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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3410 bytes / 조회: 821 / ????.02.16 18:14
두 편의 소설을 읽고... 단상


이번 문학동네 수상작인『달을 먹다』를 읽다 보면 아, 이 작가는 김훈의 영향을 받았겠거니 절로 머리를 끄덕이게 되는데 작가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아니나다를까 김훈을 비롯한 다른 작가와 소설을 읽으면서 영향을 받았다는 작가의 고백을 들을 수 있다. 기실 작가 스스로가 다른 작가 누구의 영향을 받았다, 고 얘기하는 것은 문학계에선 아마 금기로 여기는 듯 하다. (특히 국내의 경우)이제껏 작가가 먼저 나서서 다른 작가의 혹은 소설의 영향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경우를 거의 보기 힘들다.

천명관의『고래』를 읽고 나서...
금복의 아버지가 설핏 잠들었다 깨어난 직후 딸 금복이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직감으로 깨닫는 장면에서(p.47) 마르케스의『백년동안의 고독』이 떠올랐고 이후『고래』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계속해서『백년...』의 그림자에 쫓겨 두 권의 책을 함께 읽는 기시감에 시달려야 했다.
구성점, 정서, 서사구조 등 모든 면에서 의심할 여지 없이 남미 환상문학의 구성을 그대로 좇아가는 이 소설을 어떻게 봐야 하나. 그리고 소설의 뒷장을 채우는 인터뷰와 수상 소감의 어느 한 페이지, 한 귀퉁이에서도 (살짝 언급만 한 평론가 한 사람을 제외하면)'마르케스의 백년'에 대해 모두들 입을 닫아 버린 것 역시 어떻게 봐야 할지.
몇 년 전, 성석제의 열혈 팬인 친구가 강력 추천해서 읽은『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를 읽을 때였다. 시작 두 페이지쯤 읽다가 그만 허허- 웃고 말았다. 반세기도 더 전인 1944년에 발표한『픽션들』(국내, 민음사) 등에서 보르헤스가 보여준 그만의 독창적인 포스트 모더니즘을 그대로 재탕하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에(예.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을 쓸 수 있는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작가가 자신에게 '이야기가 가득한 항아리'가 있다고 대답한 것 같은...) 말 그대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후 성석제의 소설은 아무리 재미있다고 해도 곁눈질로도 안 보게 되었다.

『고래』와『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는 작가가 모두 그들이 이전의 작가와 그 작가의 작품에 빚진 것을 언급하지 않는다.
이들은 어쩌면 소설적 상상력이라는 경주에서 한발 늦은 억울한 2등, 아니면 우연히 동일한 천재성을 타고났을 뿐인지 혹은 그외 기타등등 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그들이 '모르는 척'하는 것에 느낀 실망감이 좀처럼 회복되기 힘든 것만은 분명하다.

추가.
『고래』는 굉장히 재미 있는 소설이고, 읽는 동안 작가의 얘기 솜씨에 거듭 감탄하게 되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이 작가가 타고난 선천적 재능인지 후천전 재기에 지나지 않는지 판단은 작가의 다음 작업을 지켜본 다음에 판단할 몫으로 남겨 둬야 할 것 같다. 일단 내 개인적으로는 부정적인 쪽이 우세하다. 섣부른 얘기일 수도 있지만 원히트원더의 예감이 강하게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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