함께 와카사로 출발했었는데, 이런 변고를 당하다니 도대체 어찌된 일이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사위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딸아이가 어떻게 된 것은 아닌지 정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 늙은이 평생의 소원입니다. 사방을 샅샅이 찾아서라도, 부디 꼭 제 딸아이를 찾아 주시기 바랍니다. 다조마루인가 하는 도둑은 정말 나쁜 놈입니다. 사위에다 딸아이까지도.......
(울음 때문에 말을 잇지 못한다.)

산적 다조마루의 자백
.....그 자를 죽인 것은 저입니다. 그러나 여자는 죽이지 않았습니다. 어디에 있냐고요? 그야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 정말입니다. 고문을 하신다고 해도 정말 모르는 일을 말하지는 못할 것 아니겠습니까?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저로서도 더 이상 숨길 것이 없습니다. 어제 저는 점심때가 좀 지나 길을 가다가 우연히 그 부부를 만났습니다. 마침 그때 바람이 불었는데, 그 여자의 가사 아래로 늘어진 비단 자락이 살짝 올라가는 바람에 얼굴이 조금 보였습니다. 아주 잠깐 동안, 살짝 보였다가 금방 가려져 버렸습니다만,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제게는 그 여자의 얼굴이 보살처럼 아주 아름답게 비췄습니다. 순간, 저는 남자를 죽여서라도 꼭 그 여자를 차지해야겠다고 결심이 섰습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생각하시는 것처럼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닙니다. 어차피 여자를 차지하려면 남자는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죽일 때 저희는 허리에 찼던 칼을 쓰는 것이고, 당신들은 칼을 쓰지 않는 대신에 권력으로 죽이고, 어떤 때는 뭐하는 척하면 말로도 죽이지요. 물론 피는 흐르지 않겠지요, 멀쩡하게 살아 있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도 죽인 게 되는 겁니다. 죄로 본다면 당신들이 더 나쁜지 우리네가 더 나쁜지 모르는 거라고요.
(비웃는 웃음)
그러나 남자를 죽이지 않고도 여자를 빼앗을 수 있다면 그것도 괜찮겠지요. 저는 그때 가능하면 남자를 죽이지 않고 여자를 빼앗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야마니나의 역로에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산 속으로 그 부부를 유인할 묘안을 짜낸 것이지요. 뭐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그 부부와 동행하게 되자, 저 건너편 산 속에 오래된 무덤이 하나 있는데, 파 보니까 거울과 칼 나부랭이가 많이 나와서 내가 아무도 몰래 근처 덤불 속에다 감추어 놓았고, 사려는 사람이 나선다면 헐값으로 넘기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지요. 남자는 어느 사이에 제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말로, 사람의 욕심이란 무서운 것 아닙니까? 그래서 삼십 분도 못되어 그 부부는 말을 타고 저와 같이 산길을 향했습니다.
저는 덤불 앞에 다다르자 보물들은 이 안쪽에 있으니 함께 들어가자고 했습니다. 남자는 욕심이 앞섰기 때문에 물론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말에서 내리지도 않고 그냥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마구 자라는 덤불을 보면 그 말도 무리는 아닙니다. 사실은 그것도 제 생각대로 된 것이기에, 저는 여자를 남겨 두고 남자와 같이 덤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덤불 속은 한참 동안 계속 대나무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오십 미터 정도 들어가니, 좀 넓은 곳에 삼나무가 있는 곳이..., 사실 제게는 그만한 장소가 없었습니다. 저는 덤불을 헤치고 들어가면서 보물을 삼나무 밑에 숨겨 놓았다고 그렇듯한 말로 꼬드겼습니다. 그러자 남자는 삼나무가 보이는 곳으로 정신없이 서둘러 갔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대나무가 드물어지고 삼나무가 여럿 서 있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순식간에 그 남자를 쓰러뜨렸습니다. 남자도 칼이 있었고 기운이 좋은 것 같았지만, 갑자기 당한 일이라 별수가 없었습니다. 얼른 남자를 삼나무 밑동에다 묶었습니다.
밧줄 말씀입니까? 밧줄이야 도둑질을 하고 다니기 때문에 언제 담을 넘을지 모르니까 늘 허리춤에 가지고 다니는 것이지요. 물론 소리를 지르지 못하도록 대나무 잎들을 입속에다 처넣고 나니 문제랄 것도 없었습니다. 저는 남자를 처리하고 여자에게로 가서는, 남자가 갑자기 병이 난 것 같으니 어서 가 보아야겠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것도 계획대로 들어맞았습니다. 여자는 이치메가사를 벗은 채로 제 손을 잡고 덤불 속으로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도착해서 남자가 삼나무에 묶여 있는 것을 단박에 보자, 어느 사이에 품에서 꺼냈는지 단도를 번쩍 치켜들었습니다.
저는 여태껏 그렇게 날뛰는 여자를 본적이 없습니다. 만약 방심이라도 하고 있었다면, 하마터면 옆을 찔렸을지도 모릅니다. 처음은 몸을 피했지만, 사정없이 칼을 휘두르는 바람에 언제 상처를 입을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저 다조마루로 말할 것 같으면 칼로 대항하지 않고도, 아슬아슬하게 결국 여자의 칼을 쳐서 떨어뜨리게 했습니다. 아무리 날뛰는 여자라도 무기가 없다면 방법이 없는 것이지요, 결국 생각한 대로 남자를 죽이지 않고도 여자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진정 남자의 목숨을 빼앗지 않고도, 그렇게 된 이상에야, 저는 남자까지 해칠 마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엎드려 울고 있는 여자를 놔두고 덤불 밖으로 나가려 할 때, 그 여자가 갑자기 미친 것처럼 제 팔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소리를 지르는데, 제가 죽든지 자신의 남편이 죽든지 둘 중의 한 사람은 죽어야 한다고 소리치는 것이었습니다. 두 남자에게 수치를 보인 이상 살기가 괴롭다는 말이었습니다. 아니, 어느 쪽이든 살아남은 남자를 따르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때 남자를 죽여야겠다는 강한 욕망이 생겼습니다.
(심한 흥분)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제가 당신들보다 아주 잔인한 사람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여자의 얼굴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때 그 여자의 불타는 눈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의 눈을 본 순간, 벼락을 맞는 한이 있어도 이 여자를 아내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여자를 아내로 삼고 싶다, 이것만이 제 머릿속을 지배했습니다. 그것은 생각하시는 것처럼 천박한 욕정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욕정만 있었던 것이라면 저는 그 여자를 그냥 놔두고 도망갔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남자의 피를 볼일도 없었겠지요. 하지만 어스름한 덤불 속에서 여자의 얼굴을 본 순간, 저는 남자를 꼭 죽인 다음에 떠나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남자를 죽이는 것도 비겁하게는 죽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남자의 밧줄을 풀어 주고 칼로 맞서라고 말했습니다. 삼나무 밑동 근처에 떨어져 있던 것이 바로 그 잊고 간 밧줄입니다. 남자는 안색을 바꾸고 칼을 들었습니다. '칼을 뽑았구나' 생각하자, 곧 말없이 맹렬한 기세로 덤벼들었습니다. 그 결투가 어떻게 되었는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스물세 번째의 합에서 제 칼이 상대의 가슴을 찔렀습니다.
스물세 번째 합에서, 그건 대단한 일입니다. 지금에도 저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칼을 가지고 저와 그 정도로 겨룬 녀석은 그 남자뿐이었으니까요.
(쾌활한 미소)
저는 남자가 쓰러지자 피묻은 칼을 들고 여자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글쎄, 여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지 뭡니까. 저는 여자가 달아난 곳을 찾아서 삼나무 숲 속 이곳 저곳을 뒤졌습니다. 그러나 대나무 잎들 위로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습니다. 또 귀를 기울여 보아도 들리는 것은 남자의 짧은 신음 소리뿐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결투가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을 부르러 덤불을 헤치고 달아났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제가 죽을 차례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바로 칼과 활, 화살을 챙겨서 이전의 산길로 나왔습니다. 그곳에는 여전히 여자가 탔던 말이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 나머지 일들은 이야기해 보았자 다 쓸데없는 것들입니다. 칼만 성안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처분하였습니다.
저의 자백은 여기까지입니다. 어차피 한 번은 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머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어서 극형에 처해 주십시오.
(담대한 듯한 태도)

시미즈사에 온 여인의 참회
.........그 감색 스이칸을 입은 남자는 저를 마음대로 하고 나서 묶여 있는 남편을 보며 비웃듯이 웃었습니다. 남편이 얼마나 분했겠습니까. 하지만 몸부림을 쳐도 묶은 밧줄이 더욱 몸을 파고들기만 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남편 쪽으로 구르듯 뛰어갔습니다. 아니, 뛰어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가 저에게 발을 걸어서 가지 못하게 넘어뜨렸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저는 남편의 눈에서 뭐라고 딱히 말할 수 없는 이상한 빛을 보았습니다.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저는 지금도 그 눈을 생각하면 몸이 떨립니다. 말도 할 수 없는 남편은 그 순간 눈 속에 모든 감정을 실어 전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반짝이던 것은 노여움도 슬픔도 아닌, 단지 저를 업신여기는 차가움이었습니다. 저는 그 자의 발에 채였다기보다는 그 눈빛에 맞은 것처럼, 뜻모를 소리를 외치며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감색 스이칸의 남자는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습니다. 삼나무 밑동에 묶인 남편만이 뒤에 있을 뿐이었습니다. 저는 낙엽들 위에서 몸을 가까스로 일으킨 채 남편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눈빛은 그대로였습니다. 여전히 차갑고, 업신여기는 듯한 미움의 빛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부끄러움, 슬픔, 노여움.... 그때의 제 마음은 뭐라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비틀거리면 일어나 남편에게로 갔습니다.
"여보, 이렇게 된 이상, 당신과 같이 살 수는 없어요. 저는 죽을 결심이 섰어요. 그러나, 그러나 그 대신에 당신도 죽어 주세요. 욕을 보셨으니까요. 이대로 당신 혼자 남게 할 수는 없어요."
제가 겨우 할 수 있는 말은 정말 그것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더럽다는 듯이 단지 저를 노려보았습니다. 저는 찢겨지는 듯한 마음을 겨우 억누르며 남편의 칼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 도둑이 가져간 것인지 칼만이 아니라, 활과 화살도 덤불 안에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단도만은 다행히도 제 발치에 있었습니다. 저는 단 도를 주워 들고 다시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목숨을 저에게 맡기세요. 저도 곧 뒤를 따르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남편은 저를 업신여기는 듯한 어조로 짧게 말했습니다.
"죽여!"
저는 얼결에 남편의 옥색 스이칸 가슴팍에다 단도를 푹 찔렀습니다. 이때 다시 저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겨우 정신이 돌아와 주위를 살폈을 때에는 남편이 묶인 채로 숨져 있었습니다. 그 푸릇한 얼굴 위로 대나무와 어우러진 삼나무 가지의 하늘에서 한줄기 석양의 빛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울음을 집어삼키며 시체의 밧줄을 풀어헤쳤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나서 제가 어떻게 했는지는 더 말할 기운도 없습니다. 하여튼 저는 죽는 것까지는 하지 못했습니다. 목에 칼을 대어 보기도 하고 산 속의 물웅덩이에 몸을 던지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죽지 못하고 이렇게 있으니, 그런 것들을 말해도 소용없는 일이겠지요.
(쓸쓸한 미소)
저처럼 배알도 없는 것은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조차도 안 보시려고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을 죽이고 산적에게 욕을 당한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도대체 저 같은 것은.....
(갑자기 격렬히 흐느낀다)

무당의 입을 빌린 죽은 자의 이야기
......도둑은 내 아내를 겁탈하고 나서 앉은 채로 아내를 이리저리 위로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말할 수가 없었다. 몸이 삼나무 밑동에 묶인 채였다. 그러나 나는 그사이에 몇 번이나 아내에게 눈짓을 하였다. 이 남자의 말을 진심으로 믿지 마라, 무슨 소리를 해도 넘어가서는 안 된다, 하는 뜻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는 가만히 낙엽 위에 앉은 채로 무릎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니 아무래도 도둑의 말을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겠는가?
나는 질투심에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나 도둑은 이야기를 차례로 교묘하게 이끌어 나갔다. 한 번 몸을 더럽혔으니 남편과의 사이가 좋아질 리 없다, 그런 남편을 따라가기보다는 차라리 내 아내가 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내가 이렇게 일을 벌인 것도 모두 그대에게 반했기 때문이다....., 라고. 도둑은 그런 말까지 뻔뻔스럽게 한 것이다. 도둑의 말을 듣고 있던 아내는 귀가 솔깃해서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었다. 나는 그때처럼 아름다웠던 아내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아내는 눈앞에 내가 묶여 있는데도 도둑에게 뭐라고 대답했던가! 나는 지금 구천을 헤매고 있지만, 아내의 그 대답이 생각날 때마다 가슴속에서 열이 받히지 않을 수 없다. 아내는 확실히 이렇게 말했었다......
"그렇다면 어디든지 함께 가겠어요."
(긴 침묵)
아내의 죄악은 그것만이 아니다. 그 것만이었다면 이 어둠 속에서 내가 이처럼 괴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내는 꿈을 꾸듯이 도둑의 손을 잡고 덤불 밖으로 나가려 하다가 갑자기 낯빛을 바꾸고는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을 죽여주세요! 저 사람이 살아 있는 한은 당신과 함께 갈 수가 없어요."
아내는 마치 미치기라도 한 것처럼 이렇게 소리쳤다.
"저 사람을 죽여주세요!"
......그 말은 지금도 폭풍처럼 나를 깊은 어둠의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 있다. 이렇게 무서운 말이 여태껏 한번이라도 다른 누구의 입에서 나온 적이 있었을까? 이렇게 저주스러운 말이 한 번이라도 다른 누구의 귀에 퍼부어졌던 적이 있었을까! 한번이라도 이처럼....
(갑자기 조소가 터져나온다)
그 말을 들은 도둑의 얼굴빛도 하얗게 되었다.
"저 사람을 죽여주세요."
......그렇게 소리치면서 아내는 도둑의 팔에 매달려 있었다.
도둑은 말없이 아내를 바라보며 죽이겠다던가 죽이지 않겠다던가 하는 대답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아내를 발로 채어 낙엽 위에 쓰러뜨렸다.
(다시 조소가 터져나온다)
도둑은 조용히 팔짱을 끼고 나에게 눈을 주었다.
"저 여자를 어떻게 하고 싶은가? 죽이고 싶은가, 아니면 살리고 싶은가?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면 되네. 죽일 텐가?"
.....나는 이 말만으로도 도둑의 죄는 용서하고 싶다.
(다시 긴 침묵)
아내는 내가 망설이는 동안 한마디 뭐라고 외치더니 쏜살같이 덤불 바깥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도둑도 순간적으로 달려들었으나 소매도 붙잡지 못한 것 같았다. 나는 가만히 있으면서 그런 장면을 꿈을 꾸듯이 바라보고만 있었던 것이다. 도둑은 아내가 달아난 뒤에 칼과 활, 화살을 집어들고는 내 밧줄의 한 가닥만을 끊어주었다.
"이제는 내 차례로군."
....나는 도둑이 덤불을 빠져나가며 이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그 후로는 주위가 조용했다. 아니다, 누군가가 웃어제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밧줄을 풀면서 가만히 귀기울여 보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소리는 내 자신이 흐느끼고 있는 소리가 아닌가!
(세 번째 긴 침묵)
나는 간신히 삼나무 밑동으로부터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앞에는 아내가 떨어뜨린 단도 하나가 반짝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집어들어 단숨에 가슴팍에 꽂았다. 무언가 비릿한 덩어리가 입속에서 치밀어 올라왔다. 하지만 고통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가슴이 차가워지자 한층 사방이 조용해졌을 뿐이다. 아아. 이 얼마나 고요한가! 이 산그늘의 덤불에는 작은 새 한 마리 와서 울지 않는다. 다만 삼나무 대나무 끝에 몇 줄기 쓸쓸한 햇살이 비칠 뿐이다. 몇 줄기 햇살이..., 그것도 점차 희미해지다. ........이제 삼나무도 대나무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거기에 넘어진 채로 깊은 정적에 둘러싸여 있다. 그때 누군가 발소리를 죽이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 쪽을 보려고 했다. 그러나 어느 사이에 내 주위에는 엷은 어둠이 들어차고 있었다. 누군가....., 그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살며시 내 가슴에서 단도를 뽑았다. 그와 동시에 내 입에서는 다시 한 번 피가 솟구쳐 나왔다. 그로써 나는 영원히 구천의 어둠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여기에서 확실한 것은 사무라이가 죽었고 다조마루와 여인은 죽지 않았다는 것. 다조마루가 여인을 겁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이야기들은 모두 엇갈린다.
사무라이는 어떻게 죽었는가? 다조마루에 의하면 정정당당하게 결투해서 자신이 이겼다. 여인에 의하면 자신이 남편을 죽였다. 사무라이에 의하면 자신은 자살했다.
다조마루와 사무라이의 관계 : 다조마루는 정정당당하게 결투해 자신이 그를 죽였다고 말한다. 사무라이는 아내의 변심에 충격을 받아 스스로 자살했다고 말한다. 다조마루는 여인의 말을 듣고 사무라이를 죽이고 싶었고 그래서 결투했다고 말한다. 사무라이는 여인의 말을 듣고서 자살했다고 말한다. 적어도 두 사람은 여인이 변심했음을 함께 증언하고 있다.
다조마루와 여인의 관계 : 다조마루는 여인이 사무라이를 죽여달라고 말했다고 주장한다. 여인은 그렇게 말한 일이 없다고 주장한다. 다조마루는 자신이 겨루를 통해 사무라이를 죽였다고 말하고, 여인은 자신이 남편과 동반자살하기 위해 우선 남편을 죽였다고 말한다.
여인과 사무라이의 관계 : 여인은 남편이 자신을 차갑게 노려봤다고 말한다. 사무라이는 여인이 도적을 따라가려 했다고 말한다. 여인은 계속 노려보는 남편을 죽이고 따라 죽으려 했으나 정신을 잃었다고 주장한다. 사무라이는 여인은 도적을 따라가려다 그에게조차 버림받아 도망갔고 자신은 자살했다고 말한다.
사무라이가 죽고 여인이 겁탈 당한 것 외에는 어느 것도 아귀가 맞지 않은 채 계속 겉돌고 있다. 다조마루와 사무라이 그리고 여인은 각자의 관점에서 사건을 조명하고 있다. 진실은 존재하는가? 진실이 존재하지만 누구도 그것을 총체적으로 드러내지 못하는 것인가, 아니면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서 사태를 볼 뿐 진실을 총제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인가?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문제는 순수 인식론적 문제가 아니다. 세 사람 모두 어떤 식으로든 거짓말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조마루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사무라이가 자살했다는 것과 여인이 남편을 죽인 것은 거짓말이다. 여인이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사무라이가 자살했다는 것과 다조마루가 여인을 내팽개쳤단은 것은 거짓말이다. 사무라이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면, 다조마루가 결투로 그를 죽였다는 것과 여인이 그를 죽였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극적인 것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이다. 겁탈 당한 자신을 싸늘하게 노려보는 남편와 동반 자살하려 했다는 여인의 이야기, 반대로 자신을 겁탈한 도적을 따라가려다 그나마 버림받고 도망간 아내에게 환멸을 느껴 자살했다는 남편의 이야기. 이 이야기에는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쌍곡선과도 같은 허무감이 내재해 있다.

- pp.179-181 

1.『덤불속』은 국내에 '아쿠타가와賞'으로 잘 알려져 있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단편소설.
아쿠타가와의 대표작인『라쇼몽』은 소설은 못 읽어 봤고 영화만 봤는데 이 작가의 특징이라는 선과 악을 분명하게 가르는 이분법적 태도가 인상적이었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
중간에 삽입한 원문은 naver에서 펌. 나머지는『탐독』에서 발췌.

2.『덤불속』사건에 대한 내 생각은...,
사무라이는 명예때문에, 도둑은 '어쨌든' 여자한테 사랑을 느껴서... 결국 사무라이는 자신을 위해서 자살을, 도둑은 여자를 위해서 타살을 주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결론은, 사무라이를 죽인 사람은 여자.

3. '유목적 사유의 탄생'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탐독』은 '책과의 만남'이라는 프롤로그를 지나면 '문학과 더불어', '과학의 세계', '철학 마을 가로지르기'를 거쳐 에필로그로 끝을 맺는 구성이다. 쉽게 읽히고 내용도 재미있다. 똑똑한 사람이 재미있는 얘기를 쉽게 들려주니 더 바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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