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공부를 못해 / 야마다 에이미 > 설(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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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s Casket
Review 1
설(舌)
- 네 언어의 한계는 곧 네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by Ludwig Wittgenstein
4861 bytes / 조회: 959 / ????.06.10 06:01
나는 공부를 못해 / 야마다 에이미


일본 연애소설의 지존, 일본 3대 여류작가 중 한 사람 등의 호칭이 붙는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은『나는 공부를 못해』가 처음인데, 소설을 읽으면서 그리고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이랬다.

누군가가 내게 인물 좋고, 매너도 좋으며, 참 괜찮은 가치관을 가진 남자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한다.
나는 긍정적인 호감과 기대를 가지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내가 만난 남자는 허영심에 가득찬 '3척' 동자였다.
그리하여 머리에 든 거 없는 졸부남이 운동화 끈 매는 법을 배운 얘기를 한 세 시간쯤 들은 기분...

(두 번의 예외가 있지만)나는 일단 손에 든 소설은 어찌됐든 마지막 장까지 읽는다. 행인지 불행인지 '처음 몇 페이지를 읽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도중에 미련없이 멈추고 집어던지는' 다치바나式 내공을 아직 못 쌓았기 때문.
요즘처럼 읽을 책은 넘쳐나고 시간은 없고 그야말로 1분 1초가 아쉬운 때, 누군가 내게 야마다 에이미는 여자 오쿠다 히데오라고 한 마디 귀띔만 해줬어도 덜 억울했을 텐데...
とにかく, 야마다 에이미씨, 우리 앞으로 다신 만나지 맙시다.

마침 지금 읽고 있는 김연수의 소설에서 먼저 읽은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에 대한 감상을 대신할 적당한 문장이 있어서 옮긴다.
이 소설은 우선 근본적으로 그릇된 세계를 반영하고 있네. 이미 거울 자체가 뒤틀려 있어. 자네는 그것도 거울이라고 하겠지만, 자네의 소설은 거울도 아니며 저질 정물화일 뿐이야. 게다가 게으른 통속화가가 제멋대로 판단하고 그린 것이지. 이 소설에 반영된 현실이라는 것은 극단적으로 말해 만화의 현실일 뿐이야. 자네가 실제 생활에서 차용한다는 대화는 저질 코미디의 대사일 뿐이며, 빠른 전개는 소설가로서의 권리 포기야. 채 묘사되지 않은 세계속에서 지향점이 없는 코미디 대사가 미친 잠자리처럼 마구 날아다니고 있는 모습이지. 최민식과 송찬명의 모습에서는 마치 천국의 인물인 양 고뇌하는 주인공으로서는 부족하며, 다른 인물들의 설정은 다분히 작위적이야. - p.45,『가면을 가리키며 걷기』, 김연수 / 세계사

* 본문의 최민식과 송찬명을『나는 공부를 못해』의 도키다 히데미로 바꾸어도 무방하겠다.

옮기는 김에 하나 더.

그러나 군대를 다녀오면서 나의 생각은 약간씩 변해갔다. 결국 내가 매혹당하였던 하루키라는 것은 내가 성장하려고 들 때, 가장 먼저 배격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그가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고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였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나는 약간의 아쉬움과 추억 몇점을 남기고 그와 결별하였다. 그뒤, 내가 만나게 된 것은 비로소 한국문학사였다. 당시에 좋은 문학사책이 많이 나왔다는 점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한국문학사라는 것이 객관적인 구조체로서 존재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많이 흥분되었다. 그제야 나는 맥락이 없는 세계란 참으로 나약한 세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 p.10, 같은 책


이왕 말이 나왔으니 일본소설式 쿨(cool)에 대해 한마디만 더.

'자유란,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고독한 상태를 뜻하는 말이다.'
에쿠니 가오리의『울 준비는 되어 있다』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일본소설을 읽다보면 곧잘 마주치는 이런 문장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아무 생각없이 쓰-윽 읽으면 언뜻 뭔가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한번 더 읽으면, 응?????? 싶다.
이쯤에서 물러서지 않고 한번 더 읽으면 단어가 머리를 공격하기 시작하고 머릿속에서 문장이 꼬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의미야 어떻든 그럴싸한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올려놓으면 꽤 그럴싸해 보이는 신비한 체험을 할 수 있다.

* 요즘 일본 장르소설에 푹 빠져 있는 대학 2학년생인 사촌동생의 블로그를 표본으로 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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